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쓰기]
[나의 시 쓰기]
어느 초여름 토요일, 반공휴일이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시각이 하오 서너 시는 족히 되었다. 책가방과 교복 윗옷을 마루에 내던지다시피 놓고 부엌으로 갔다. 찬거리를 대충 챙기고 바가지에 담아둔 찬밥을 물에 말아 먹고는 들로 발길을 서두른다. 부모님은 늘 한 곳에서 변함이 없이 일하셨다. 아마도 아버지는 논두렁을 깎고 계실 것이고 시간으로 보아 어머니는 조금 전에 새참을 가지고 가셨음이 분명하다. 간 김에 밭에 들러 풀을 뽑다가 해거름 즈음에 아버지와 함께 돌아올 요량임은 분명하다. 가을걷이가 끝나기까지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농사일이니 짐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참을 걷다 뛰다 하다가 먼발치로 지평을 바라보니 농수로의 다리에 두 사람이 있다. 평소에도 여기서 휴식을 취하곤 했으니 그냥 그대로 어림잡아 미루어 보아도 아버지와 어머니임이 틀림이 없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동작과 표정마저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직접 듣지 않았으니 모르겠으나 밝은 눈빛에 웃음 띤 미소로 보아 좋은 담소였으리라. 어쩌면 내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어떻다고 이런저런 평을 하고 있음은 아닐까. 학교에 잘 다녀왔다며 인사로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니 손을 흔들면서 일어나 한참을 바라보신다. 지척에 이르자 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보아 적당하다 싶은 흙뭉치를 주워들더니 대강 쪼개어 하나를 어머니에게 건넨다. 그리고는 수로의 넘실거리는 물을 향해 옆 살로 던지니 통통통 3번 튀겨진다. 어머니는 두 번 퐁퐁 물둘레가 쳐졌다. 나도 거들어 힘껏 물둘레를 거푸 쳤던 기억이 가물가물 되살아난다. 아마도 이 시 「물둘레」를 쓰지 않았다면 아예 잊혀질 뻔한 가족사의 일면이다.
저 멀리
농수로 다리 위에
둘이 앉아 있네
하나는
두렁 깎는 농부고요
하나는
새참 내온 아낙이어요
서로는
눈빛으로 속삭이며
웃음 짓는다
그리고
둘이는
흙뭉치 주워들고
물둘레 친다
-「물둘레」전문
이 시는 어느 해 언제 썼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다. 대략 고1 때쯤이지 않을까 얼추 짐작만 할 따름이다. 시를 온전히 알지 못하던 시기에 어디선가 읽었음 직한 내용을 모방하여 표현한 듯해 어설픈 감이 있다. 그래서 자부하며 내세우기엔 왠지 조금은 쑥스러운 면이 앞서긴 하지만 그렇다고 과감히 구겨서 휴지통에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이보다 더 앞선 나의 시가 존재하지 않음이다. 더구나 부모님과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리만치 소중한 장면이라서 더욱 그러하다. 중학 시절의 어느 때부터 간간이 시를 썼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습작으로 두어 자 끄적이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두 줄 죽 긋거나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쓰곤 했었다. 대부분 미완으로 끝났고 완결짓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 괜찮다 싶은 시편이 나와도 여러 날 두고 보다 버려지곤 했으니 이 시도 아마 그중의 하나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보다 더 잘 써진 시가 있었음은 확실하다. 요일을 소재로 일상생활과 연관 지어 쓴 시가 흡족해서 읊어가며 여러 번 수정하다가 고딕 정자로 또박또박 옮겨 적던 열의가 아직도 생생하다. 좀 더 잘 되었다 싶으면 공책에 나름 정서하여 시집처럼 만들었던 기억을 빌리자면 이 시 「물둘레」는 어떤 결격으로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할 요량으로 놔두었는데 누군가의 손길, 아마도 어머니에 의해 챙겨졌고 책장의 어느 한 편에 끼워져 있다가 세월이 훨씬 지난 뒤에 우연히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 후로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 그냥저냥 다른 시와 함께 간직되다가 최근에야 시집을 낸다고 들추어보는 과정에서 새삼 다시 접하게 되었으니 어쨌든 각별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 분명 처녀작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존재 자체로 나름의 가치가 있음이다. 나의 초기 시 중에서도 원조 격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본격적인 시 쓰기는 고2 때부터다. 