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의 소꿉친구인 둘째 언니에게 부치는 전언
둘째 언니가 나랑 첫째 언니가 사는 집에 올라왔다. 공무원인 둘째 언니의 대출이 없었다면 얻지 못했을 집. 언니는 우리가 이사온지 두 달여만에 처음으로 서울 집엘 왔다.
각각 두 살 터울인 우리는 4남매이다. (어디선가 '억!'하고 부모님 등골 휘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서로서로 한마디도 안 지고 치고 박고 싸우면서 컸는데, 이제는 싸울 새도 없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연락은 뜸하다. 새삼스레 전화하기도, 전화할 이유도 없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다. 알아서 잘 살고 있겠거니- 하다가도, 가끔은 어렸을 적이 생각나기도 한다.
둘째 언니랑은 어렸을 적 만화책을 같이 봤고, 만화도 곧잘 같이 그렸다. 만화에 관해선 항상 나의 사부였달까. 나의 '선'은 진하고 길었고, 언니의 '선'은 가늘고 세심했다. 언니는 진지하게 태블릿을 사고 싶다는 고민을 했었고, 나랑 첫째 언니는 알아듣지 못할 시를 써서 상을 타 왔다.
언니들이 하나둘씩 대학교에 갈 때만 해도, 그렇게 하나 둘 취업할 때만 해도 이제 앞으로는 예전처럼 다 같이 온 식구가 살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지.
그리고 언닌 지금 사서공무원을 하고 있다. 천상 잘 어울리는 직업이란 얘기를 하곤 하지만, 예전에 얘기해주던 거대한 판타지 세계관은 아직 구상 중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언니는 지금도 시를 쓰고 있을까?
사실 언니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천상 효녀'이다. 4남매 중에 그나마 그런 캐릭터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란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이니.. 언니에게 지금 만족하며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공무원이 탱자 탱자 노는 줄 알겠지만 일은 더럽게 많다'며 욕은 하겠지만 일찍이 엄마의 걱정은 일단 덜게 만든 이 삶을 긍정할 게다.
우리는 농담처럼 언니에게 빨리 글 써서 J.K 롤링되라는 얘길 하는데 그러면 먼저 이혼을 해야 되고, 이혼을 하려면 결혼을 해야 되고... (휴)
그러니 나는 언니에게도, 내 자신에게도 물을 수밖에 없다.
당신은 괜찮습니까.
당신은 (이 직업을 가져도) 괜찮습니까.
당신은 (이런 삶을 살아도) 괜찮습니까.
주입식 영어교육에 의하면, 괜찮습니까라는 물음에는 네, 괜찮아요 혹은 아니요, 괜찮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인데 괜찮다는 대답을 어떻게 들어도 2%의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질문이었다는 반성을 한다. 반성.
#쥬드프라이데이
금요일 네이버 웹툰인 '진눈깨비 소년'에 인상 깊은 구절이 등장한다.
누구에게나 가지 않은 길이 있겠죠.
그런데 어쩌면 그 미련과 아쉬움이 오늘을 걷게 하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저도 그래요.
네, 저도 그래요.
우리는 모든 삶을 살 수는 없어요. 내 삶만 살아볼 수 있죠.
내가 가지 않은 수만 갈래... 까지는 오버이지만 몇 개의 삶 역시 나의 삶이 될 수도 있었던 삶이겠죠.
그러니
어쩌면 어떤 삶이라도 '네, 괜찮아요.' 정도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끝내줘요!!! 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아니다. 가지 않은 길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 잠시 동안 살아보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거부할 수 없는 습성이니까. 당신은 괜찮습니까 정도의 질문이 '딱' 적당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