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공유자전거

by 바삭새우칩

지하철 7호선에서 내리는 건 늘 아침 7시 40분쯤이다. 발바닥에 닿는 보도블럭의 온도가 계절을 말해준다. 봄에는 조금 미지근하고, 여름에는 벌겋게 달아오르고, 가을은 싸늘하고, 겨울은 차가운 얼음 같다. 지하철에서 올라와 그 도블럭을 걸으며 공유자전거를 찾는다.

회사까지는 자전거로 십 분. 걸으면 삼십 분. 버스를 타면 이십 분이지만, 배차 간격이 길고 항상 만원이라 자칫하면 지각의 위험이 있다. 처음에는 새 자전거를 살까, 아니면 당근마켓에서 중고를 하나 구할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집에 두기도 애매했고, 지하철역 근처 번화가에 주차하자니 도난이 걱정되었다. 사실 도난은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관리의 번거로움, 어딘가 묶어두는 귀찮음이 결국 나를 공유자전거로 이끌었다. 게다가 한 달 정액권이 17,900원. 버스비와 비교해도 시간과 비용 면에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골랐다. QR코드를 찍고 가까운 걸 탔다. 그런데 어느 날은 핸들이 한쪽으로 휘어 있어 자꾸 오른쪽으로만 돌았다. 다음 날은 안장이 조금씩 내려갔다. 자전거를 멈추고 안장을 조이고, 다시 타면 또 내려갔다. 도착할 즈음엔 무릎이 턱에 닿을 듯한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되어 있었다. 가장 위험했던 날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던 날이다. 하마터면 택시에 박을 뻔했다.

그 이후로는 자전거를 고를 때 꽤나 진지해졌다. 바람이 빠지진 않았는지, 브레이크는 제 기능을 하는지, 안장 높이는 조절 가능한지, 핸들은 휘지 않았는지. 자연스레 눈썰미가 붙었고, 그중에서도 ‘괜찮은 놈들’은 눈에 띄었다. 같은 거치대에 묶여 있어도 다 같은 자전거가 아니다. 어쩌면 공유된 것은 ‘소유’ 일뿐, 상태는 언제나 개인의 선택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공유 자전거 휴대폰 앱을 켜고, 자전거를 한 대씩 살폈다. 타이어를 한 번 눌러보고, 핸들을 들어서 휘었는지 확인하고, 안장은 마지막에 올렸다. 적당히 조여놓고 타야 중간에 내려오는 일이 없다.

그러다 그를 봤다.

횡단보도 앞. 그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내 공유자전거와는 결이 달랐다. 검정색 프레임에 매트한 질감, 유광과 무광이 섞인 듯한 안장과 핸들. 바퀴는 날렵했고, 체인은 기름이 반짝였다. 꽤나 비싸 보이는 자전거보다 그였다. 검정 헬멧, 통풍구가 촘촘한 장갑, 무릎 보호대까지. 발목이 조이는 7부 레깅스에, 형광 줄무늬가 들어간 저지, 누가 봐도 자전거가 ‘교통수단’이 아닌 사람.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마주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나는 땀에 젖은 눈썹을 문지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 혼자 긴장했다. 신호가 바뀌고, 우리는 동시에 출발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같은 길을 달리는 두 사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나를 슬쩍 흘깃 보는 걸 느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내 셔츠, 꾸깃한 면바지, 발목 양말에 덮인 먼지투성이 운동화. 그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리고, 페달을 밟았다.

그때였다. 나도 페달을 밟았다. 더 세게. 이런 무단기어, 기어 변속도 안 되는 공유자전거로 뭐라도 보여주겠다는 심정이었다. 근육을 조였다. 허벅지가 타오르고, 종아리가 뒤틀렸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숨이 턱까지 찼다. 햇살은 정수리를 찍었고, 등은 축축하게 젖었다.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증기가 얼굴을 때렸다.

그는 여유로웠다. 오른손으로는 페달을 밟으며 왼손으로 목의 땀을 닦았다. 나는 입을 벌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등이 보였다. 그 등을 따라잡고 싶었다. 그 좁고 단단해 보이는 등을.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점점 작아졌다. 마치 도로 위 점처럼,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결국 그를 놓쳤다.

자전거를 세우고, 헬멧도 없이 달렸던 머리를 식히며 숨을 골랐다. 팔이 떨리고, 허벅지가 쑤셨다. 땀이 눈가로 흘러내렸다. 멋쩍게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지만, 표정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전거를 조금 더 꼼꼼히, 아니 애정 있게 고르게 되었다. 상태 좋은 자전거를 보면 은근히 흐뭇해지고, 핸들이 반듯하면 기분이 좋았다. 가끔은 같은 공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면, 괜한 동질감에 괜히 눈인사를 하고 싶기도 했다. 마치 서로만 아는 어떤 언어가 있는 것처럼.

오늘도 자전거 거치대 앞에 섰다. 괜찮은 타이어, 브레이크, 안장, 핸들. 조용히 그 자전거의 안장을 올리며 생각한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면, 이번엔 조금 덜 처참하게 져보자고.

물론, 이 자전거에 기어만 있었더라면 하는 말은 삼킨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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