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됨에 따라 나름으로 형식을 갖추어 시 쓰기에 맛을 들인 적이 이 무렵이었다.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일기를 쓰던 때였는데 시형을 빌려 쓰곤 했었다. 잘 쓰든 못쓰든 즐겨 썼으니까 아마도 상당수는 되리라고 본다. 그중에 몇 편 정도는 보아줄 만하였고, 이외에도 일기장 사이에 끼워둔 시도 조금은 더 있었다. 그때는 잘 챙겨둔다고 책꽂이에 꽂아놓았는데 이후로는 볼 수 없게 되어 안타깝다. 더구나 나를 시인으로 키운 근원이자 밑거름이 되었을 법한 시기의 시가 송두리째 공백이니 생각할수록 멍해진다. 그 이농(離農)만 안 했어도, 아니 챙기기만 했더라면 이리 후회스럽진 않을 텐데, 오랜 세월을 두고 미련이 남는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때 두었던 데로 가서 가져오고 싶다. 이듬해 4월에 쓴 시를 통해 이 무렵의 나의 시 쓰기를 엿볼 수 있다.
수려한 내 강산이 진줏빛보다 곱고
에메랄드 빛깔보다 아름다워라
하늘 끝 닿은 능선이 아가씨 가녀린 허리 같아서
가슴 결에 유연히 솟아난 봉우리
삼천리 아리랑이어라
골짜기 넘어 흐르는 숨결일랑
폭포 되어 떨어지고
누천년 이어온 고목(古木) 사이로
꾀꼬리 종달새 한껏 노니는데
物心一如는 누가 취하며 悠然自適은 뉘 즐기랴?
지나는 나그네야 감탄이나 하려는가
영생의 불로초 자생하는 곳
뚜렷한 사계로 넘나들며
분홍진달래에 청초한 난초
무지개 단풍과 새하얀 설화로
드러내기 부끄러워 안으로 멋들었나!
색색이 물든 옷 단장 치 단장이
어찌 아니 좋다 하오리까
-「내가 사는 땅」전문
「내가 사는 땅」은 곱고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강산을 예찬한 시이다. TV에서 정규방송이 끝나면 의례적으로 애국가가 나왔다. 노래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명승고적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는데 장엄하게 떨어지는 폭포의 씩씩한 기상과 오랜 세월 온갖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낸 고목의 절개가 시상(詩想)으로 떠올랐다. 태고로부터 ‘누천년’에 걸쳐 ‘이어온’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우리 민족을 대변하는 듯해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이러한 자연 산천의 혜택을 여타의 생명은 마음껏 자유분방하게 누리는데 하물며 이 땅의 일원인 우리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지나 않은지 의문이 들었다. 주인의식이라든가 소속감이 없이 ‘지나는 나그네’처럼 그저 구경꾼의 위치에 머물고 있어 보였다. 더불어 하나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 ‘물심일여’ ‘유연자적’을 취하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강렬히 들었다. 그런데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한평생 의식주(衣食住)에 얽매여 사느라 고달프고 덧없다. 게다가 경쟁의 사회라서 그런지 어떻게든 이용하려 하고, 당하지 않으려다 보니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만이 난무하는 세상이 된 듯하다. 자본이 우선이라 오로지 돈만을 쫓는 경향도 엿보인다. 이웃 간의 인심도 예전만 못하다. 콩 한 쪼가리도 나눠 먹던 시절은 옛말이 되었다. 금전이 있어야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그러니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삭막해져 감을 느낀다. 내일은 어떠할까. 먼 훗날인 미래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의 터전은 ‘영생의 불로초가 자생’할 정도로 비옥한데다 4계절이 뚜렷하여 절기마다 수려함이 볼만하다. 겉만이 아니라 속까지 멋이 들어 좋기만 한데 사람들은 오직 돈벌이에 급급해하는 듯해 안타깝다. 조금은 여유를 갖고서 상생의 방향에서 아끼고 사랑하며 어울림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썼다. 이 시기의 시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 쓰기가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시 쓰기에 임하는 나의 의식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분위기에 휩쓸려 말이 많아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에다 군더더기로 살을 붙여 주절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앞뒤가 맞지 않게도 된다. 이를 듣고 계시다가 쓸데없이 헛소리 내뱉는다며 타이르셨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핵심을 짚어 간명하게 하라셨다. 시답지 않은 말은 아예 떠올리지도 말라셨다. 꼭 해야 할 말이 아니면 말문을 굳게 닫고 신중히 들으면서 판단하라셨다.
