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요!용암 취!취!취!취킨

마인크래프트

by 바삭새우칩

언제부턴가 우리 가족의 영화 관람에는 하나의 규칙이 생겼다. 영화가 더빙판으로 나오면, 특히 애니메이션이라면 꼭 본다. 자막은 아직 무리다. 막내가 한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더빙판이다.


그날도 역시 더빙판 마인크래프트. 제목만 들어도 아이들의 눈빛이 네모나게 변하는 그 세계. 첫째는 방과 후 수업에서 마인크래프트로 코딩을 배운다고 했고, 둘째는 마인크래프트 자석 블록만 잡으면 한두 시간쯤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


영화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예매했다. 리클라이너 좌석은 나도 처음이었다. SK 멤버십 할인으로 저렴하게 예매했다.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당신 차례야.”


이 말에는 우리 부부만의 암묵적인 규칙이 담겨 있다. 아이들과 영화관에 가는 건 번갈아 한 명씩. 다른 한 명은 집에서 쉬거나 잠시의 자유 시간을 누린다. 그렇게 이번엔 나와 아이들, 셋이서 영화관에 갔다.

요즘 영화관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영화계 전체가 힘들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보인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영화관의 큰 화면조차,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이 되지 못한다.

집집마다 초대형 TV가 있고, 나 역시 휴대용 빔프로젝터를 하나 장만했다. 물론 영화관의 압도적인 스크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일상 속에선 제법 가성비 좋은 괜찮은 대안이다.


영화나 콘텐츠는 점점 OTT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고,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임을 인정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100년이 넘는 영화관의 역사 속에서, 그 마지막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다 찾아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영화관은 1910년 서울 종로에 문을 연 '단성사'였다고 한다. 영화관은 한 세기 넘게 도심의 문화 중심이자 추억의 장소로 자리해 왔지만, 이제는 대형 멀티플렉스조차 축소와 폐점의 흐름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관이 더 이상 도심의 중심이라는 인식도 희미해진 지금, 변화는 단지 흐름이 아니라 분명한 현실이 된 듯하다.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었을 무렵,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과연 지금처럼 존재할까. 몇 군데나 남아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첫 번째 목표는 영화가 아니었다. 팝콘. 버터 냄새가 진하게 감도는 매대 앞에서, 나는 항상 같은 생각을 한다. 영화관의 진짜 수익은 이 팝콘이 아닐까. 하지만 그날따라 팝콘은 평소보다도 더 고소하고 달콤했다. 아이들 손은 이미 따끈한 통 안으로 들어가 있었고, 나는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빠 역할의 80%는 한 듯한 기분이었다.

입장. 리클라이너는 기대 이상이었다. 자리를 눕히자마자 다리부터 긴장이 풀렸다. 둘째는 발받침 버튼을 장난처럼 눌렀다.


“그만 좀 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이는 금세 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기다림. 광고. 광고. 또 광고. 요즘 광고는 영화보다 더 긴 것 같다. 이 정도면 영화를 공짜로 보여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금호타이어 광고가 시작됐다. 마시멜로처럼 생긴 하얀색 타이어 인형 캐릭터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자, 둘째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제 진짜 영화가 시작된다고 확신한 듯 기뻐했다. 그리고 마침내 조명이 어두워졌다.


스크린이 깨어나고, 마인크래프트 세계가 펼쳐졌다. 뾰족한 픽셀, 사각사각한 생명들. 고증이 꽤 정확했다. 물론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아빠도 해봤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걸 듣고 있으면, 괜히 아는 척하기 싫어진다.


"저거 좀비야, 아빠!"


"저건 엔더맨!"


"저건 크리퍼!"


영화 막바지, 큰아이가 속삭였다.


"화장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문으로 나갔지만, 돌아오는 길엔 문이 밖에서 열리지 않았다. 결국 한 층을 돌아 매표소 쪽 입구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그사이 스크린에서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고, 우리는 그 장면을 놓쳤다. 마치 게임에서 보스를 놓친 기분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엔딩 장면은 볼 수 있었고, 이야기의 흐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는 그렇게 끝났고, 크레딧이 올라가자 객석은 금세 비었다. 나는 뭔가 빠진 것 같아 아이들을 붙잡았다.


“기다려 보자. 쿠키 영상 있을 수도 있어.”


아이들은 살짝 지루한 표정이었지만,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정말 나왔다. 쿠키 영상. 아무도 없는 객석에서 우리 셋만이 그것을 봤다. 아이들이 동시에 작은 숨을 들이쉬며 눈을 맞췄다. 마치 오랫동안 참고 견딘 끝에 얻어낸 보상을 조용히 확인하는 듯한, 그런 느릿한 감탄. 소리보다는 표정과 눈빛으로 전해지는 '드디어'라는 말이었다. 작은 우월감이 목을 간질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마인크래프트 블록을 꺼냈다.


“요!요!요!용암 취!취!취킨!”


노래는 끝없이 반복되었다. 나는 슬쩍 유튜브를 켰다. 잭 블랙의 진짜 ‘라바 치킨’ 영상을 틀었다. 더빙도 나쁘지 않았지만, 원곡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 그의 굵은 목소리, 특유의 유쾌한 발음, 그리고 기묘하게 멋진 몸놀림.

잭 블랙과 나, 이제 몸매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귀엽고 중후하다. 나는 그냥... 흉측하다. 아이들 앞에서 웃으며 “아빠가 더 멋지지?”라고 묻는 건 어쩐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영화관이 점점 사라지는 지금, 아이들과 함께 본 이 영화들을 나중에라도 함께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관이 남아 있는 그날까지, 가끔씩은 이런 하루를 소소한 행사처럼 이어가고 싶다.


영화의 평점은 어떨지 몰라도, 우리에겐 별 다섯이었다.
아이들은 계속 노래를 불렀고, 나는 계속 그 영상을 반복했다.
다음 영화도 꼭 우리끼리 보러 가야지.
어두 컴컴한 영화관 좌석에서, 팝콘 냄새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만 있다면, 어떤 영화든 별 다섯이다.


'요!요!요!용암 취!취!취!취킨.'


이상한 주문 같지만, '스티브 용암 치킨' 노래가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주문이자 우리 가족만의 암호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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