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언제 탄생하는가?

승부를 넘어선 이름: 최가온, 그리고 클로이 김

by 이에누

이탈리아 리비뇨의 설원 위, 2026 밀라노 ·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은 단순한 결승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어디까지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장이었다.

1차 시기, 최가온이 공중에서 균형을 잃고 림에 걸려 추락했다. 머리부터 떨어진 몸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설원은 고요했고, 관중의 숨은 묶였다. 들것이 들어오고 의료진이 달려가는 동안,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올림픽은 여기까지일지 모른다고.

하프파이프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 곡선의 안쪽은 냉혹하다. 7미터 얼음벽, 단단하게 다져진 설면. 한 번의 실수는 한 시즌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물러난다. 데이터가 말하는 상식은 ‘안전’이다. 그런데 최가온은 물러서지 않았다.

마지막 3차 시기, 그는 욕심을 버렸다. 1080 대신 900과 720. 과시 대신 완성. 무모함 대신 절제. 공중에서의 축은 놀라울 만큼 안정됐고, 착지는 바늘처럼 정확했다. 점수는 90.25. 숫자는 차갑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뜨거웠다. 그 순간 한 소녀가 금메달리스트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그날, 영웅은 한 명이 아니었다. 왕좌를 지키던 챔피언, 클로이 김. 평창과 베이징에서 연속 금메달을 따내며 스노보드의 지형을 바꾼 선수. 세계선수권과 X게임까지 석권하며 ‘기준’이 되어버린 이름. 그는 이미 역사였다.

그의 마지막 런이 끝났을 때, 균형은 무너졌고 3연패의 꿈은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 관중의 탄식, 코치의 굳은 표정, 잠시 멈춘 시간. 패배는 늘 그렇게 갑작스럽다.
그리고 이어진 장면. 넘어진 챔피언이 먼저 일어나 금메달리스트에게 다가갔다. 포옹. 눈을 마주 보며 건네는 진심 어린 축하. 그 얼굴에는 억지 웃음이 없었다. 질투도, 변명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동료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두 번째로 태어났다. 클로이 김의 여정은 화려한 기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열세 살부터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받아왔다. 미국을 대표해 뛰면서도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코로나 이후 아시아계 증오 범죄가 급증했을 때는 부모의 안전을 걱정하며 외출조차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분노를 증오로 키우는 대신, 실력과 태도로 응답했다. 자신이 한국계 미국인임을 숨기지 않았고, 두 문화를 동시에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기를 들고 싸우는 선수가 아니라, 경계를 잇는 선수가 되었다. 그래서 그 포옹은 단순한 스포츠맨십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체성의 선언이자, 품격의 선택이었다.

최가온은 벼랑 끝에서 두려움을 넘어섰고, 클로이 김은 패배의 순간에 자존심을 넘어섰다. 한 사람은 중력을 이겼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겼다.

시상대 위에서 국적은 달랐다. 메달 색도 달랐다. 그러나 세 선수는 한국어로 웃으며 서로를 챙겼다. 자매처럼. 혈연이 아니어도, 같은 설벽에서 흘린 땀은 깊은 유대를 만든다. 경쟁은 그들을 갈라놓지 못했고, 오히려 단단하게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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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지금은 여러 매체에 기고하면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이 글들은 일과 놀이,체험과 생각들의 틈새 세상참견이고 생존 보고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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