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실에는/실망이어요/처신/분화(粉畵)/귀명(歸命)/불통(不通) ]
[ 교실에는 ]
아이들이 생활하는
교실 속에는
행복 가득히 활기가 넘쳐 난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 건지
끝도 없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창문 틈으로
웃음이 새어 나오고
우정 다지는 소리 또한 가득하다
방처럼 깨끗하게 가꾸기 위하여
쓸고 닦고
책상을 맞추기도 한다
그러면
분위기가 살아나게 되어
마음까지도 산뜻해지는 느낌이다
[ 실망이어요 ]
부처님이 언제나 누워 계셔서일까
주무시기 때문에 그러한가 보다
자비로워야 할 불자의 시선이
허세에 머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러저러한 명성을 얻어서 그럴까?
본연의 도량이 무디어졌음인지
배움 찾는 생도의 지친 발걸음을
구태여 뿌리치는 셈이 능숙도 하다
달고 씀이 눈가림에 불과한데
석가여래의 속내를 어이 헤아려서
내치기를 마땅하다고 여기는지
정녕 불심에 기인하였단 말인가
경내에 머물려는 객기도 아니고
초입의 자투리 공터 한쪽에다
아이들 잠시 머물다 갈 쉼터로다가
선심을 베풀면 그로 족할 터인데
[ 처신 ]
세상엔 의외의 일이 많습니다
그 중엔 의당 해야 할 상황도 있지만
아예 거들떠보아서는 안 될
그러한 경우 또한 무수하답니다
이런저런 연유가 뚜렷하지 않아도
어찌할 도리없이 택일할 수밖에
적절의 방책이 서지 않는 난감함도
허다히 생김을 알고는 있지요
그렇더라도 일탈만은 아니 되는데
부끄러움을 곁에 두려 한다면
이보다 더 믿음을 저버리는 처사가
그 어디에 또 있을까 싶네요
스스로가 삶을 소홀히 대하는데
어느 누가 온당한 처신이라 여기고
치하다운 격려의 말을 건네며
기꺼이 정을 담아내려 하겠어요
[ 분화(粉畵) ]
무상으로 타다 남은 한 줌의 재가
아른아른 살아 숨을 쉽니다
유족의 눈가에 어리어 말이지요
가루에 떨구어진 눈물 스미어드니
분분히 일어 나타나는 형상이
또렷해질수록 화색마저 감돕니다
속사정이야 어찌할 수 없다지만
표면에 드리운 안색은 순간으로나마
확연히 그려낼 수 있답니다
그러다 문득 추스르기라도 하면
물기 마르고 자국만이 남아
이내 흐릿한 흔적조차 사라집니다
[ 귀명(歸命) ]
머물지 않으리라 다짐은 그리하여도
흔쾌히 앞서지 못하는 까닭은
이승의 끝자락 연이 모질도록 질겨서
한자리 내어달라 표 사듯 예약하고도
혹시나 미련으로 돌이켜 흐느낀다
어차피 떠나야 할 축복 내린 길인데
어설픈 행보라 마냥 아쉽다고 하려는가
진즉에 알았다면 기약은 하지 말지
주저로 머뭇거린들 어찌 아니 갈까만
먼지 뒤덮인 세사에 미련 두었으랴
번뇌를 떨쳐 일심으로 귀의함은
내 본래의 원천에 이르는 과업인 것을
[ 불통(不通) ]
믿음 잃은 자의 객쩍은 눈동자 보셨나요
까맣게 일그러져 간 흔적 말입니다
동공의 자위마저 상실해 버리고서
바람결에 허공으로 솟구치는 먼지처럼
가눌 길 없이 나대는 이의 허세를요
가장 가까이할 지인으로 여겼건만
신뢰 못 할 위선 떠는 치로 성큼 다가와
넋두리조차 불가한 단절의 흐름에서
그저 기막힌 한숨만 지어질 따름이지요
풀어지리란 미련을 은근히 두고서
그래, 산다는 모양이 다 그러하다며
너그러이 보듬기엔 막힘이 너무나 커서
맺힌 화로 토해지는 역정의 순간들
미움까지는 그럭저럭 견디련만
숱한 나날 보려니 아득해지는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