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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O Jul 21. 2020

10 | 코로나, 50일 동안의 입원.
그리고 퇴원.

길고 길었던 싸움의 끝. 하지만, 과연 끝일까?

40여 일 동안 25번의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내 검사 결과는 한결같았다.

양성.

입원 후 첫 2주 동안은 고열과 오한에 시달렸지만 그 이후에는 관련 증상은 모두 호전되었다. 하지만 3주 차부터는 이렇다 할 증세가 없음에도 테스트 결과는 지속적으로 양성으로 나왔다. 그러던 중 입원한 지 45일이 되던 6월 25일, 질병관리본부 브리핑을 통해 퇴원 기준이 변경되었다. 브리핑 내용을 참고하고 간호사님들과 의사 분들께 여쭤 본 결과, 딱 나 같은 사람을 위해 기준이 변경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퇴원할 수 없었다.

입원 마지막 날, 간호사님들은 이런 귀여운 장난들을 치셨다. 사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없어 알아보기 위해 한 것이다. 공룡 한 분과 토끼 한 분을 만났었다.

입원 43일 차부터 갑자기 찾아온 인후통으로 인해 나는 진통제를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복약의 시작이 46일 차부터 새롭게 적용된 퇴원 기준에 반하게 될 줄은 몰랐다.

45일 차에 발표된 변경된 퇴원 기준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해열제 복용 없이 72시간 동안 발열이 없어야 한다고?
해열제? 타이레놀이 진통해열제 아닌가?
난 이미 먹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입원 46일 차 목요일 오전에 회진을 들어온 의사 선생님은 내가 예상한 그 말을 그대로 해주셨다.

환자분께서 이미 해열진통제를 먹고 있어서 임상기준에 맞지 않아 금요일 퇴원은 어려울 것 같아요.
오늘 점심부터 해열진통제 처방 없이 발열이 있는지 지켜보고 72시간이 지난 후에도 문제가 없다면, 월요일에 퇴원을 하는 것으로 할게요.

잠시 생각을 깊이 해보았다.

목요일 점심부터 72시간 이후면 일요일 점심시간인데...?
아, 병원들은 일요일에 퇴원을 하지 못하지.

잘 알겠다고 대답하고, 그 날 점심 식사부터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끝이 있는 기다림

설레기 시작했다.
3일만 기다리면 퇴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냉장고와 수납장에는 불과 며칠 전에 친구들이 보내준 물건들이 아직도 꽤나 남아있었다. 3일밖에 남지 않은 시간, 나갈 때 나는 그 물건들을 단 하나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았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 남은 컵 불닭볶음면을 끓여먹었고, 넷플릭스를 볼 때면 몽쉘을 꺼내 먹었다. 토마토즙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생강차는 목이 마를 때면 물 대신 계속 끓여 먹었다. 친구들이 보내 준 것들 하나하나 챙겨 먹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던 어느 날.

퇴원이 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 전화 속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기뻐하셨다.

드디어 나오네!
나오면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아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못 보다니!
목 빠지는 줄 알았네!
퇴원하는 날 병원으로 갈까?

엄마의 말들에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한 동안 연락한 친구들에게 월요일에 퇴원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돌렸다. 친구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축하해줬고 격려해줬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72시간의 기다림.
그리고 맞이한 쉰 번째 아침.

마지막 날 저녁, 청소하시는 간호사님. 강아진 줄 알았는데 토끼라고 하셨다. 문화충격!

72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아마도 집으로 나서게 될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겠지.

지난 49일과 다를 것 없이 맞이한 입원 후 맞이한 50번째 아침도 어김없이 새벽 5시 반에 시작되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님은 '오늘은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라며 나를 오히려 독려해주셨다. 그 누구보다 내가 얼른 퇴원하고 일상으로 바라시는 간호사님의 그 한 마디는 그분들의 진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혈압과 혈중 산소포화도, 그리고 체온을 측정하신 간호사님은 '오늘 퇴원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퇴원시켜드릴게요!'라고 말씀을 남기시고 병실을 나가셨다.

나는 혈액을 연구에 기부하기로 했다. 퇴원날도 역시 피를 꽤나 뽑혔다. 그래도 행복했다.

네 시간 즈음 지났을까? 침대 옆에 붙은 스피커에서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퇴원하시라고 하시네요! 자세한 내용은 곧 알려드릴게요! 들고나가실 물건과 버리실 물건, 구분해서 두시겠어요?

알겠다고 대답을 한 뒤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서랍장에서 가방을 꺼냈고, 버릴 옷가지들은 폐기물 통에 버렸고, 챙겨 나갈 물건들은 가방 속에 분류해 담았다. 전자책과 노트북, 충전기들은 전자기기 정리 파우치에 정리해 넣었다. 수납장 위에 남겨진 생강차 스틱 두 개를 발견하고는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여 모두 타서 마셔버렸다.  냉장고 안, 부산 누나가 보내준 쿠키들을 꺼내서 생강차와 함께 오물오물 먹으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오전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퇴원 대작전.