분위기에 휩쓸려 말이 많아지면
가만 듣고 계시던 아버지
그 즉시로 시답잖은 헛소리 말라고
귀에 익도록 말씀하셨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생각해 보고
듣는 이의 입장도 고려해서
쓸데없이 넋두리 늘어놓지 말고
핵심을 짚어 쉽고 간명하게
꼭 해야 할 말만 하라고 타이르셨다
성급히 나서면 실언할 수 있으니
가능한 말문을 굳게 닫고
차분히 들으면서 신중히 판단하라고
밥상머리 훈육으로 늘 하셨다
시다움과 시답지 않음 사이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이 습관처럼
무의식으로 몸에 밴듯하다
직관으로 마주하는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냥 보아넘기지 않는 버릇으로
때로는 재거나 따지는 모습으로
미적거림에 주저하는 고약한 습성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분명함은
깊이 사유하는 의식이 길러졌음이다
-「아버지 말씀」(『부모은별곡』)전문
우리말에 만족스럽거나 중요하게 여길만하다는 뜻으로 ‘시답다’가 있다. ‘시답지 않다’와 연관 지어 보니 시다움과 시답지 않음 사이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이 무의식으로 몸에 밴듯하다. 습관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생각한다. 생각은 생각 속에 생각을 생각할수록 생각 속의 생각을 생각나게 하는 생각 속의 생각이라고 되뇌곤 한다. 그러니 일상에서 순간 포착하듯 직관으로 마주하는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냥 보아넘기지 않는 버릇이 은근히 있다. 이것이 때로는 이리저리 재거나 따지는 모습으로 보이고, 미적거림에 주저하는 고약한 습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함은 시 쓰기에 있어 시적인 언어로 인지하여 바라보고 깊이 있게 사유하는 의식이 길러졌음이다. 이는 시답지 않음을 삼가고 시다움을 갖추려 추구한 데서 오는 산물이랄까. 그러한 점에서 나는 삶의 일상을 오감으로 보고 듣고 느끼면서 생각하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시다움을 생각하며 시를 쓰는지도 모르겠다. 이치를 따지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읽어나가기만 해도 뭉클해지는, 무슨 뜻인지 쉽게 알 수 있는 그런 명료한 시를 빚어내고자 하는 몸부림이 나의 시 쓰기이지 않을까.
