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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by 장발그놈

"빌어먹을... 왜 지원했을까?"


나는 텅 빈 우주선 안에서 홀로 남았다. 차가운 금속 벽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본다. 끝없는 어둠, 그리고 드문드문 반짝이는 별들.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이 우주선과 나뿐.


여기서의 1년이 지구에서는 30년이다. 나는 이제 이 궤도를 돈 지 1년이 지났고, 1년만 더 버티면 된다. 하지만 더는 버틸 이유가 없다.


과학자들은 말했다.

"빛에 가까운 속도로 중력이 강한 행성을 도는 우주선. 상대성 이론을 이용하면 미래로 갈 수 있습니다. 50년 후, 당신의 아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반드시 개발될 것입니다."


나는 믿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아내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나와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손을 맞잡고 거리를 걸을 수도 없었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가상현실 속에서만 허락되었다.


그러나 50년 후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될지도 몰랐다. 나는 이 미션을 통해 그녀를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떠났다. 나와 아내, 그리고 우주선 정비를 맡은 안드로이드 한 대.


이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나는 연구소에서 수십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며 가능성을 검토했다. 과학자들은 수차례 계산을 거듭한 끝에 우리에게 한 가지 선택지를 내밀었다. 단 한 번뿐인 기회. 빛의 속도를 가까이 하는 궤도 비행을 통해, 우리는 지구 시간으로 50년 후의 미래를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출발하기 전날 밤, 나는 아내의 침대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피부는 차가웠고, 그녀의 눈은 이미 피곤한 듯 감겨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희미하게 감긴 그녀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의식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 말을 듣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곧 다시 현실에서도 함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것이 의도적인 반응이었는지, 근육 경련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 여기기로 했다. 나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 이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가상세계에서 함께 거닐었다. 우리가 결혼했던 공원, 함께 앉아 노을을 바라보던 벤치, 그리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연못까지. 현실에 가깝지만 현실보다는 못한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차올랐다.


출발 당일, 우리는 우주선으로 향했다. 수많은 연구진과 기자들, 정치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인공적인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었다. 이 미션은 단순히 나와 아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이 미래로 가는 실험, 과학적 도약, 그리고 인류가 시간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증거. 나는 단순한 실험체이자 희망이기도 했다.

"좋아, 준비됐습니다."


마지막 확인 절차를 마친 후, 우주선의 해치가 닫혔다. 익숙한 중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창밖으로 마지막으로 보이는 지구를 응시했다. 푸른 행성, 저곳에서 나를 기다릴 사람은 이제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50년 후, 아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을.


우주선이 점차 속도를 높이며 궤도를 떠났다. 출발과 동시에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졌다. 중력 가속도의 영향으로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둠 속으로 몸을 맡겼다.


한동안 의식이 가물가물했다. 몸이 중력에 짓눌리는 느낌과 함께, 둔탁한 심장 박동이 귓가를 울렸다. 출발 전에 훈련을 받았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중력 가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모든 것이 가벼워졌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이 찾아왔다. 우주선이 본격적인 항해 모드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는 곧장 아내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우주선 내 의료 포드에 누워 있었다. 무중력 상태에서도 최소한의 안정감을 제공하는 특수 침대였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괜찮아?"


그녀는 미세하게 눈꺼풀을 떨었다. 의식은 있지만 몸을 움직일 힘은 없었다. 나는 곧장 그녀의 상태를 점검했다. 의료 모니터가 정상적인 심박 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혈압도 크게 변동이 없었다.

"안정적입니다."


안드로이드가 옆에서 조용히 보고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듣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2년동안 우주선 안에서의 생활을 유지하면 된다.


2년의 짧지 않은 시간이라면 냉동수면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논외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냉동수면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기억이 파편처럼 깨져 버리거나, 심지어 삶을 포기해 버린다고 했다. 정신이 온전한 채로 남는 것이 오히려 생존 확률을 높이는 길이었다.


