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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달맞이꽃/어울렁더울렁 하나/봉사/그 긴 습작…

5부 : 살며 살아가며 남긴 조각

by 김덕용

[ 선은 그어지고/달맞이꽃/어울렁더울렁 하나/봉사(奉仕)/그 긴 습작의 시간 ]


[ 선은 그어지고 ]

딱히 어디에서부터랄 수 없는

그런 선이 그어지고 있음을

한동안 지난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를 갖게 하는지

낌새라도 조금 알아챘더라면

이처럼 아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해를 밑거름으로 두지 못하고

타산에 찬 눈길 건네야만 하는

우리의 처지를 심중에 새겨봅니다


미움도 사랑이 바탕이라지만

금가는 소리 구성지게 드리우니

사멸의 그림자가 춤을 춥니다


고개 저어 아니라 부인하여도

메우기엔 이미 버거운 골이 졌다고

한숨으로 안타까움만 자아냅니다






[ 달맞이꽃 ]


왜 그러하냐고 마음 건네오면

그저 망연히 바라보다가

시울 글썽이며 고개 떨구렵니다


속 시원스레 끄집어낼 수 없는

안타까움이야 어쩌지 못해도

여한만은 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사랑이라는 명분에 가리어진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자꾸만 기억 밖에 머물려 합니다


오직 하나만 감싸 안길 바라는

소망이야 나날이 간절하건만

그리하지 못함이 안개가 됩니다


어둠에 피고 지는 달맞이꽃은

오늘도 이슬 머금어 가는데

저 임은 언제쯤 미소 지으려는지






[ 어우렁더우렁 하나 ]

하나가 되자 하나가 되자

한줄기 맥으로 면면히 이어가자

잡사에 나라진 어깨 북돋우며

우리,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답답한 이 가슴에 너의 위안이

쓸쓸한 네 마음에 나의 온정이

얽히고설키고 뒤범벅이 되어도

그냥 그렇게 둥글어 보자

산다는 것이 매양 서산낙일이랴

어우렁더우렁 일체 되노라면

구름에 달그림자 그럴싸하고

노을 진 해돋이 더더욱 반갑고야


내가 네가 있어 둘이 아니라

홀로 그리움이 하나이게 하고

셋도 넷도 여럿이도 다 함께

손손이 잡고 하나가 되는 거다

허탈하게 히죽거리는 세태가

역겹고 거북살스럽더래도

우리가 하나인 사랑 노래 부르며

조금은 넓은 가슴으로 마주하자

산다는 것이 처음부터 피죽이랴

어우렁더우렁 비비대노라면

정 권하는 맛도 그럴싸하다

그래서 그래서 하나가 되는 거다


주고받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으로

베풀면 얻을 수 있는 것을

허울 좋은 체면치레로 여겨서야

어찌 정겨움이 있다 하리오

잘잘못이 아쉽고 서운하더래도

다시금 우리 뜻이 뭐냐고 되새기며

서로가 일치된 맘으로 아우러지자고

새 다짐에 재창으로 어깨동무하자

산다는 것이 공허한 인생살이랴

어우렁더우렁 더불어 지내노라면

푸념 어린 맞장구도 그럴싸하다

아무렴 이래서 하나 됨은 자명하다





[ 봉사(奉仕) ]

봉사는 나눔에서 오는 사랑입니다

내 모든 것의 일부를 떼어서

이웃에게 기꺼이 줄 수 있음은

자비(慈悲)로운 성자(聖者)의 참뜻이기에

거룩하고도 숭고(崇高)한 행위입니다


봉사는 능력에서 오는 마음입니다

돕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으면

그저 안쓰러움에 그칠 뿐이기에

필요로 하는 모든 역량(力量)을 갖추어

자선(慈善)할 수 있음은 행복(幸福)입니다


봉사는 겸손(謙遜)에서 오는 보람입니다

남을 의식한 잘난 체이기보다

진심(盡心)으로 자신을 낮추고 비워

모두에게 베풀어 줄 수 있음은

오른손만이 느끼는 만족(滿足)입니다


봉사는 믿음에서 오는 기도(祈禱)입니다

양심을 좇아 실천(實踐)에 있어서

스스로 유혹(誘惑)의 늪으로부터

구원의 혜안(慧眼)을 가질 수 있도록

선함 속에 잉태(孕胎)한 축복(祝福)입니다


봉사는 정의에서 오는 용기(勇氣)입니다

체면(體面)에 얽매여 주저하기보다는

나눔의 손길을 분주(奔走)히 내밀고도

더 주고 싶어서 안달을 내는

그런 것이 진정(眞情)한 적선(積善)입니다





[ 그 긴 습작의 시간 ]

무릇 비유가 미숙하였나 보다

운율이 너무 어설퍼서

보완해야 할 상이 적잖으니

조금 더 들여다보고 다듬으라는

아낌에서의 배려이었을까


흠결이 없어 보일지라도

어느 정도에 이르지 못함이니까

차근차근 되짚어내어

거듭으로 배우고 익히라는

엄연한 현실의 고언이었을까


당장은 세상이 몰라 주어도

언젠가는 햇살 들 때가 있으리니

딴생각일랑 아예 접고서

오로지 정진으로 몰두하라는

각별한 이끌어줌이었을까


낙심에 머문 적이 몇이던가

그럴듯한 연유에 밀려서

시선을 거두어야만 했던 이력은

성찰이라는 거울이 되었고

수습의 나날은 이내 이어졌지


그 긴 습작의 시간은 점차로

깊이 더해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버릇으로 길러졌기에

넉넉한 놀이가 되어 주었고

즐길 이유를 갖게 하였지


자칫 자족에 머물렀을 법한

시객의 속된 멋 부림

멀리 두고 음미할 수 있음이기에

다행이라 여김이 어떨지

호사 누림은 과한 욕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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