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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O Jun 26. 2020

06 | 자가격리 된 엄마에게 꽃을 보냈다.

영원한 사랑이란 꽃말을 지닌 '스토크'를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내 어릴 적의 8할은 외할머니다. 

외할머니 손에 자랐고, 그래서 난 외할머니가 난 더 좋았다. (아빠가 들으면 서운해하겠지만)

그런 외할머니는 내가 병원에 입원하기 딱 2주 전에 돌아가셨다.

가족들 모두 초기엔 치매이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고 담낭암 말기이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마지막 숨을 내뱉으실 때까지 다른 손주들은 몰라도 내 이름은 똑똑히 기억하시고 불러주셨다.

입원 초기, 다들 할머니가 치매라고 알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 할머니가 가끔 깜빡 잊으시는 것들은 있어도 치매의 전조를 보이지는 않았었고, 할머니의 안색에서 약간의 황달 기운을 보았기에 나는 더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도, 이모들도 할머니를 치매 환자처럼 대할 때 '할머니를 그렇게 대하지 말라.'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하루는 '오늘은 내가 할머니 옆을 지키겠다'고 회사에 반차를 내고 강남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는 일산 백병원까지 갔다. 가는 길에 전화로 엄마에게 할머니의 상태를 여쭤보니 '할머니가 가족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말을 중얼거리신다.' 말하셨다. '지켜보기 힘들 텐데 굳이 그래야겠냐'는 엄마의 말에 '그런 말이 어딨냐'하고 일산으로 향했다. 내 할머니인데 못 볼게 어딨고, 못할게 어딨나.


병원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마치고 손 소독제로 구석구석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병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병실 문 앞에 서니 보이는 우리 할매. 가방을 내리고 '할머니, 누구 왔게요~'하고 말하니 '우리 강아지!'라고 똑똑히 말하시는 게 아닌가. 엄마도 놀라고, 함께 계시던 작은 이모도 놀라고, 옆 침대 아주머니도 놀라셨다.


그런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건 봄이었다.

꽃이 피어나는 봄.

내가 도착하고 얼마 안돼 내가 주문한 것이 1층 로비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내려가서는 내 몸체만 한 박스 하나를 들고 올라왔다. 조용히 병실 앞에서 박스를 뜯었다. 그 안에는 우리 할매 몸 크기 만한 푸른색 수국이 한 다발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꽃을 들고 병실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꽃을 보시자마자 너무나도 선명하게 '아이고, 이쁘다! 이뻐!'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엄마는 그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병원에 있는 동안 울 할매가 보고 싶을 때, 난 할머니가 꽃을 끌어안고 꽃향기를 많으며 주무시는 그 사진을 보곤 했다.


엄마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를 보낸 지 3주가 지났을까. 집에서 가족들과 코로나 확진자(나)와 접촉하여 자가 격리 중인 엄마는 병원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하시고는 불현듯 말하셨다. '오늘은 엄마가 너무 보고싶다.'고.

우리 가족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사실 그전에 할머니가 살던 집이었다. 할머니가 살던 집을 부모님이 사고, 더 큰집으로 모셨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간의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한 그 집에 24시간 내내 있어야 했던 상황이 엄마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사무치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안했다.

그러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원모먼트(내가 제일 애용하는 꽃집이다)를 홈페이지를 켰다. 그리고 이런저런 꽃을 보다 엄마에게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 말을 지닌 '스토크'를 골라 엄마에게 보내기로 했다.


두어 시간 즈음 지났을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화색이 돌았다.


어머, 웬 꽃이야~ 너무 이쁘다. 아들 고마워!
가족이 밖을 나가지 못하니까 집으로 꽃을 들여오네!
너무 이쁘다~


마음속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커졌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가지고 있던 미안한 마음을 눈치채신 건지 '덕분에 아빠도 동생도 집에서 푹 쉬고 있다.'는 한마디를 덧붙이고 통화를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찍어 보내준 사진.  밤새 꽃이 만개했다며 보내주셨다.


밤늦게 전화가 울렸다.

12시가 다 된 시간, 갑자기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전화를 받아 '무슨일 있는건 아니죠?'라 물으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침대 머리맡에 꽃을 꽃 병에 꽂아서 두었는데, 엄마가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우리 엄마도 꽃 참 좋아했는데.
너 할머니 입원했을 때, 그 꽃 선물 참 잘한 것 같아. 고마워

괜히 머쓱해졌다. 엄마에게 대답했다.

엄마,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가 소중했던 것만큼 할머니도 나에게 소중했어요.


엄마는 또 한 번 '고맙다'고 말하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으셨다.


뭐 먹고 싶은 것 없니?


주어진 것에 불평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그럭저럭 입원하고 병원 밥 외에는 별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막상 물어보시니 고민에 휩싸였다. 그러다 낮에 햇빛이 내리쬐는 공원을 보며 소풍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엄마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어요.

엄마는 '맞아, 집에서 김밥 싸 먹으면 정말 싸기 무섭게 먹던 아들 생각나네. 알겠어! 엄마 자가격리 끝나면 싸들고 갈게!'라고 하셨다.

병실 안에서 갑갑하던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바램.

며칠 뒤,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항상 '좀 쉬어가면서 일해라'라고 말하시던 게 생각났다.

석가탄신일 3일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장례를 마치니 연휴가 시작되었다. 장례가 끝난 뒤 연휴 덕에 몸살을 면했다.

연휴가 끝나고 딱 한 주 출근한 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다행히 중증으로 기울지는 않았지만 병원 신세를 40일을 넘게 지고 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할머니는 정말 쉬기를 바라셨던 게 아니셨을까?

저 멀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그 순간에도 당신 큰 손주와 자식과 가족들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쉬어가게 하고 싶은 그 소망이 하늘에 닿은 게 아닐까.


할머니가 보고 싶어 졌다.

나는 또 그렇게 엄마에게 꽃을 보냈다. 그때 그 푸른 수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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