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 직업으로 취미를 하는 사람. 사실 거기서 거기인 말인데, 다시 한 번 의미를 명확하게 바꿔 보자면...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 직업으로 (돈을 벌어) 취미를 하는 사람." 이 될 수 있겠다. 혹은 둘 다에 해당하거나 둘 어디에도 해당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
어렸을 적부터 무슨 서류를 작성할 때면 항상 들어 있던 취미와 특기란이 그렇게 고역일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그 칸에 무엇을 써 넣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종종 어디든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돈을 벌어 너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씀하셨다. 여행을 가던, 새로운 것을 배우건 말이다. 그럴때면 나는 항상 비어있는 취미란이 떠오르곤 했다. 취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의 8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내는 '직장'과 '직업'이 일주일에 고작해야 얼마 걸리지도 않는 취미생활보다 더 중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니, 나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꿈을 꿨다. 빨리 그 '좋아하는 것'을 찾길 바라며...
꿈을 찾는 것이 꿈인 시기를 지나, 언론사 입사를 목표로 준비하기 시작한 지도 몇 달. 또 한 차례의 폭풍같은 지원서 접수 기간을 거치고 나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도 우울에 젖어있던 나날이었다. 기분을 풀기 위해 건드렸던 바이올린도 오랜 시간 켜지 않아 줄이 띠융-하고 끊어져 버리고 나자 안되겠다 싶어 수리를 맡기기 위해 집 근처의 악기점을 찾았다. 이런 저런 바이올린 얘기, 바이올린을 배워온 얘기, 바이올린을 켜지 않은 얘기를 사장님과 나누다 악기점의 앙상블에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덥석 물었다. 16살, 진지하게 고민했던 미래의 직업 중 하나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관현악단의 활동이 큰 즐거움이었다. 대학생, 어렵게 인터넷을 수소문해 찾은 앙상블은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나니 해체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 나는 오늘 하루종일 공부를 하다 말고도 오랜만의 '기대'와 '설렘'으로 넘치는 엔돌핀을 만끽했다.
'취미'란 위대하다. 감히 위대하다. 나는 취미를 기꺼이 아마추어를 감수하는 일이라고 바꾸고 싶다. 좋아하는 일이건, 그냥 일이건, 나의 작업과 시간과 노력으로 '재화'를 얻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보여내야만 하는 것이다. 어쩌다 취미의 분야에서 만렙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들을 흔히 우리는 '오타쿠', '오덕'이라고 표현하곤 하지만, 직업의 분야에서 만렙은 오덕이 아닌 전문가이다. 그들은 아무리 길고 날고 애를 써도, 슬프게도, 오덕이 될 수 없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존경한다. 자신의 취미를 kill할 각오를 했으니까 말이다.
직업으로 돈을 벌어 취미를 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취미생활은 꿈도 못 꾸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당신의 삶보다 가족의 삶을 택하셨으니까 말이다. 모두 나의 엄마와 닮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