아주 젊은 날, 어렴풋이 이성에 눈길이 가서 끌리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한동안 앓이를 한 적이 있다. 그것도 서로 간에 눈이 맞아 마음이 통하여 누리는 복된 연인 관계가 아니라 혼자만이 관심이 가서 겪는 그리움을 아주 짧게 품은 일이 있다. 어쩌다 두 번에 걸쳐서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되돌아보면 엄밀히 따져서 그 무엇도 아니련만 그때는 왜 그렇게 마음 아파하며 세상 다 잃은 듯이 하였는지 멋쩍기만 하다. 사랑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무얼 몰라도 한참 거리가 있어 ‘에게 이게 뭐야’ 할 법한 어설픔으로 허탈이 느껴지고 오히려 ‘그럴 수도 있지’로 동정이 가는 편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랄 것도 없는 한때의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이성에 눈 떠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터인데 어쨌든 홀로 사랑앓이를 몇 편의 시로 쓰기도 해서 읽어 볼수록 ‘아! 이랬었지’가 절로 나와 회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금세라도 떠오를 듯한 형상이 윤곽만으로 흐릿하게 가물가물 펼쳐진다. 아직은 세파에 물들지 않아 갖는 순박함이라든가 단단히 여물지 못한 어리숙함이 엿보이는 20대 초년의 풋풋함이라 그런지 상큼해서 미소가 지어진다. 그네들은 잘 살아가고 있을까. 훗날에 온전한 사랑을 열렬히 쏟아낼 수 있는 동력이 되어 평생으로 동반하는 임을 결실로 맞이하였으니 헛되지는 않기에 그로써 감사하다.
은은히 스미어드는 님의 체취가
붉은 장미 한 송이 되어
초라한 걸인을 살아 숨 쉬게 하나이다
성녀 속에 잠재된 님의 입김은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짜릿한 선율의 향내를 드리웁니다
유여! 누굴 위해 나리는 햇살입니까?
방랑아(放浪兒)의 움츠린 가슴을
따사로움으로 감싸 주시구려
유여! 뉘를 기다리는 홍옥입니까?
어설픈 혼잡이 그리움의 초석인 양
객기부려 갈망하는 처사가
그저 요령이나 수단이 아닙니다
명예와 권력에 재물은 미흡하더라도
그대 사모하는 연정의 싹이 트임을
살짝이 눈여겨 주시구려
서로의 마음이 맞닿을 신뢰 속에
아름다운 인동초꽃이 피어남을 알기에
살며시 건네어 봅니다 유여!
-「고백」전문
시군을 달리하는 장거리 통학에 그것도 본가가 아닌 외가에 의탁하여 대학에 다니던 시기였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느라 다른데 눈 돌릴 여유가 없는 때였다. 더구나 이성에는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설혹 생긴다 해도 시간 할애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여력이 없는 터라 감당이 어려워 그 즉시로 그만두어야 하거나 휴학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뻔했다. 더구나 방학에는 상경하여 공사장에서 학비를 벌어야 하는 순환에 매여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이 나의 처지였다. 대학에 다니면 일반적으로 누리는 자유로움이라든가 낭만은 나와 거리가 있었다. 주로 강의를 듣는 시간과 학과에 일이 있어 용무차 들르는 때를 제외하고 학우와 함께 무얼 도모해 어울리기는 그다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시험을 보기 위한 자료 공유 등으로 만남이 자주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햇살’과 ‘홍옥’으로 눈에 들어왔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짜릿한 선율의 향내를 드리’워 시나브로 마음에 새겨졌으니 그녀가 바로 ‘유’다. ‘유’는 대학에서 만난 학번 동기다. 매사 의지가 있어 당차게 주도면밀하면서도 나대지 않는 은근히 참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방학을 맞아 공사장에서 힘겹게 일을 하든 어쩌다 집에서 여유를 갖고 휴식을 취하든 간에 은연중에 떠올라 생각나서 개학일이 어서 왔으면 했고, 학기 중에는 먼발치로 눈에 띄기만 해도 반가웠다. 마주하여서는 좋아하는 감정을 눈치채지 않게 자연스레 대하였으나 속으론 바라만 보아도 설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예 관심이 없음인지 혹은 알아채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여느 학우와 똑같이 대할 뿐 무심했다. 그러할수록 조금씩 간절함으로 다가왔고 어쨌든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어설프게나마 ‘그대 사모하는 연정이 트임을 살짝이 눈여겨’ 달라고 ‘살며시 건네어’ 보았건만 냉정히 뿌리쳤고 그렇게 소중함으로 다가온 소녀는 일순간에 성큼 멀어져갔다. 시 「생심」으로부터 「두문불출」, 「혼자만의 이별」 등 그리고 「여울」에 이르기까지 10여 편으로 담아냈으니 이때의 어설픈 심정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음이다.
