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아치와 가스레인지 사이에서
1987년에 나온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다시 펼쳤다. 그 안에 실린 시의 제목은 길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 가정 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그 제목만으로도 이미 선언 같다. 햄버거를 먹는 일이 아니라, 만드는 일을 통해 명상에 이르겠다는 선언.
시인 장정일은 늘 경계를 건드리는 사람이었다. 소설이든 시든, 당대의 금기를 툭 건드려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가 햄버거를 붙들고 한 일은 의외로 정직했다. 쇠고기 150그램, 돼지고기 100그램, 양파 1과 1/2개. 정확한 분량. 구체적인 순서. 명상은 허공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름이 튀고, 손에 고기 냄새가 배고, 불을 약하게 줄이는 그 순간에 이루어진다.
시를 읽다 문득 햄버거가 당겼다. 이 장면이 묘하다. 시를 읽다가 햄버거가 먹고 싶어지다니. 아마 먹방 영상을 몇 개 훑어보다 그랬다면 배달 앱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30분 안에 문 앞에 도착한다. 과정은 삭제되고 결과만 배달된다. 우리는 화면 속 타인의 식욕을 구경하다가, 자신의 식욕을 버튼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1987년의 햄버거는 달랐다. 그것은 아직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레시피, 요즘에도 유효한가?”
냉장고를 열어보고, 부족한 재료를 적어본다. 그리고 습관처럼 검색창을 연다. 이번에는 배달 앱이 아니라, 챗지피티에게 묻는다.
“장정일의 레시피대로 하면 정말 맛있을까?”
인공지능은 친절하게 답한다. 고기의 비율은 적절하다, 양파는 충분히 볶아 단맛을 끌어내라, 불은 중약불로 줄여 속까지 익혀라. 위생을 위해 중심 온도는 몇 도 이상이 좋다고도 덧붙인다. 1987년의 시인과 2026년의 인공지능이 한 부엌에서 만난 셈이다.
나는 잠시 웃는다. 황금 아치 아래 줄 서는 대신, 가스레인지 앞에 선다. 고기를 치댈 때 손끝이 묘하게 진지해진다. 이건 단순한 요리가 아니다. 시인의 안내를 따라가는 일이다. 동시에 나 자신의 속도를 점검하는 일이다. 양파를 볶는 동안 기름이 튄다. 지글지글 소리가 난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깨닫는다. 나는 평소에 이런 소리를 거의 듣지 않는다는 것을. 대부분의 음식은 이미 완성된 채 도착했다. 나는 뚜껑을 열고, 젓가락을 들고, 씹기만 했다. 삶도 비슷해졌는지 모른다. 과정은 압축되고, 결과만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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