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상담 여덟 번째 기록(2025.5.19. 월.)
"왜 좋아지지가 않는 거야? 참 골치 아프네."
저번 달에 ADHD 검사와 사회불안장애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는 치료를 시작하기 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퇴근 이후에는 거의 누워서 지냈다고 하니 "그러면 안 되는데. 왜 자꾸 좋아지지 않는 걸까요." 라며 난감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저도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약물 치료를 시작한 지도 벌써 7개월이 지났습니다. 이 정도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 시기가 맞는데,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약을 먹는 동안에도 뚜렷한 경조증이 왔었고, 지금은 무기력합니다. 조울증 검사 결과 상으로는 안정기에 접어든 것은 맞습니다. 경조증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안정기 상태를 우울한 상태라고 인식한다고 합니다. 경조증 시기에 정신적 고양감과 활력을 경험했기에, 그게 사라진 상태를 상대적으로 우울하고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거지요. 조울증 상태는 검사 결과 상으로는 정상 수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한없이 가라앉은 상태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을까요?
그동안 중단하고 있던 ADHD 치료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ADHD의 대표적인 치료제인 콘서타를 최저 용량으로 복용 중입니다. 작년 겨울에 먹었을 때는, 오히려 졸리다는 느낌을 받았고 경조증이 왔던 시기라 약의 효과를 뚜렷이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효과가 몸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늘 몸이 처지고 졸리고 하품이 나오고 딴생각과 공상에 빠져 있고 멍하고 몽롱한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콘서타를 먹으니 일단 졸음과 하품이 사라졌습니다. 머릿속이 맑고 고요하고 개운한 느낌이 들었고요, 처져 있던 몸에 활력이 돌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컨디션이 좋게 느껴져요. 주말에는 약 안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몸이 너무 무겁고 처져서 약을 먹었습니다.
항우울제인 렉사프로의 용량도 증량되었습니다. 이 약이 우울과 사회불안장애에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렵고 긴장됩니다. 저의 허당끼와 어리바리함을 들킬까 두려워요. 저는 야무지고 똑 부러지는 것과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인데, 그래서 무시당하고 우습게 여김을 받을까 봐 두렵습니다. 누군가 말을 시켰을 때, 멋진 대답을 하고 싶은데 말을 잘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제가 발표라도 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심장이 두근거리며 굉장히 떨립니다.
사람의 정신이 무엇이고 마음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상태가 정상인 건지,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기분이 한없이 들뜨고 고양되었다가,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합니다. 정신없이 깜빡깜빡하며 머릿속엔 딴생각으로 가득합니다.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사람 앞에 서는 게 두렵습니다. 세상은 이런 제가 비정상이라고 말합니다.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이런 모습으로 43년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싶어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치료의 끝은 어디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제가 과거의 저보다 더 행복한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무엇이 행복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다시 삶의 출발점에 선 기분입니다. 제가 이십 년 넘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생각하던 "임용고시 합격"을 포기하고 나니, 저의 지향점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44살이나 먹었는데, 길을 잃은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기분입니다. 저는 저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