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다. 영화나 글과는 무관한 일을 하며, 거창한 이력 없이 평범하게 살아왔다. 출근길엔 운동도 할 겸, 교통비도 아낄 겸 공유자전거를 타고, 퇴근길엔 지하철 안에서 곯아떨어지기 일쑤인 그런 하루를 반복하며 지낸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방학 숙제로 나왔던 일기는 세 장도 못 채워봤고, 독후감은 한 번도 제출한 적이 없다. 결국 선생님께 엉덩이를 맞던 기억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게다가, 고졸에 공고 출신이다. 펜보다는 드라이버를 잡는 게 익숙했다. 지금까지 삶은 그랬다. 그런 내가 지금 브런치북의 프롤로그를 쓰고 있다는 게, 나로서도 참 이상하고 웃긴 일이다.
그래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걸 제법 즐겼다. 어릴 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나 DVD를 빌려 영화를 봤다. 퇴근 후 조용한 방 안에 앉아 영화 한 편을 틀어놓는 시간이 좋았다. 책 속 문장들이나 영화 속 장면들이 마음에 오래 남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하고, 그러고는 지나쳤다. 마음 어딘가에 가만히 쌓이기만 할 뿐, 꺼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뚜렷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권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문득 그랬다. 엉뚱한 생각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아마도 그즈음 보았던 몇 편의 영화나, 그와 비슷한 장면들이 조용히 스며들어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편의 글을 써 공모전에 냈고, 브런치 작가도 신청해 봤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모두 실패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글이란 걸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 내가 너무 성급하게 덤벼든 셈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글쓰기를 배워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글 잘 쓰는 법을 찾아 읽고, 매일 짧게라도 써보려 애썼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다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보자 마음먹었고, 제출할 글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중엔 영화 관련 에세이도 있었고, 몇 편은 아내가 읽고 “괜찮다”라고 말해준 글들이었다.
망설임 끝에 다시 써 내려갔다. 영화 하나를 보고 떠오른 마음속 장면을 꺼내어 글로 붙여 보기도 했다. 그 글들을 아내에게 보여줬고, 조심스럽게 읽던 아내는 말했다.
“괜찮은데? 이런 식으로 써보는 거, 나쁘지 않겠어.”
그 말 한마디가 어설픈 내 글에 커다란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나는 다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고, 다행히 이번엔 통과했다. 생전 처음, 무언가를 써서 어딘가에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첫 연재는, 그때 썼던 영화 글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이 브런치북에 담긴 글들은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분석이 아니다. 나는 영화 평론가가 아니니까. 어떤 영화는 거기에 담긴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유명한 장면이나 장치를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이미 인터넷에는 수많은 평론가들의 훌륭한 글이 넘쳐난다. 나는 그들과 경쟁할 마음도 없고, 애초에 따라갈 수준도 안된다.
그래서 그냥 생각이 났거나 마음속 어딘가에 잔상이 남았던 영화를 떠올려 글을 썼다.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대단할 필요도 없었다. 내게 남은 감정 하나만큼은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이 책의 시작이고, 전부다.
때로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기도 했고, 때로는 내 안의 감정이나 어떤 상황에서 불쑥 떠오른 영화의 한 장면을 바탕으로 쓰기도 했다. 그래서 이 글들은 정해진 틀이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시작하고, 제멋대로 끝난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억과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써 내려갔다.
아내와 소파에 앉아 영화 한 편을 고를 때면, 나는 OTT 채널 화면을 넘기며 마치 전문가처럼 영화마다 설명을 덧붙여 추천하곤 한다. 아내는 대부분 심드렁한 얼굴로 “그냥 빨리 아무거나 틀자”라고 하지만, 나는 괜히 아는 척을 했을 뿐인데도, 왠지 모르게 그게 조금은 흐뭇하다. 그 정도면, 영화를 보는 눈이 아주 없진 않은 거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이건, 영화에 대한 글이자 내 삶의 조각을 조심스레 꺼내 적어본 기록이다. 아직은 어설프고 더듬거리지만, 분명 내 안에서 진심으로 시작된 첫 시도다.
영화를 보다 문득 스친 감정, 그날의 공기, 오래전 기억 하나. 놓치기엔 아까운 마음의 흔적들을 붙잡아 글로 옮겨보았다.
그게 전부지만, 그 속에 내 마음을 다 담았다. 그리고 그걸 함께 읽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첫 번째 글은, 최근에 본 한 편의 영화에서 시작된다. 그 영화는 특별히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다가 머릿속 생각을 꺼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조용하지만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도는, 이상할 만큼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