우주선 내부에서의 생활은 지루하면서도 고요했다. 영화 속 우주선처럼 화려한 인터페이스나 편리한 생활 공간은 없었다. 오직 기능적인 구조물과 절제된 공간. 텅 빈 복도를 지나 조종석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오직 내 발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하루의 시작은 늘 같았다. 시스템 점검, 우주선 내 온도 및 공기 순환 체크, 그리고 아내를 돌보는 일. 나는 먼저 아내의 상태를 확인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체크해야 했다.

"수분 공급 76% 유지, 혈압 정상 범위. 단백질 공급이 필요합니다."


안드로이드가 데이터를 읽어주면, 나는 주어진 절차에 따라 그녀에게 영양을 공급했다. 그녀의 식사는 파우더 형태의 영양제와 재생산된 물을 섞어 링거 형태로 투여하는 방식이었다. 중력을 줄여도 그녀가 직접 음식을 삼키는 것은 어려웠다. 이게 최선이었다. 최소한 그녀는 생존하고 있었다.


식사는 나에게도 단순한 과정이었다. 작은 알약 몇 개가 하루 치 영양분을 대신했다. 처음에는 씹는 감각조차 없다는 것이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혀 끝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알약을 삼킬 때마다, 나는 내 입속을 스치는 공허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처음엔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면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맛이란 것도 사치였다.



그녀가 가상현실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우주선의 에너지는 한정적이었고, 시스템은 상당한 전력을 소모했다. 안드로이드는 사용시간을 하루 3시간 이하로 제한했다.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둘이 동시에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가상현실기기가 실행될 때는 우주선의 다른 비필수 장치들이 자동으로 절전 모드로 전환되었다. 시스템이 과부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사용 전에도 그녀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했다. 먼저 링거를 연결하고, 혈압과 체온이 정상인지 확인한 뒤, 그녀가 충분히 안정을 취했을 때만 접속을 허용할 수 있었다. 나는 가끔 그녀가 가상현실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현실에서 종종 나에게 힘겨운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같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상 속에서는 그녀가 행복할 수 있기를.


그녀가 가상현실 안에 있는 동안 나는 나머지 우주선의 시스템을 점검했다.


시간 감각은 점점 흐려졌다.

우주선 내부에서는 하루의 개념이 모호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끝없는 어둠과 드문드문 빛나는 별뿐. 해가 뜨고 지는 규칙적인 주기도 없었다. 우리는 지구 시간에 맞춰 조정된 조명 시스템 덕분에 인위적인 아침과 밤을 구분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진짜 하루인지 아닌지는 점점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점점 더 시계를 확인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출발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나는 아내를 돌보며 그녀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따라 유독 피곤해 보였다. 혈압은 안정적이었지만, 체온이 평소보다 낮았다. 나는 온도 조절을 위해 우주선 내부의 중력 제어 시스템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중력을 아주 약하게 설정하면 그녀의 몸이 덜 부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빌어먹을 정치논리로 설치된 비데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이 절제된 공간에 무슨 비데? 출발 전, 과학자들은 비데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물을 사용할 필요도 없고, 단순한 항균 티슈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어먹을 정치인들은 '우주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기묘한 명목성 발언하에 비데를 강제로 설치하게 만들었다. 나는 안드로이드에게 점검을 지시했다.

"배관 이상 감지됨. 비데 노즐에서 미세한 누수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보고를 들었을 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중력과 압력이 조절된 환경이라면 물방울 하나쯤 떠다닐 수도 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지 그때는 몰랐다.


그날 밤, 아내는가상현실 속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녀가 접속한 가상현실 속 풍경이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바닷가일 수도 있고, 우리가 함께 걸었던 거리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단순히 푸른 하늘이 펼쳐진 곳일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오직 현실에 남아 그녀를 지켜보는 역할이었다.


그녀는 현실에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지만, 가상현실 속에서는 걷고, 웃고, 나와 대화할 수 있었다. 아니, 나와 닮은 가상 속 인물과 대화했겠지. 나는 그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날따라 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그녀가 조용히 숨 쉬는 것을 확인하며 몸을 웅크렸다.

‘잠깐만... 눈을 붙였다가 다시 깨자.’


그렇게, 나는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삐---"


나는 경보음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상태 이상 감지. 산소 포화도 급격히 저하됨."


안드로이드의 경고음이 들렸다. 나는 기기를 강제로 분리하고 그녀를 흔들었다.

