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해적섬으로

인천시 옹진군 소이작도

by 바삭새우칩

지하철 창밖으로 시커먼 바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에 들어온 건 작은 광고판 하나였다.


“인천시민, 인천 i바다패스 뱃삯 편도 1,500원.”


나는 인천에 산다. 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고,
바다를 마주한 도시라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살았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무언가 오래된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섬이라면 영종도, 무의도, 실미도 정도.

가장 멀리 간 건 아마 고등학생 때의 덕적도였을 것이다.
그마저도 희미한 기억뿐.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당겼다.
검색창에 ‘인천 섬’이라고 입력했다.
그러다 소이작도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한때 해적이 은신하던 섬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바로 마음을 정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말했다.


“이번 주말, 섬에 가자. 해적섬 이래.”


아이들은 들뜬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우리는 배를 예약했고,
섬에 식당이 없다는 이야기에 김밥과 주먹밥, 삶은 달걀로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러나 출발 당일, 짙은 안개가 우릴 막았다.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은 인산인해였고,
전광판엔 빨간 글씨가 떴다.


“출항 지연. 오전 10시까지 결항.”


아이들에게 오늘은 배를 못 탄다고 설명하자

막내는 너무나도 아쉬웠는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우리는 결국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향했고,
차 안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아이들은 내내 아쉬워했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도 분명 섬인데...'


아이들은 아마 '쾌속선'을 타고 진짜 '해적섬'이라고 불렸던 곳에 가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조용한 백사장을 보며 아이들은 물었다.


“다시 갈 수 있어?”


그날 밤, 일기예보를 보고 다시 마음을 먹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안개가 덜할 거라고 했다.
김밥을 또 쌀 여력은 없었다.
대신 발열도시락 4개를 주문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우리는 다시 연안부두로 향했다.
날씨는 맑진 않았지만,
안개는 조금 걷혔고, 흐리기만 했다.
전광판에 '정상 운항'이라는 글자가 떴다.
우리는 쾌속선을 탔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밀폐된 선실,
아이들은 창가에 얼굴을 바짝 대고 소리쳤다.


“인천대교다! 다리 밑으로 지나간다!”


그렇게 바다는 우리 앞에 펼쳐졌고,

드디어 소이작도에 닿았다.

놀랍게도,

그날 섬에 내린 여행객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배에서 내리던 순간, 아들 녀석이 발판을 잡아주던 승무원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보물 찾으러 왔어요!”


승무원은 그 말에 웃으며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보물 잘 찾고 오세요!”


그 인사에 아이들은 더욱 들떴고,

우리는 진짜 해적섬으로 향하는 듯한 기분으로 첫발을 디뎠다.


차도 사람도 없는 해변길을 걸었다.
소이작도의 작은 마을과 언덕을 지나
우리는 숨겨진 해변으로 향했다.


출발 전 인터넷을 뒤지다가 찾은 관광지도가

인천관광공사에서 만든 듯한 보물지도 콘셉트였는데,

아쉽게도 배포하는 곳은 없고 해상도도 너무 낮아 흐릿했다.

이렇게 좋은 콘텐츠가 있다는 게 반가우면서도,

그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아이들은 흐릿한 지도 속 손가락바위와 '약진넘어 해수욕장'이라는 숨겨진 해변을 지도에 표시된 길을 따라가며 하나하나 찾아냈고

그 약진넘어 해수욕장은 숲길을 한참 내려가야만 나오는, 진짜 숨겨진 해변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모종삽을 들고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보물이야!”


“여기서 뭔가 나왔어!”


조개껍데기 하나에도 환호하는 아이들.
나는 조용히 텐트를 펴고
발열도시락의 포장을 열었다.
지글지글, 김이 피어오르며
섬 한가운데 따뜻한 밥냄새가 번졌다.

그렇게 우리만의 해적섬 점심시간이 흘렀다.


두 시 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짐을 챙겨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배에 오른 아이들은 파도 소리보다 먼저 잠들었다.
축 늘어진 머리카락,
모래 낀 양말,
그리고 보물지도를 품은 손.

연안부두에 도착할 무렵
하늘이 갈라지듯 폭우가 쏟아졌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우리는 연안부두 수산물시장에 들러

조개와 회를 샀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식탁에 둘러앉아 조개찜과 회를 입에 넣었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여행은 멋진 숙소와 맛집, 완벽한 사진이 남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날,
해적섬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진짜 보물을 찾았다.


그건 조용한 바람,

흐릿한 지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던 도시락,

아이들의 주머니 속에 남은 모래 한 줌,

이름 모를 조개껍데기,

바다에서 이리저리 굴러 보석처럼 닳아버린 초록색 유리 사이다병 조각,

그리고 그걸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에 반짝이던 어떤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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