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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순이알렉시오 Aug 21. 2015

취준이라는 이름의 관성

"선생님, 나쁜 소식이 있어요. 저 그대로 B반이에요."


2학기 개학을 한 초등학교 4학년 과외돌이 녀석의 말에 가슴이  철렁한다.

과외를 그만두고 학원에 보낸다고 하면 어쩌지..? 

그럼 이제 내 생활비는..?


또다시 과외마스터 인터넷 사이트를 전전하거나,

페북에 과외 연결을 부탁하는 글을 올려야 한다.

취업준비가 언제까지  길어질지 알지 못하는 마당에 

당장은 과외를 하더라도 지금의 수입이 고정된 건 아니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어쩌다 보니 학기가 모두 끝나고, 

이로써 16년 세월의 초중고, 대학교 교육과정이 지나자

강의시간표도 없는 일상을 도대체 어떻게 채워야 하나라는 막막함 뿐이었는데

과외로 생활비를 벌고, 

매주 2회의 스터디를 하고, 

공채가 뜨면 지원하고, 떨어지면 씁쓸해하고,

이제는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일상이 되었다.

취업준비라는 관성에 빠진 것이다.


그럴 때면 차라리 이렇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고 있다는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나로써는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번뿐이라고 생각했던 수능과는 다르게

이것이 끝인 것처럼 달려드는 간절함이 많이 사라진 터였다.


'그런데, 이게 끝이던가?'


끝은 아니지.

언시에 실패해도 내 인생의 끝은 아니지. 세상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고.

그래도 

끝인 것처럼 악착같이 해야 뭐라도 더 쌓이는 거 아닌가?

남들보다 널 뽑아야 할 이유가 생기는 거 아닌가?

진공상태의 진자운동처럼

왔다 갔다, 머리 속을 왕복하다, 퍼뜩, 스치는 생각.


내가 무엇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 두렵다.
아니, 내가 무엇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두렵다.


멍청하지만, 사실인걸.

부끄럽지만, 사실인걸.

난 내년도, 내후년도, 그 내년도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엘리지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 빨간머리 앤 -

빨간머리 앤,

아무래도 나는 지금 네가 제일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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