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퉁퉁 사후르.. 이게 도대체 뭐지?

봄바르딜로 크로코딜로

by 바삭새우칩

요즘 들어 아이들이 무언가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퉁퉁퉁 사후르나~ 트랄라레로 트랄랄라~”

처음엔 유행하는 노래인가? 아니면 만화나 유튜브에 나오는 유행어인가 했다.
아이들이 몰래 유튜브를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웠고, 혹시 건전하지 못한 콘텐츠를 접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결국 인터넷을 열었다. 검색창에 '퉁퉁 사후르'나 '트랄라레로 트랄랄라'를 입력해 보니, 금세 엉성한 영상들이 쏟아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들과 기괴한 그림체, 이탈리아 억양의 인공지능 음성이 덧붙은 짧은 클립들이 대부분이었다. 알고 보니 이건 '이탈리안 브레인랏'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밈이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조악하고 어설픈 편집과 기묘한 중독성으로 주목을 받는 일종의 놀이 같았다. 과일, 전자기기, 동물 같은 전혀 상관없는 요소들이 뒤섞인 채로 캐릭터화되고, 각각 능력치와 세계관이 설정되어 있었다. 애초에 무섭다거나 불건전하다기보다, 너무 허술해서 되려 어이없게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캐릭터 이름들도 대부분은 그냥 의미 없는 소리의 나열이었다.


아이들에게 슬쩍 물어봤다.


"얘들아, 거기에 브르르 브르르 파타핌도 나와? 그렇게 부르면 맞는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째의 눈빛이 번쩍였다. 첫째도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르르 브르르 파타핌은 나무 팔다리에 코주부원숭이 머리가 달린 괴물이야! 진짜 무섭게 생겼는데, 숲을 지켜."


"응, 숲에 몰래 들어온 사람을 나무뿌리로 잡거나, 함정을 만들어서 공격한대."


"원래 이름은 그냥 파타핌인데, 브르르 브르르는 모자 속에 사는 개구리가 낸 소리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세계에선 모든 소리가 캐릭터가 되고, 이름이 되고, 능력이 되었다.


'이거… 우리도 만들어볼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제안했다.


"우리도 한 번 만들어볼까?"


아이들이 동시에 되물었다.


"어떻게 만들어?"


"음, 일단 색연필로 한 장씩 캐릭터를 그려보자. 그리고 이름도 꼭 지어 와야 해."


아이들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 반 의심 반의 눈빛.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어떤 괴물이 태어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 챗지피티… 그거면 될지도 몰라."


얼마 전, 모두가 지브리 스타일로 자기 얼굴을 변환해 보던 그 열풍이 떠올랐다. 어쩌면 아이들이 그린 괴물 그림도 이미지로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아이들은 각자 색연필로 그린 종이들을 들고 왔다.


“얘 이름은 젤라핑핑쌍쌍바야. 아이스크림인데 젤리처럼 무한으로 분열해.”


“얘는 워터멜론젤리베어. 입에서 젤리를 뿜고, 젤리로 공격을 해!”


“내 건 엘레펀트눈알귀신! 눈알에서 레이저가 나와. 진짜 강해!”

나는 웃으며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캐릭터 설명을 GPT에게 입력했다.

아이들과 처음 만난건 ‘젤라핑핑쌍쌍바’. 젤리처럼 생긴 몸이 계속 분열하는 능력을 가졌단다. 그림은 단순했지만, 정말 젤리처럼 반짝이고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과, 슬며시 흐르는 녹은 젤리가 캐릭터에 생명력을 더했다.


다음은 ‘워터멜론젤리베어’. 입이 달린 수박이 입에서 젤리곰을 뿜는다. 큼직한 수박이 젤리 토해내는 모습이 귀엽고 이상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초코칩쉐프초코’. 원래는 나무괴물이라고 했지만, 하얀 셰프 모자를 쓴 초코칩 쿠키 모양의 괴물이 화면에 등장하자 아이는 주저 없이 이름을 바꿨다. 이게 나무인지 강아지인지 알수없는 낙서처럼 시작된 그림은 친근한 요리사 괴물로 다시 태어났다.


마지막은 ‘엘레펀트눈알귀신’. 코끼리 몸에 외눈이 달린 귀신인데, 밤에만 나타나 눈에서 레이저를 쏜단다. 기괴하면서 슬픈 눈빛을 지닌 모습이었다.


그날 밤, 아이들은 각자의 캐릭터를 머릿속에 품은 채 침대 위에 누웠다. 불은 꺼졌지만,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초코칩쉐프초코는 쌍쌍바랑 팀이야. 얘는 방어하고, 쌍쌍바가 공격해.”


“아니야, 워터멜론젤리베어가 젤리곰을 뿌리면 초코칩이랑 섞여서 더 강해져!”


“그럼 엘레펀트눈알귀신이 다 쏴버리면?”


대화는 점점 격렬해졌고, 캐릭터들의 성격도 세세하게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더 웃긴지, 누가 더 착한지. 전투만이 아니라 성격과 역할까지 조율하며 서로의 상상을 보태 나갔다.

둘째는 젤라핑핑쌍쌍바가 분열하면서 생긴 쌍둥이 개체들의 이름까지 붙였고, 첫째는 엘레펀트눈알귀신의 약점을 어둠이 너무 깊은 밤엔 눈알이 말라붙는다고 설정했다.


“그럼 그 시간엔 초코칩쉐프초코가 쿠키로 회복시켜 줘.”


“근데 그 쿠키는 젤리베어만 먹을 수 있음.”


“그러면… 젤라핑핑쌍쌍바가 질투해서 화내잖아!”


이야기는 규칙도 없고 목적도 없었다. 설정도 없었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게 곧 규칙이고, 세계관이 되었다. 하지만 멈출 줄을 몰랐다.

어느 순간, 목소리는 속삭임으로 바뀌고, 대답은 점점 간격을 두더니 조용해졌다.

불 꺼진 방 안. 이불속. 잠들기 직전까지 이어진 상상 속 배틀과 대화는 점점 꿈속으로 번져갔다.

나는 방문 틈으로 조용히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젤리곰이 이불사이를 기어가는 소리 같기도 했고, 레이저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날 밤, 아이들이 꾸는 꿈 속에서는 분명 누군가가 쿠키를 굽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눈알을 번쩍이며 지켜보고, 누군가는 젤리를 뿌리고, 누군가는 무한히 쪼개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밤의 몬스터들은, 아이들 마음속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들에 우리는 종종 무심해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고, 교육적으로 마땅치 않다고 느껴 배척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마음이 있고, 그들만의 언어가 있는 거다.

잠시만이라도 귀 기울이고, 함께 웃고, 같이 상상해 보는 경험. 어른인 내가 한 발 다가서는 순간, 아이들의 상상은 현실이 되고, 유행은 언젠가 떠올릴 소중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그 날, 나는 배웠다. 육아란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꾸는 꿈에 잠시 함께 눕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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