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4일
Desienchanted를 듣다 두서없이 흐트러진 많은 것들을 한 소실점으로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파편화된 것들. 사진들. 글들. 물건과 파일. 저 난해한 허수들도 그만 쳐다보고 싶다라는 생각과 함께. 마주 보고 대화하지만 때론 아무것도 아닌 무가 따라온다. 빨리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가라고, 이 시간에서 다음 시간 과거나 미래의 시간으로 움직이라 재촉은 누가하는 것일까. 점과 점은 이어지고. 사건과 만남은 조우한다. 뒤섞인 진실과 거짓속에서 자신만을 위한 문장 혹은 침묵 찾기는 숨겨져있는 보물 찾기 같은 것이기 때문에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뒤섞인 시간 속에서 사람이나 사랑은 하나가 아니다. 무한 혹은 전무로서 너이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와 너는 무한한 현재 속에 있다.
많이 알수록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뛸때는 심박수가 올라간다. 구해야 찾아진다. 당연한 이치들. 월요일부터 금요일 밤의 시간이 길었다. 토요일 많은 것을 할 계획을 가지고 하루라는 시간에 뛰어 들었으나 - 한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과 연결된 또 다른 한 사람이 따라왔다. 주말 낮부터 호와스런 음식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마주한 친구는 술 한병을 가져왔다. 잔과 잔의 사이에 고요함이 따라왔다. 문득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린다. 여기는 지하 식당이라 그럴리는 없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거의 시간과 사건들이 화제에 오른다. 그러고보니 이 식당에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숲속에서 울려퍼지는 피아노 같은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앞 친구의 얼굴에서 많은 사람들이 겹쳐진다.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그에게 있다. 시간도 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 할 단어나 문장을 찾는다. 화제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물끄러미 이 시간을 바라본다.
문득 평생 그리워하는 무언가를 찾아 가는 것이 한 삶의 형태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동안 그리워하는 시간, 존재, 장소. 일생에 몇 번 겪을까 말까한 그것을 무엇이라 불려야 될지. 기억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욕망 처럼. 본능 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길을 따라 목적지로 가는 삶을 본다. 옳음 같은 거, 자존심 같은 거 내려놓고 상념에도 빠지지 않고 삶을 똑바로 바라보며 가는 삶을 옆에서 본다. 그렇게 네게 갈께라고 너는 말했다. 그 어느때보다 그리고 늘 한결같이 가겠다고 메아리처럼 덧붙였다.
이런 저런 상념속에 차한잔을 기울이는 동안 또 한 사람이 왔다. 이 사람과 올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꼬치구이집으로 자리를 옮기고 셋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앞으로 겪어갈 시간들에 대해 말했다. 이렇게 하기로 해요 라고 그는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합류한 이는 조금씩 자기의 생각을 정화해서 흘러 보냈다. 어떤 한순간. 말이 필요하지 않을정도의 자체적으로 빛이 나는 시간, 그 빛이 다른 길로 문으로 이어지는 그런 순간을 생각한다. 이런것이 메타인지 였던가.
한 작가는 기억의 수명은 기억하려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므로 의지가 없다면 기억은 사라진다고 했다. 고로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는다면 미래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기억이 원하는대로 그려갈 것이라고.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수 있다”라고.
일요일 오전에 잠깐 멈춘다. 잠깐 생각에 잠긴다. 길에서 벗어난다. 스토리라는 느린 속도의 비이클, 한없는 패러프래이즈의 연쇄 작용. 시간의 스핀속으로 어떻게 들어갈까. 저 앞에 폭풍이 몰려온다. 한없이 모든것을 빨아들이는 폭풍이다. 아직 멀리 있어 현실감은 비껴있으나 그것은 언젠가 틀림없이 닥친다. 그리고 이 폭풍은 어딘가로 데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