"괜찮아? 들려? 대체 무슨 일이야!"


그때 안드로이드가 검사 결과를 내보냈다.

"기도 내부에 미세한 액체 감지."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물?"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떠다니던 비데의 누수 방울이 그녀의 기도를 막은 것이었다. 나는 몸이 굳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무나 작은, 단순한 액체. 하지만 무중력 상태에서 그것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었다.

"안돼... 제발..."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기도를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빨아낼 수도 없었다. 보통 중력이 있는 환경이라면 당연히 흘러내렸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CPR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곳은 우주선이었다. 목을 압박해도, 폐를 강하게 눌러도, 물은 그대로 그녀의 기도를 막고 있었다.

"제발... 제발 버텨줘...!"


하지만 그녀의 몸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그렇게, 아내는 내 눈앞에서 조용히 멈춰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박수 경고음이 길게 울리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따뜻해."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우주는 끝없이 고요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조용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나는 그녀를 깨울 수도, 붙잡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현실을 부정하려 해도, 심박 모니터는 이미 침묵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안드로이드는 자동으로 사망 판정을 내렸다.

"생체 반응 없음. 회생 가능성 0%."


기계적인 음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우주선에서, 어디에도 그녀를 묻어줄 땅이 없었다. 이제 그녀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평생 곁에 있겠다고 했는데, 평생 지켜주겠다고 했는데. 그녀를 안은 채 한참을 우주선 안을 떠다녔다. 무중력 상태에서 나도 그녀도 방향을 잃은 채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끝없는 어둠. 그녀를 묻을 땅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머물 곳을 만들어 줄 수는 있었다.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의료 포드 안으로 옮겼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누워 있던 그곳. 그녀가 치료를 받았던 곳이, 이제는 관이 되었다.


나는 의료 포드를 닫았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차갑고 조용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평온해 보였다. 고통도, 슬픔도 없는 얼굴. 나는 떨리는 손으로 유리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를 우주로 떠나보냈다. 포드를 밀어 우주선 내 이송 구역으로 이동시켰다. 출입구가 열리면, 압력 차이로 인해 포드는 천천히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포드 앞에 섰다.


그동안 준비했던 이별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손을 올려 포드 위에 얹었다.

"미안해..."


나는 그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해치가 열렸다. 진공 상태로 빨려 들어가듯, 포드는 천천히 우주 속으로 떠올랐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녀가 점점 작아졌다. 포드는 작은 별 하나가 된 것처럼 어둠 속으로 떠다녔다. 그녀는 이제 우주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가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끝없는 어둠 속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흔적도, 온기도, 그 어떤 것도.


우주선 내부는 다시 고요해졌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 있는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된 시간이 왔다.


귀환 절차가 자동으로 시작되었다. 우주선은 천천히 궤도를 이탈하며 지구로 향했다. 나는 이제 지구로 돌아간다. 나를 기다릴 미래는 없었지만, 그래도 돌아간다. 나는 우주선의 창 너머로 먼지 낀 지구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푸르렀던 그곳이,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어두웠다.


50년의 세월이 지난 인류의 발전이 가져온 현상인가?

지구는 더 나은 곳이 되었을까?


나는 떠나기 전의 세상을 떠올렸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 환경 오염, 전쟁, 빈부 격차, 인간의 끝없는 욕망. 하지만 과학자들은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기술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 50년이 지난 세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마침내 우주선이 착륙을 마치고 해치를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숨 막히는 정적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시는 사라졌다. 거대한 빌딩들은 검게 그을려 있었고, 도로는 깨지고 뒤틀려 있었다. 기술이 인류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파괴한 걸까? 전쟁인가? 아니면 다른 재앙인가? 나는 무거운 걸음을 내딛었다.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하지만, 신호도 없었다. 방송도 없었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없었다. 마치 지구 자체가 유령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먼지 쌓인 건물들의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깨진 유리 너머로 비어 있는 실내 공간이 보였다. 사람들이 급히 떠난 흔적일까, 아니면 사라진 걸까?


이제야 알았다.


나는 50년 후의 희망을 찾아갔지만, 정작 희망은 지구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빌어먹을... 왜 지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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