이러저러한 사유로 휴학을 하고 「순응의 길」로 「군령지대」에 들어섰고 제대 후 「가야 할 길」을 찾아 「무엇이 되어」 이 자리에 설까로 고심하며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한편으로 시작인 듯 끝이 난 또 하나의 만남을 몇몇 편의 시로 속내를 담아냈다. 아주 짧은 순간의 스침이었으나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그래서 쉬이 버리지 못할 「숙명」과 같은 인연이자 「이별」이라 ‘만남을 위한 작별’로 ‘지난날 유양과의 이별처럼 정양과의 헤어짐이 조용한 안녕이 되어 반갑다’고 그러면서도 「기다림」과 「아쉬움」을 드러내는가 하면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혹여 모르겠어요」라며 앞으로 어찌 될지 미련(未練)으로 희망을 품는 나의 풋내나는 성장통을 엿봄으로써 이 시기의 시다움을 향한 습작이 나름 끊임없이 이루어졌음을 미루어 짐작으로나마 가늠케 한다.
나의 시 쓰기는 교직을 준비하는 잠시의 공백기를 거쳐 교사의 길로 들어서는 시점과 맞물려 진정으로 맺어진 「연분」은 「만남」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내 삶의 짝인 「진에게」 향한 오롯한 사랑은 「임의 존재」가 「보고파」서 「소망」대로 견고한 결실을 가져와 「태아에게」에 이어 「착한 꽃」으로 왔고 애정 가득한 「그대 향기」가 손길에 어리니 ‘고맙소’로 마음 건네는 시의 편편이 그대로가 습작이요 시다움을 향한 노정이었고 수습의 나날이었다 하겠다. 인연을 가꾸어 가며 만나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시적(詩的)으로 포착해 눈길로 읽어만 보아도 마음에 와닿고 쉽게 이해가 되도록 시구에 담아내려 하였다.
은은한 아지랑이 찻잔에 맴돌다가
마침내 허공 속에 옛 생각 토해낸다
천진한 가시버시로 소꿉 놀던 날들을
좋아해 한마디로 서로를 감싸 안고
반평생 아기자기 시름도 아울렀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살아 쉬는 나날들
분주한 하루 여정 어려이 접고 나니
반기는 가족사랑 애정이 가득하다
고맙소 당신 손길에 녹차향기 어리니
-「그대 향기」전문
나에겐 또 하나의 나가 있다. 주어진 직분을 충실히 다하느라 시를 쓸 겨를이 없는 나이다. 교직에 있다 보니 오로지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느라 그렇게 30여 년이 훌쩍 지나갔다. 한참 열정적일 때에는 주말에도 학생들과 함께 지낼 정도였다. 무엇을 하느라 교실에 머물렀을까. 생각할수록 감사하게 여김은 내가 국어 선생이라는 점이다. 나에게 있어 그 이상 없는 축복이자 행운이다. 더군다나 문학을 가까이 할 수 있음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그러니까 휴일에까지 아이들과 있는 까닭은 글을 짓게 하고 고치기로 해서 지도하느라 그러한 것이다. 특히 시를 시답게 다듬어 교정하여 주는 과정에서 단순히 아이들 지도에 머물지 않고 나에게도 유익하게 습작이 이루어졌음이다. 이러한 수습(修習)은 나의 시적 역량을 알게 모르게 기르고 넓히는 또 하나의 바탕이 되었다. 시화전에 시집을 낸 횟수가 어언간 서른다섯에 이르니 이 모두가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스승이자 산파(産婆)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 교직은 천직이자 시 쓰기의 원천이라 하겠다.