오전 10시 30분, 벽에 붙은 수화 구에서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퇴원 준비를 위해 곧 다른 간호사가 들어갈 거예요.
버려야 할 짐은 한 곳에 모아두시고, 챙겨야 할 것들은 락스를 뿌려 소독해야 하니 물기가 닿으면 안 되는 전자기기들은 따로 빼놓으세요.

간호사님의 가이드에 맞춰 가지고 나갈 짐은 침대 위에, 버릴 짐은 바닥에 두었다.

짐이 제법 많았다. 

30분이 조금 지났을까? 접이식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간호사 두 분이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물건 다 정리하셨어요?'라 물으셨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짐을 나눠 담은 봉투들 열고 그 안에 락스를 희석하고 만든 소독약을 열심히 뿌리셨다. 옷이며 각종 전자기기며 종류를 불문하고 열심히 뿌리셨다. 알싸한 락스 냄새가 방에 진동했다. 그리고 마스크와 발싸개, 비닐 앞치마를 주시며 입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한 분은 병실을 구석구석을 확인하시면서 빠트린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셨다. 나도 세 번쯤은 확인해서 두고 가는 물건은 없을 거라고 자신하며 '다 확인했어요!'라고 말했다. 쌀 한 톨만 한 미련도 이 병실에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함께 확인해주시는 간호사님들

챙겨 입어야 할 보호 장비들은 모두 챙겨 입었다. 그리고 접이식 중문 앞에 섰다. 간호사님은 가자고 했다. 나는 제발 가자고 했다. 그리고 접이식 문을 드르륵 열고 병실 문 앞에 섰다. 소독약을 손에 바르고 장갑을 낀 손을 꼼꼼히 연신 비벼가며 소독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다른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자분! 여기 꽂혀있는 폰 충전기도 챙겨야 하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단 하나의 물건도, 쌀 한 톨 만큼의 미련도 남기지 않겠다며 꼼꼼히 챙긴다고 했는데 정작 머리맡에 있던 충전기와 케이블을 까먹은 것이다. 왠지 나의 평탄할 퇴원 뒤의 삶에 부정 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간호사님을 향해 '챙겨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손 소독을 마쳤다.

간호사님은 접이식 문을 닫았다.

병실 문을 열고 병실을 나섰다.

병실 앞 초록색 소독 발판을 밟았다.

간호사님은 빨간색 선 안쪽 길로 걸어가라고 했다. 빨간색 선이 그어진 복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복도에는 나와 간호사님, 그리고 그 망할 바이러스가 함께 서 있었다.

그 망할 놈의 바이러스.


음압기 소리는 끝없이 들렸지만 끝을 모르는 적막이 흘렀다.

간호사님은 자신을 따라 오라며 앞서 걸었다.

완치된 나는 간호사님을 따라갔다.

그리고 파란색 선과 빨간색 선이 나란히 그어진 병실로 나를 데려가셨다. 그곳에는 샤워실이 있었다.

샤워실 안에는 룸메이트가 보내준 옷이 봉투 안에 담겨 있었다.

간호사님 샤워를 마친 뒤 마스크를 쓰고 파란 선이 그어진 구역으로 나와 자신을 호출하라고 말씀하시고 방을 나서셨다.


환자복을 벗어 봉투에 넣고 샤워를 시작했다.

샴푸를 듬뿍 짜서는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이 거품이 났지만 그래도 연신 감아 댔다. 머리를 헹궈내고 다음은 바디워시 차례였다. 세 펌프는 짜서 열심히 거품을 내 몸을 구석구석 닦았다. 목부터 발 끝까지, 심지어 발톱 아래까지 구석구석 닦아댔다. 마지막 남은 바이러스 하나까지 모두 죽여 씻어 내릴 것처럼.

샤워실은 뿌연 김과 거품, 그리고 죽은 바이러스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바이러스는 모두 죽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몸을 물로 씻어 내렸다. 그리고 샤워실 벽에 잔뜩 튄 거품들도 씻어 내렸다. 그리고 하수구로 거품이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고 물을 끄고 샤워기의 물이 나오는 곳을 벽을 향하게 걸어두었다.

마치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군인이 무기를 잘 정리해서 무기고에 넣어 놓는 것 같은 경건한 마음이었다.


몸을 수건으로 닦은 뒤 옷을 입고 샤워실을 나왔다.

파란선이 그어진 곳을 나와 빨간 선이 그어진 공간을 보며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며 더 멀찍이 떨어져 섰다.

그리고 간호사님을 불렀다.

병실을 나섰을 때 입은 보호 장비들은 모두 폐기물 함에 버리고는 또다시 새로운 마스크와 앞치마, 그리고 장갑을 손에 꼈다.

