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유감
1.
에이펙 정상회담 뉴스 화면을 보고 있자니, 말보다 표정이 더 솔직했다.
트럼프는 여전히 트럼프였다. 변덕스럽고 즉흥적이고, 조금은 조급해 보였다.
자기 말을 던져놓고 그 반응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
허풍과 허당이 묘하게 섞여 있는, 쇼맨십의 그림자 같은 인상이었다.
반면 시진핑은 단단했다.
말을 아끼고, 미세한 표정 변화조차 통제된 듯했다.
트럼프의 손짓 하나하나를 여유 있게 지켜보며
‘이 판은 이미 내 계산 안에 있다’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그의 침묵은 트럼프의 과잉된 제스처보다 훨씬 큰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재명.
그의 얼굴에는 현실감이 묻어 있었다.
표정과 말투 속에는 살아온 궤적을 닮은 아부도, 아양도, 교태도 섞여 있었다.
비굴하지만 계산된 생존의 기술 같았다.
세계의 힘이 요동치는 무대 한가운데서
그래도 챙길 건 챙기겠다는 약삭빠른 사람의 표정이었다.
정상들의 얼굴은 언제나 말보다 많은 걸 말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그리고 나라를 연기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본능으로, 누군가는 계산으로, 또 누군가는 현실감으로.
그 짧은 장면들 속에서
국제 정치의 무게와 인간의 본성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도널드 트럼프가 금관을 쓰고 춤을 춘다.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돈다. 보통 같았으면 기분파 남편의 ‘오늘 흥이 왔네’란 분위기에 마지못해 맞춰주는 기색 역력했을 멜라니아가, 웬일인지 파안대소다. 한편엔 MAGA 모자를 쓴 남녀가 열렬히 환호하고, 대통령은 더 우쭐댄다.
“뭐 이따위 일이 있어…” 하고 불쾌해지려는 찰나, 자세히 보니 솜씨 좋은 AI 작품이라더라. “트럼프는 왕이 아니다(NO KING!)”란 시위에 맞불 놓는 조롱 영상이라더라.
“내가 왕이 아니라고? 그래 난 왕이 아니야. 그냥 대통령이야. 그것도 위대한 아메리카 합중국의 대통령! 난 미쿡을 반드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고 말겨.”
미국 사람들도 그러고 있고, 본인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전 세계만방이 그를 왕으로 옹립하고 있다. 관세폭탄을 들이대니 우린 어쩔 수 없이 “우리 기업 미친 듯이 미국 투자하겠다”라고 나서는 판이다. 안 그래도 헬조선에서 사업하기 싫은 차에 탈탈 털려서 돈 보따리 싸서 미국에 갖다 바쳐야 할 판이다.
교활한 일본이 먼저 선빵을 날렸고, 더 영리한 이재명이 한 술 더 떴다. 근데 이번 판은 왠지 트럼프가 당한 것 같다. 관세율 낮춰주는 대신 10년 할부로 투자금, 그것도 200억 불씩 매년 꾹꾹 꽂아주겠다는 조공 약속에 솔깃했지만… 왠지 속은 느낌이 든 걸까? 미쿡 돌아가자마자 딴소리가 나오고 있다. “3,500억 불도 아니고 6,000억 불 더 받아내기로 다 되어 있다”라고 큰소리 뻥뻥 치고 있다. 미국산 석유, 가스 구매에 추가 기업투자 다 합치면 총 9,500억 불까지 된다는데 둘 중 하나는 거짓이거나 아전인수 발표다.
워낙 구라가 쎄고 허풍이 도를 넘는 사람인 건 알고 있지만, 뭔가 찜찜하다. 구라와 허풍이 트럼프만의 것일까? 혹시 우리 쪽에서 딴소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우리가 6,000 준다니까 진짜 주는 걸로 알았지?
몇 년 거치 10년 할부로 2,000 준다고 말은 했지만 문서에는 도장 안 찍었어.
나머지는 물건과 다른 투자방법으로 퉁 쳐서 맞춰보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볼 일이라.”
국가 간의 거래는 신뢰가 최우선이라 이건 상상도 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래도 찜찜한 건 있다. 걱정도 된다. 트럼프가 어떤 장사꾼인데...
띄엄띄엄 볼 사람 아닌데. 마치 우리가 이긴 판인 양 민심달래기용 자화자찬하고 있다. 멀다고 미국까지 그 소리 안 들릴까? 되치기 당하면 어떡하나?
또 하나.
애써서 만들어준 무궁화대훈장과 신라금관(어쩌면 국민 금모으기로 제작해 준 자랑스러운 왕관)이, 시위대를 조롱하는 노리개로 쓰이는 일이라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당연히 백악관에 고이고이 모셔두었겠지만 혹시라도 그 금관을 머리에 쓰고 트럼프가 등장할까 두렵다.
이쯤에서 말하고 싶다.
“한번 써보고 기분 내 봤으면 됐다 마. 더 망신당하기 전에 돌리도. 그거 하라고 준 뇌물 아니다.”
정청래도 그거 한번 사진으로 겹쳐서 써봤다 망했지, 최민희도 양자역학 공부하다 받은 줄도 모르고 받은 뇌물로 여론매장 당하잖아. 대한민국 국회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있지 않나?
미국을 이상하게 만드는 일에 대신라의 왕관이 뇌물로 오용되는 일이 없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