기윽과 니은이가 정답게 노니는데
미음이 달려와 끼어들려 하네요
기윽이와 니은이가 줄잡아 돌리면
리을이가 뒹굴어 재주 부리고
디귿이도 함께 어울리려 하지요
지루해진 미음이가 기지개 켜자
비읍이와 피읖이가 얼굴 디미네요
기윽이 몸 굽히려다 중심을 잃어
니은이 엎드리니 시옷이 나오고
지읒이는 어부지리로 같이 하지요
거칠기로 소문난 녀석들로는
키읔이 티읕이 치읓이가 있어요
심부름 갔다 돌아온 이응이가
수줍음 타는 히읗이를 데리고 와
서로 인사시키니 낯을 가리네요
자음반 동아리 모두 모이라는
화합의 메아리 골목에 가득하네요
그중에 다섯쌍둥이 나오는데
저마다 특색 있는 됨됨이라서
지켜보는 마음이 흐뭇해져 오지요
-「아이들」전문
아이들을 한글 자음에 비유하여 그 특성에 따라 아기자기하게 나타나는 이미지를 시로 형상화하였다. 이처럼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시선을 두고 교육 차원에서 시를 대하다 보니 늘 시간이 부족하다. 이제 나의 시를 써야지 하면서도 항상 마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오롯이 나만의 시를 쓰기 위해 진득하니 보낸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항상 뒷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그래서 나의 시 쓰기는 무엇을 쓸까로 고심한 적이 별로 없다. 대부분 일상으로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시적이라고 포착된 순간의 상을 인지하고 이를 사유(思惟)함으로써 시다움으로 풀어내려 했을 뿐이다. 그 하나의 시가 「연이어라」이다.
가만히 눈감아 세상을 본다
인파 사이로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촌각을 다투어 질주한다
마치 곡예를 연출하듯이 갈지자로
화들짝 놀란 행인이 피하려다
옆 사람의 발등을 밟았는지
몹시도 아파라 하고 미안해 한다
이를 힐끔거리는 무리로 인해
거리는 잠시 통행의 지체를 가져오고
그러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제각기 가던 길로 간다
분주하게 어디론가 사라지고
잔영(殘影)마저 꼬리를 남기지 않는다
모두 가야 할 제자리 찾아서
그렇게 종종걸음으로 흩어져가고
마침내 가만가만 숨을 고른다
아무 일도 없었던 상시처럼
-「연이어라」(『유심 나무를 심다』)전문
평소의 생활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상황이다. 신호등도 무시하고 내닫는 오토바이를 종종 보게 된다. 이로 인해 사고도 빈번히 발생한다. 그뿐인가. 때로는 직접 겪거나 목격하기도 한다. 피하려다 주위에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파로 혼란을 초래하는데 다치거나 당하는 사람만 억울할 뿐이다. 원인을 유발한 당사자는 이미 떠나갔고 해당 없는 인파만이 그저 구경꾼으로 눈총을 건넨다. 누구는 이런저런 연유로 피해자가 되지만 가해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밟고 밟힌 이들만이 서로 위로하듯 미안해하고 괜찮다 한다. 목격하였어도 나의 일이 아니니 모르는 척으로 외면한다. 알아도 입을 다물고 눈을 감는 세태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일면이다. 정작 내 편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피해를 본 사람만이 억울하고 외롭다. 기가 막히지만 하소연할 데도 없다. 오히려 왜 거기 있었냐며 없었으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라고 되레 큰소리로 질책하며 책임을 전가도 한다. 황당함만이 상처로 남을 뿐이다. 더구나 요란스러웠던 현장도 그 순간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상시처럼’ 흔적조차 치워져 언제 그러했느냐 한다. 이러한 일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라면 언제나 얽히고설킨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 중에 무엇을 어떻게 시적인 언어로 포착해 내느냐이다. 또한 이를 어떤 이미지와 결부시켜 인지하고 사유를 통해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의식하는 행위가 나의 시 쓰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냥 읽어만 보아도 무슨 뜻인지 느낌으로 알아챌 수 있다면 나의 시 쓰기는 그로 족하다 싶다. 그래서 나는 늘 시다움을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