간호사님은 나가자고 했다. 다시 복도의 파란선 구역에 서서 뒤를 돌아봤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앞을 봤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코로나, 개 같은 새끼

간호사님이 병실 밖 간호사님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니 문이 열렸다.

밖에서만 열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이 열리고 다시 초록색 발판을 밟고 병동을 나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는 흰 옷의 전사들.

나오셨네요!

간호사실에 발을 디딘 나에게 간호사님이 건넨 첫마디.

그리고 이어서 퇴원에 필요한 안내를 해주셨다. 퇴원과 격리 해제가 진행되기 때문에 별도의 추가 자가격리는 필요 없으며 수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하셨다.

모든 설명을 듣고 간호사님들 올려다보았다.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을 눈 매무새나 목소리로 어느 정도 알아는 보았지만 방호복을 벗고 계신 간호사님들을 보니 누가 누군지 하나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알아보는 것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지난 50일을 떠올려보았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헤아려지지 않는 오십일의 낮과 밤들. 그곳에는 간호사 분들이 계셨다.

의사 선생님들도 정말 고생하시겠지만, 간호사분들이 없다면 이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반드시 필패했을 것이다.

열에 시달리던 새벽 3시, 나는 수화기를 들어 열 때문에 힘들다 하면 그 갑갑한 방호복을 입고 바이러스가 잔뜩 있는 그 병동으로 들어와 내 손에 약을 쥐어주는 것은 간호사님들이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 병실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이곳저곳을 점검하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청소하는 것은 간호사님들이셨다.


그들도 무서웠을 것이다.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용감하고 담대하게 매일매일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은 바이러스에 무너져가는 환자들을 살려내고 있고, 나를 살려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살려내고 있을 것이다.

이 망할 놈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그들은 용맹하고 숭고하게 싸워내고 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다해 그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짐을 들고 간호사실을 나섰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먼저 타고 계시던 청소 이모님과 눈이 마주쳤다.

괜히 머쓱했다.

사람을 대면하는 게 뭔가 이상했다.


코로나 치료 입원비, 2500만 원.
내가 낸 돈, 0원

수납을 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수납처 앞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내 차례가 왔고 번호표를 내밀었다. 수납 담당자분께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나니 영수증이 프린터에서 나왔다

영수증에 찍힌 금액은 상상을 초월했다.

의료비 총액 2500만 원, 환자 부담비 360만 원.

병실에 앉아서 나는 하루에 50만 원씩을 쓴 것이다. 눈이 돌아갈 뻔했지만, 다행히 나에게 청구되지는 않았다.

금액 하단에는 '후불'이라고 쓰인 내역이 있었다. 안도의 한숨 아닌 한숨을 내쉬었다.

2500만 원짜리 영수증을 고이 접어 가방에 넣고 병원을 나섰다.


'환자분,
의리 있네요!'

병원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스타벅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도시남녀의 필수템인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왠지 사회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스타벅스를 들어가니 간호사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카운터로 다가가서 내가 미팅이나 특별한 장소를 갈 때 들고 가는 투고 백에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받아 들고 나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또 체온을 재고 질문지를 작성했다. 그만 측정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또 측정해야 했다. 그리고 격리 병동으로 올라가기 위해 보안 직원 분께 확인을 받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유리문을 두들겨 간호사님을 불렀다. 문이 열리고 나를 본 간호사님은 왜 다시 왔냐는 눈치였다.


나는 커피를 쥐어 드리며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간호사님은 다른 간호사님들을 불러 내어 커피를 전달하시며 나에게 '환자분, 의리 있으시네요! 축하드려요!'라고 말씀하셨다. 덕분이라고 말씀드리고 간호사실을 나섰다.


퇴원 후 첫 끼, 삼겹살.

병원을 나서니 배가 고팠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시간을 보니 오후 12시 30분이었다. 지난 50일 동안 이 시간에 점심을 먹어왔기에 이 시간에 배가 고픈 건 아마도 본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마스크를 고쳐 끼고 병원 창을 통해 매일 보았던 현대 시티 아웃렛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하의 푸드코트로 내려가 가게 메뉴 하나하나를 뜯어보았다. 그리고 고른 메뉴는 삼겹살이 구워져 나오는 반상 메뉴였다. 레귤러 사이즈로는 안될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나는 당당하게 라지를 시켰다.

두근거리는 몇 분의 기다림 끝에 나는 지글거리며 윤기를 뽐내는 삼겹살과 각종 반찬이 한 불판에 올라간 식사 한상을 받아 들고는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이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에 혼자 감격하며 먹는 내 모습이 뭔가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코로나를 이겨냈고, 이렇게 살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길고 긴 싸움의 끝에
또 다른 끝을 알 수 없는 싸움이 있을 것이라 난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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