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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방

광고 감각으로 <장년의 글쓰기>

by 이에누

첫 수업 날, 수강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여러분, 인생 광고 한 편씩 있으시죠?”
순간 수업방이 술렁였다. 누군가는 “손이 가요, 손이 가~”를 흥얼거렸고, 또 다른 분은 “야, 너두 할 수 있어!”를 따라 외쳤다. 그 짧은 한마디와 선율에 각자의 추억이 켜켜이 묻어 있었다.

자기소개 시간, 누군가가 입을 연다. “저는 30년 동안 회사 보고서만 쓰다가 이제야 진짜 글을 써보려 합니다.”
그러자 옆에 앉은 분이 손을 번쩍 들고 끼어들었다.
“보고서도 글 아닌가요? 단지 문장이 ‘따라서, 이에 따라, 그러므로’로 시작한다는 것뿐이지!”
교실 안에 웃음이 번져 나간다. 모두가 ‘아, 여긴 진지하게만 하는 자리가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는 순간이었다.

“글의 씨앗은 어디서 올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 분이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저는 글의 씨앗이 ‘잔소리’인 것 같아요. 아내한테 잔소리 듣고, 또 아이들한테 잔소리하다 보면 글이 술술 떠올라요.” 순간 방 안이 폭소로 가득 찼다. 곁에 앉아 있던 다른 수강생이 맞장구쳤다.
“저는 오히려 잔소리를 못 해서 글로 쓰는 것 같아요. 글 쓰면서 속풀이를 하는 거죠.”
서로 다른 방식이었지만 결국 글은 마음속 눌린 것을 풀어내는 통로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다.

3주 차, ‘찌질함과 진심 사이’라는 주제로 써온 글을 한 분이 발표했다.“저는 아내한테 잔소리 듣고 분해서 쓴 글입니다. 제목은 <리모컨의 눈물>입니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 수강생들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다. 아내 몰래 치킨 시켜 먹다 걸려서 리모컨까지 압수당했다는 사연.
발표가 끝나자, 맨 뒷자리에서 누군가 외쳤다. “형님, 저희 모임 만드시죠. ‘압수당한 남자들의 모임!’”


또 한 분이 자기 이야기를 광고 카피처럼 발표했다. “저는 ‘피로에는 박카스!’가 아니라 ‘후회에는 라면!’입니다. 아내랑 싸우고 말도 못 한 채, 밤에 라면 끓여 먹다 걸린 이야기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끝에는 “그때 아무 말 못 한 게 아직도 후회된다”라는 문장이 있었고, 옆자리 아주머니가 “나도 그래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과 공감의 파도가 일렁이는 순간이었다.

5주 차엔 ‘짧지만 강하게’라는 주제로, 광고 카피를 흉내 내 짧은 글쓰기를 해봤다. 전직 은행원이었던 수강생이 발표했다.
“저는 늘 숫자와 보고서만 써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 글은 이겁니다. ‘꽃이 피는 소리가 들린다.’ 광고처럼 짧은데, 제 마음은 길게 울리네요.”
교실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따뜻한 박수로 터졌다.

7주 차, ‘기억 창고 열기’ 시간엔 추억의 장소를 광고처럼 묘사하기로 했다. 한 아주머니가 어린 시절 우물가를 떠올리며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 집 우물, 양동이를 기울일 때마다 햇살이 반짝이는, OO사이다 같은 맛!” 모두가 “오~!” 하며 감탄했다. 평범한 기억이 광고 카피 한 줄로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9주 차, 여행 글쓰기 시간에는 ‘동네를 여행처럼 쓰기’를 주제로 글을 써왔다. 한 수강생이 글을 읽으며 말했다.
“우리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이요, 꼭 모로코 시장 같더라니까요. 쓰레기봉투만 들고 가면 현지인이 된 기분이에요.”
그러자 또 다른 분이 맞장구쳤다.
“맞아요. 저는 엘리베이터 안이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같더라고요. 누가 타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니까.” 다들 웃음을 터뜨렸지만, 동시에 글감은 어디서든 나온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


여행사진가 출신 수강생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사진은 눈에 보이는 걸 잡아두지만, 글은 마음속의 풍경을 잡아둡니다. 오늘은 카메라 대신 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의 글에는 렌즈보다 더 섬세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가장 큰 웃음을 준 건, 늘 손주 이야기를 꺼내던 할머니였다. “저희 손자가요, 제가 글쓰기 배운다고 하니까 ‘할머니, 숙제검사 받는 것 같아’ 그러더군요.” 그 순간 교실은 폭소와 박수로 흔들렸다.

