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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당신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부터 1일.

by 방구석도인

2025.7.6. 일.

그는 우리가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번 스터디 때 공부 끝나고 함께 체스를 하며 시간을 보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ok'라고 답을 했지요. 대학 도서관으로 공부하러 가야 하는 일요일 아침, 저는 40대잖아요. 나가려니까 피곤하고 귀찮더라고요. 원래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데, 그를 만나러 화장하기도 귀찮고요. 그래서 그에게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이거 제가 작업 걸은 건가요? 전 정말 귀찮았을 뿐입니다. 저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절대 밖에 안 나가는 최상급 집순이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랬더니 그는 "ok. No problem."이라네요.


세 번째 만남부터는 화장 따위 집어치우고, 맨얼굴에 반바지, 박시한 남방 차림으로 그를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예쁘다고 했습니다. 내가 메이크업을 안 했다고 하자, 저보고 자연미인이랍니다. 그가 준비해 온 프린트물로 영어 공부를 한 후, 그에게 체스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 해본 것 같기도 한데 어쨌거나 체스를 제대로 배워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제게 그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 주는 사람입니다. 체스를 하던 중 그가 차를 달라고 하기에, 보이숙차를 우려 건네주었습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와 단 둘이. 티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묘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돌아갔습니다.


2025.7.7. 월

다음 날 밤에 그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당신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싱글이에요. 제가 당신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라고 적혀 있었지요. 나는 마흔네 살이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알고 있지만(탄뎀 프로필에는 나이가 표시됩니다.) 당신은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ok"라고 답했지요. 그의 말대로 나는 싱글이니까요. 게다가 그는 내가 좋다잖아요. 내가 예쁘다잖아요. 운동과 공부와 일을 좋아하고 영어를 잘하는 이 젊은 청년을 저는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금요일 밤에 다시 만나기로 했지요.


2025.7.9. 수.

우리는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지만 저는 그가 보고 싶었고, 그도 제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다릴 수 없다며 오늘 만나자고 했습니다. 저도 그러자고 했지요. 퇴근 후 6시 30분, 그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작은 상자에 담긴 조화와 상품권이 담긴 봉투를 제게 내밀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저녁으로 볶음밥을 내어 주었습니다. (해동한 냉동볶음밥입니다. 저는 요리를 못해서 아예 안 하고 삽니다.) 한 달 뒤 여행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저의 여행 일정을 물어본 후, 그도 3박 4일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혼자 떠날 줄만 알았던 치앙마이였는데 함께 갈 사람이 생겨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아침에 돌아갔습니다. 출근길에 그를 학교 근처에 내려 주었지요. 함께 아침을 맞이할 사람이 있다는 것, 좋더군요.


이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습니다. 몇 번 보지도 않고 사귀다니 빠르게 느껴지기는 했어요. 하지만 세 번 보고 사귀나, 백번 보고 사귀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처음 만난 그 순간, 서로를 연인으로 삼기로 결정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제게도 남자친구가 생겼습니다. 44살의 나이에 말입니다. 선 보는 것 말고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더구나 외국인의 연하 남자친구가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 안 해봤습니다.


인생 참 재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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