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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O Jan 29. 2021

다시 기록하고 싶어 졌다.

| Prologue

감옥 아닌 감옥처럼 느껴졌던 병원에서의 50일. 그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난 퇴원했다. 그리고 퇴원 후, 한동안은 줄곧 집에만 있었다. 아마도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사람에 대한 환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글을 써 내려가야만 했다. 내 글을 발견하고 남기는 자신의 이야기와 상황들을 담은 댓글들, 내 글을 주기적으로 찾아와 남겨주시는 누군가의 응원의 말들에 나는 침대로 뛰쳐 들어 얼굴을 파묻고 몇 번이고 울었다. 그렇게 몇 날을 울 때면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솟아났다.


기록해야만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그 생각들의 기원을 쫓을 여유는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나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질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저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에 대한 환멸과 희망이 오묘하게 섞인 감정에 사로잡힌 하루하루를 살아 낼 때면 맥북을 열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까만색 화면의 빈 페이지, 깜빡이는 커서, 똑딱이는 시계 소리, 그리고 창문을 뚫고 들려오는 차 지나가는 소리...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음압기의 소리에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병원에서의 기억들과 내 귀, 머리, 그리고 마음을 할퀴어왔던 말들이 점점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기억들의 메아리를 뚫고 불현듯 "안되겠다."라는 외마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는 '양양 바다가 좋으니 한번 가보라' 했던 친한 여동생의 말을 불현듯 떠올렸다. 나는 단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인터넷에서 양양으로 가는 고속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들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예약을 모두 마쳐버렸다.

나에게 바이러스의 위협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옷가지 몇 벌과 씻고 바를 것들과 맥북과 충전기 그리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챙겨서는 양양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니 그 친한 여동생이 마침 양양에 있다는 것도 확인하고 그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동생은 "오빠, 터미널로 데리러 갈게요!"라고 말해주었고, 나는 '챙겨줘서 고맙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터미널에 도착했고, 그 동생은 남자친구의 차를 끌고 나와 나를 픽업해 인구해변으로 향했다. 차를 주차하고는 인구해변 한 켠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남자친구에게 나를 '친한 오빠'라고 소개해 주었다. 소개를 마친 뒤 내 손에 쥐어진 짐을 보고는 '숙소에 체크인해서 짐을 두고 나오면 같이 커피 한잔하러 가자'기에 숙소에 체크인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는 숙소 밖으로 나왔다. 짐을 두고 나온 나를 보자마자 그 동생은 내 손목을 낚아채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나를 데리고 갔다.

'마감이 15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괜찮냐'라고 물어보는 점원의 말에 그 동생은 나에게 괜찮냐고 다시 재차 물어보았다. 난 그저 '집 밖을 나와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괜찮다'고 말하고 주문을 마친뒤 커피를 받아들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 동생과 근황을 이야기했다. 항상 하던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일, 생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취업, 연애...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이야기들 중간 중간 내 눈에 펼쳐진 넘실거리는 파도의 모양들과 그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 순간, 나는 내 목을 옥죄던 매듭이 풀리고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이제 정말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밥을 먹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3일 정도 시간을 보냈다.

서울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아침, 게스트하우스의 다른 손님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몇시인시 시계를 보고 그 아래 도착한 이메일의 제목에 놀라 이불을 박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건 출간 제의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글을 읽어 내려가던 나의 눈은 한 문장에서 멈춰 섰다.


지호님 개인의 이야기는 시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개인의 불편에서 시작해서 사회의 혐오까지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중략)


내 심장은 미칠 듯이 뛰었다. 그건 출간 제의를 받았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나조차 나 자신에게 설명할 수 없었던 '내가 기록하는 이유'를 누군가가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써 그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노트북을 챙겨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들 사들고 이를 한 모금 마신 뒤 카페의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답장을 써 내려갔다.


서울로 돌아온 뒤 나는 이메일로 인사를 나눴던 편집자분을 카페에서 만났다.

마스크를 낀 채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나눈 이야기는 강렬했다. 나의 의도를 그 누구보다 명확히 이해해 주셨고, 나는 그런 편집자분께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책을 엮어내기로 했다.


모든 것을 쏟아내었던 시간들.

그리고 다시 기록을 시작해야만 했던 이유.

책 한 권을 엮어내기 위해 얼마나 글을 써 내려가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던 나는 편집자분께 물어보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은 이랬다.


우선 모든 걸 다 쏟아내 보세요.
그러고 나면 우리가 무엇을 더 써 내려가야 할지,
무엇을 더 채워야 할지 보일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는 5주라는 시간 동안 글을 끊임없이 쏟아내었다.

쏟아내고 또 쏟아내었다. 쏟아내고 읽어보고, 다시 쏟아내기를 몇 날 며칠을 반복하고, 편집팀 분들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나는 글을 계속 고쳤다. 마치 짜내는 것 같았다. 블로그에 동시 연재하고 있었기에 나는 포스트에 달리는 댓글들을 읽으며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고 교정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7주란 시간을 쉼 없이 달려 10월, 마침내 책이 세상에 나왔다.

2개월 만에 책이 세상 빛을 봤다는 것에 놀랐지만 동시에 내 머리와 마음속의 모든 것을 쏟아내버렸다는 것에 지쳐버린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쳐있을 수 없었다. 책을 낸 뒤 끊임없이 받는 수많은 미디어들에 대응하고, 동시에 셀 수조자 없는 독자분들 댓글들에 나는 대답해야만한다고 느꼈고 대응해왔다.


한창 미디어를 만나며 지쳐가던 지난 20년 연말, 나는 블로그 방문자분의 한 댓글이 마음속에 여운이 짙게 남아 한동안 생각에 잠겨버렸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ZIO님의 발자국 큰 역사로 남을 것입니다.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 hjson94님의 댓글


나의 기록이 역사로 남을 것이라니...

책을 쓰며 내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고, 그저 근원을 알 수 없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미디어를 만나기를 몇개월을 반복하다 그 모든 것들을 접고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이 댓글이 나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키보드를 다시 두들기게 만들었다.


나는 글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글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글을 많이 쓰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폭풍이 휘몰아치던 나의 20대의 끝자락에서 '기록'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깨우치게 되었다. 아니, 그 의미를 온 몸으로 사무치도록 알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있던 생각과 기억, 그리고 감각들 그 모든 것을 쏟아내었던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회자되고 관심을 받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공유와 공감'이라는 것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 나는 절실히 느꼈다.


그 경험과 느낌을 자양분으로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의 조각들을 차근차근 기록하고 기억하려 한다.

물론 이 기록들도 역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삶으로 남고 싶다는 사치스러운 욕심을 부려보려 한다.

그 욕심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기록하려 한다.

내 삶의 기록이 누군가의 삶 속에 자리할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욕심 같은 설렘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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