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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퇴원

by 망고

스스로 정한 퇴원일은 예상보다 더 빠르게 다가왔다. 주치의 선생님은 처음 만난 날부터 퇴원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라고 항상 주의를 주었다. 입원 초기에는 퇴원하기만을 바랐는데. 아이러니했다.


그냥 평소처럼 지내려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잠깐 내게서 멀어져 있던 바깥세상에 대해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바깥이 자연이라면 이곳은 온실이었다. 온실 속에서 지내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외부와 맞닥뜨리게 되면 미처 단단해지지 못한 마음이 꺾여만 버릴 것 같았다.


가족들을 떠올렸다. 우리 집을 떠올렸다. 학교를 떠올리고 친구들을 떠올리고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모든 것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 나는 아직 입원 중이고, 그런 것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허락되어 있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고등학교가 위치한 동네 꿈이었다. 한동안은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시절이 배경이 된 꿈만 계속 꾸었는데 드디어 가장 최근의 경험을 꿈에서 보게 된 것이다. 이곳의 '나'와 내가 느끼는 '나'의 격차가 줄어든 것 같아서 기뻤다.


병동 친구들에게 퇴원일을 알렸다. 제영이는 아쉬워했고 찬혁이는 집에 가고 싶다고 간호사 선생님을 졸랐다. 건우는 경우랑 노느라 바빴고 경우는 그 와중에도 헤어지는 걸 아쉬워했다. 영미 언니는 퇴원하며 나와 유빈이 언니 그리고 수진이 언니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 주고 갔다. 환자들끼리 물건 교환은 원칙적으로는 금지이지만 그걸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미 언니가 퇴원한 직후 두 언니는 허전하다고 했지만 곧 세 명이서 쓰는 병실에 적응했다.


같은 환자로서 정들었던 사람들을 잊고 싶지 않아 한 명씩 바라보며 카메라로 찍듯이 마음속에 저장했다. 그러면서도 평범하게 지냈다. 아니, 평범하게 지내려고 했다. 이곳에서의 이별은 아주 기쁜 소식이니까, 다시 이곳에서 만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바깥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내가 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병동에서의 마지막 .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후련하면서도 아쉽고 슬프면서도 반가웠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 밥을 먹고 식판을 반납하려는데 경우가 누나 마지막 날이라며 식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다며 손사래치곤 직접 반납했지만 그 마음이 너무 귀여웠다. 건우는 나랑 탁구를 치겠다고 했다. 여전히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눈에 띄게 밝아진 모습이 나를 웃게 했다. 제영이는 민수와 잘 노니 다행이었다. 수진이 언니는 그 와중에도 퇴원하면 내 베개를 뺏어야겠다며 나를 당황하게 했다.


퇴원수속을 밟는 데는 약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동안 유빈이 언니는 편지를 써서 집에 가서 읽어 보라며 몰래 쥐어 주었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짐을 싸서 밖으로 빼고, 몇 시간은 더 지난 것 같을 때쯤에 주치의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이제 정말로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이게 뭐라고 괜히 떨렸다.


조무사 선생님께서 유리문을 여셨다. 나가기 전 거실에서 노래방 프로그램을 하느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언니들, 그리고 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마주 손을 흔들어 주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뒤 유리문을 지났다. 유리문이 닫히고 나무문이 열렸다. 내 앞에 계시던 주치의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조무사 선생님이 어느새 내 뒤로 와 계셨다. 바로 앞에 엄마와 아빠가 꽃다발을 들고 서 계셨다. 선생님들과 부모님 모두 내게 퇴원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재빨리 밖으로 나와 조무사 선생님께서 나무문을 닫으실 수 있게 비켰다. 나무문이 닫히고 그 문 밖에 꽃다발을 든 나와 우리 엄마, 아빠가 잠시 함께 서 있었다.


드디어 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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