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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사람일수록 겉으로는 무던해요

예민한 기질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바로잡아야 할 오해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민하다'라는 표현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면,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데다가 매사에 신경질적이라 주변 사람들과 자주 부딪히는 '까탈스러운' 사람을 떠올리기 쉽죠. 하지만 실제 예민한 기질의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요.


타고난 감각 센서가 예리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남들의 기분이나 생각이 쉽게 감지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주변 눈치를 많이 보고 남들에게 맞춰주며 살아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는 사소한 일로 쉽게 삐지고 감정이 상하는 자신을 예민하다고 자책하며 살아왔겠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모두에게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주변 분위기나 남들 기분을 배려해 오히려 참는 쪽에 가깝고,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쓰며 상대방을 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까탈스러운'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요. 혹여나 상대방이 불편해할까 봐 거절이나 부탁도 편히 못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볼 때는 사회성도 좋고 편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당사자들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모되며 금방 번아웃되기도 해요. 남들은 쉽게 잊을만한 사소한 일도 혹시 주변에 실례가 되지는 않았을까 끊임없이 반추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자책하고, 하루 종일 신경 쓰며 살다가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뻗어버리는 연비 최악의 사람들이죠.


그래서 사실 예민한 사람들은,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사람보다는, 자신을 태워 주변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다정한 사람들이에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힘든 이야기에 공감도 잘해주며, 내 마음보다 타인의 마음을 먼저 배려해 주지만, 정작 자신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기도 해요. 오랫동안 마음이 곪아가는 사람도 겉으로는 항상 웃고 다니다 보니, 마음의 병을 주변에서 눈치채기도 어렵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놓는 것도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 생각해 혼자서 끙끙 앓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지금 이야기한 내용에 깊이 공감하며 읽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다음 장에서 이야기할 예민한 기질의 사람(Highly Sensitive Person) 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동안 자책해 온 것처럼 내 성격이 이상하다거나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타고난 신경계의 특성으로 인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다르게 태어난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 특성에 맞게 살아가는 방식과 마음을 지키는 삶의 요령도 남들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내가 HSP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만약 이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억지로 남들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왔다면, 당연히 힘들고 불행한 일상을 살아왔을 거예요.


예민함을 극복하고 싶어 이 책을 읽고 있다면, 마음을 지키는 관리법들을 익히기 전에 우선 이 기질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나만 왜 이렇게 힘들 게 사는 것 같지?', '예민함을 없애고 싶어..' 이런 생각들만 해왔다면, 이제는 완전히 접근 방법을 바꿔야 해요. 그동안 내 예민함을 부정하고 회피하며 남들처럼 되어보려는 노력만 해왔다면, 이제는 예민함을 내 피부색처럼 타고난 기질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HSP에 대해, 그중에서도 '나의 예민함'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자신이 예민한 기질인지 확인할 수 있는 HSP 체크리스트와 함께 HSP의 특성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드릴게요. 그러고 나서 다음 장에서는 여러분의 예민함을 자신의 일부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드린 뒤, HSP만의 마음 관리법을 하나씩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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