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상담 열두 번째 기록(2025.8.28. 목.)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인이 오래전 한 말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고요. 그녀 또한 삶이 행복했더라면 아마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거의 두 달 가까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 이유는 행복해서입니다. 그동안 저는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여름방학이 있었고요, 방학의 전부를 캄보디아와 태국에서 보냈습니다. 친해진 가이드들과 매일 밤마다 맥주를 마셨고, 그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인해 편안하게 여행을 했습니다. 태국에는 남자친구가 찾아왔고요. 기분도 계속 안정적으로 이어져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고 평온했습니다. 위고비를 3개월 맞고 살도 10kg나 빠졌고요.
"저는 이제 공부와 운동만 열심히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의사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지나치게 무기력하거나 우울하지 않으니 좋았습니다. 지나치게 들떠서 쓸데없이 감정소비 안 하니 좋았습니다. 내 옆에는 사랑한다, 예쁘다 말해주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이제 영어공부라는 저의 목표를 향해 집중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도 해야 하는데 워낙에 집순이인 저는 집 밖에 나서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대신 기분이 안정되니, 이전처럼 책 읽기와 글쓰기가 즐겁지가 않습니다. 저는 그동안 외롭고 우울한 감정들을 글을 읽고 쓰는 것으로 많이 풀어냈습니다. 작가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하며 기분이 고양됐고, 자기 계발서에 아드레날린이 뿜뿜 뿜어져 나왔으며, 작가들의 고독과 우울에 한없이 감정이입하며 정신적 방황을 했지요. 하지만 기분이 안정되고 보니 그런 글들이 굳이 필요가 없더군요. 이전처럼 책을 읽어도 기분이 고양되거나 공감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굳이 책을 찾아 읽고 싶은 생각도 잘 들지 않았어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로 풀어낼 만한 감정이 없다고나 할까요? 예술가 중에 정신병을 가진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습니다. 글을 읽거나 쓰는 것으로 풀어내던 마음의 회오리가 이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지냈어요. 퇴근 후에는 미드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글 읽기와 글쓰기는 제가 사랑하던 취미였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조증이 그립나요?"라는 의사 선생님 질문에 제가 뭐라고 답했을 것 같나요?
"아니요. 그것도 정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몰아치던 감정의 폭풍, 회오리. 행복감과 고양감을 주기도 했고, 한없는 우울과 고독과 방황을 주기도 했습니다. 정상은 아니지요. 이제 정상적인 기분 상태가 무엇인지 저는 압니다. 행복감과 고양감이 아무리 좋은 기분을 가져다준들, 그 또한 과도한 에너지 낭비일 뿐입니다. 저는 이제 저의 목표를 준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의 목표는 남자친구와 함께 해외에서 사는 것입니다. 남자친구나 해외살이는 둘째 치더라도, 영어로 의사소통 하고 싶다는 목표는 꼭 이루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그동안의 힘든 삶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너무나 행복합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