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바깥에 있었다. 초여름이라기엔 햇살이 제법 강했고, 습한 바람이 온몸을 눅눅하게 감쌌다. 점심도 대충 넘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겨우 집 근처까지 왔다.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지쳐 말이 없었고, 나도 핸들 위에 팔을 얹고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여보, 노을 예쁜데… 우리 잠깐만 바다 쪽 갈까?”
평소 같았으면 짜증 섞인 말투로 “오늘은 그냥 집 가자” 했을 테다. 하지만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답 대신 방향지시등을 켰다.
해변공원 근처는 역시나 이미 차들로 가득했다. 주차장은 만차였고, 도로변도 빼곡했다. 내 안의 피로가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말은 삼켰다. 우린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걸었다.
공원에 도착한 후에 나는 일부러 한 발 뒤에서 걷기 시작했다. 아이 둘은 먼저 달려가고, 아내는 뒤를 따르며 작은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 장면이 꽤나 예뻐 보여, 조용히 휴대폰을 꺼냈다.
멀리서 몰래,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찰칵. 한 장. 또 한 장.
노을은 수평선 끝에 걸쳐 있었고, 바다는 금빛으로 번지고 있었다.
큰아이는 자신이 찍은 노을 사진을 두 손에 꼭 쥐고 아내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그 장면을 멀찍이 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가족사진 속에도, 나는 없다. 늘 그래왔다.
사진 속엔 아내와 아이들만 있다. 여행지에서, 생일 파티에서, 놀이터에서. 나는 늘 프레임 밖에 서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어릴 적 앨범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엄마와 동생과 함께 찍혀 있었고, 아버지는 거의 없었다. 친척들 모임사진, 놀러 갔을 때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찍은 듯한 가족사진 한두 장.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어릴 때 그걸 몰랐다. 아버지가 사진에 없다는 걸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공백은 그냥 그렇게 지나쳤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찍은 가족사진을 정리하다 문득 깨달았다. 거기에도 나 역시 없었다. 사진마다 아내와 아이들만이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가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는 걸.
가족들의 기억을 자신은 빠진 채 남겨주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를 따라 걷고 있다. 프레임 밖에서 셔터를 누르는 사람. 언제나 빠져 있지만, 가장 먼저 그 순간을 눈으로 담는 사람.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잠들었고 아내는 차창밖을 한참 바라보다가 내게 말했다.
“오늘 같이 가줘서. 고마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에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이 드는 건, 아버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람만이 아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집에 도착해 불을 끄고 누웠을 때, 다시 사진을 꺼내 보았다. 바다, 노을, 아이들, 아내. 그 안에 나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