광고 영상 보는 시간도 하이라이트였다. 추억의 광고 영상을 보며 즉석 퀴즈를 냈다. “손이 가요 손이 가~”가 나오자마자 누군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번쩍 들며 정답을 외쳤다. 정답을 맞힌 기쁨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흉내 내는 바람에 모두가 배꼽을 잡았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고, 옆에 있던 분이 곧바로 화답했다.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
결국 노래방도 아닌 교실에서 합창이 벌어졌다. 수업 끝날 무렵 누군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글을 쓴 건지, 가무를 한 건지 모르겠네.”
그날 이후 그분은 ‘손이 가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글은 점점 더 솔직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발표가 끝나면 누군가의 글에 박수를 치며 “그 부분에서 마음이 콕 찔렸어요”라거나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덕분에 떠올렸습니다”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자 독자가 되어주면서, 교실 안은 글과 삶이 엮이는 작은 공동체가 되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단순한 글쓰기 수업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공감하고, 위로받는 자리가 되어갔다. 한 분은 수업이 끝난 뒤 내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여기 오면 자꾸 제 안에 숨어 있던 목소리가 튀어나와요. 젊었을 땐 남 눈치 보느라 못 했던 이야기들이요.”
나는 대답 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말은, 내 마음이 하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가르친다기보다 같이 쓰고, 같이 웃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장년의 글쓰기 교실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12주가 끝날 무렵, 모두가 자신의 글 한 편을 퇴고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감 있게 단상에 올라, 자신의 문장을 또렷한 목소리로 낭독했다. 글이 끝나면 따뜻한 박수와 격려가 이어졌고, 누군가는 말했다.
“이 수업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제 목소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한 분은 원고를 들고 “제목은 <내 나이 팔십, 이제야 내 글>입니다”라며 낭독을 시작했는데, 첫 문장이 이랬다.
“팔십에 글을 쓰니 좋은 점은… 글을 쓰다 졸려도 죄책감이 없다는 겁니다.”
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고, 그분은 태연히 원고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광고는 시대의 거울이고, 글은 마음의 거울이다. 두 거울을 함께 비추면, 오래된 추억도 반짝이는 현재가 된다. ‘광고감각의 글쓰기 교실’은 그렇게 웃음과 공감,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 따뜻한 자리였다. 글을 가르친다기보다는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 그것이 이 수업의 진짜 광고 문구였다.





부록: 어떤 클래스북 하나


<책머리에>

글쓰기는 나이를 묻지 않는다.
50대, 60대가 되어 시작한 글이라도,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어 기록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책은 지난 몇 달간 우리 클래스에서 써온 글들을 모은 작은 결과물이다.
웃음과 울림, 찌질함과 치열함이 뒤섞인 글 속에서, 각자의 삶과 생각이 묻어난다.
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색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모여 하나의 이야기로 살아 숨 쉰다.

1부. 나를 꺼내는 글쓰기

• 퇴직 후 첫 일기

• 나의 두 번째 인생, 글로 시작하다

•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2부. 일상의 풍경

• 우리 집 베란다 정원

• 시장에서 건진 한 장면

• 카페 창가에 앉아

• 골목길 산책기

3부. 기억의 방

• 아버지가 남긴 말

• 어린 시절 여름날의 냄새

• 내게 글을 가르쳐준 사람

• 사진 속의 나, 그리고 우리

4부. 유머러스한 실험들

• 귤껍질로 쓴 글

• 스마트폰과 나의 신경전

• 글쓰기보다 더 힘든 다이어트

• ‘찌질함’에 대하여

5부. 나에게 보내는 편지

• 다시 걷는 길 위에서

• 내 마음의 쉼표 하나

• 앞으로의 나에게


<에필로그>

글쓰기는 끝이 없는 여행과도 같다.
이 클래스에서 우리는 짧은 글을 쓰고, 서로의 이야기를 읽으며 웃고, 때로는 울기도 했다.
글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일상의 순간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온 여정을 담은 증거다.
앞으로도 글은 계속될 것이고, 이 작은 클래스북이 그 여정의 첫걸음으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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