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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정신과 상담 열한 번째 기록(2025.7.17. 목.)

by 방구석도인

전에 극심한 무기력이 찾아왔었습니다. 간신히 샤워하고 출근한 후, 퇴근하면 침대에 누워있는 날들이 반복되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도 쓸 수 없었지요. 그 상황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병원에 연락해 방문 예약을 잡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말씀드리고 항우울제 렉사프로를 10mg 추가 증량받았습니다. 증량하자 다음 날부터 활력이 돌아서 영어 공부를 위한 미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IELTS 강의도 결제를 했습니다. 이후 쭉 증량된 항우울제를 복용했습니다.


약물 치료하는 동안에도 계속적으로 경조와 울증 상태가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모르고 살았을 때는 그려려니 살았는데 약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증상이 반복되자 약물치료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먹으나 안 먹으나 다를 바가 없다면 약을 안 먹는 게 낫지 않나 싶었습니다. 약을 먹는데도 왜 증상이 나타나냐고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자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고 꾸준히 약을 먹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의사 선생님 질문에 이제야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감정이 들뜨거나 고조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기력하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정상적인 상태가 뭐냐고 물어봤을 때, 선생님은 그 상태가 되면 아마 알 수 있을 거라고 답하셨습니다. 아마도 요즘의 상태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자고, 영어 모임에도 나갔었고, 영어 채팅도 참여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성격인지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귀찮은 감정은 남아 있긴 한데, 심각하게 일상을 위협할 정도는 아닙니다. 여러 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의사 선생님도 제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셨고, 병원 방문 간격도 기존 4주에서 6주로 늘려주셨습니다.


저번부터 처방받아 다시 복용을 시작한 콘서타의 도움으로 처지고 무기력한 신체 증상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콘서타를 먹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신체에도 활력이 돕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면 여전히 긴장되고 떨린다고 하자, 인데놀을 필요시 약으로 주셨습니다. 공개수업이나 협의회 진행 시 먹을 계획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터널 속에서 빛을 만난 기분입니다. 정서도 안정되고, 남자친구도 생기고, 곧 여름방학이고, 곧 여행을 떠납니다. 이제야 한숨 돌려 봅니다. 나는 평생 느껴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정상적 상태의 정서"를 이제야 느껴봅니다. 어쩌면 생전 처음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극심한 사회 불안에 시달려 왔으니까요. 약물치료를 포기하고 싶기도 했고, 병원을 바꿔볼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선생님을 믿고 꾸준히 치료에 임한 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저도 편안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저도 행복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저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제는 그래도 되겠지요?


정신의 병이든, 육체의 병이든 병원 잘 다니고, 꾸준히 약물 복용하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한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병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니 전문가인 의사를 신뢰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여러분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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