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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순이알렉시오 Sep 15. 2015

나의 첫 방송사 시험

언론사 입사 전형은 각 언론사별로 다르겠지만, 주로 1차 서류전형-2차 필기전형-3차 면접-4차 면접-5차 면접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2차 필기전형의 경우 교양, 예능, 드라마, 기자 직군별로 다른데 내가 지망하는 시사교양PD의 경우 몇몇 방송사를 예로 들자면 SBS는 시사상식과 작문, KBS는 시사약술, 방송약술, 논술, 채널A는 논술과 기획안 등으로 나뉜다.


일요일날 SBS 2차 필기시험을 보고 왔다. 들어가는 문은 좁고, 지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걸 실감하는 게 2차 필기전형의 시험일 것이다. 시험을 보는 전 날과 보는 날의 기분은 매우 오묘하다. 끈이 팽팽히 당겨지다, 탁하고 놓아버리는 느낌. 내가 보는 첫 방송사 시험. Beginner's luck(초심자의 행운)은 없었다. 작문을 쓰고 나오면서, 아니 사실은 중간부터 아-다시 가서 작문 쓰고 싶다! 는 생각을 하면서 나왔으니 말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엔 '어려웠냐?'는 질문이 작문에는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이번 SBS 교양PD의 시험에서는 두보의 한시와 혁오의 공드리 가사를 주고 TV의 미래와 연출자로서의 각오를 작문하라고 했다. 기이했다고 할 수 있을진 몰라도 어려웠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결국 작문인 건데 저런게 나오면 어떻고 그냥 '나무'가 떡하니 나오면 어떻냐 그냥 본인만 잘 쓰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잘 쓰던 사람은 잘 쓰고, 부족했던 사람은 현장에서도 부족하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수많은 지원자 속 하나의 '허수'가 되어 조용히 어디선가 저의 글을 읽으실 채점관님에게 죄송하다는 말로 시험장을 나섰다.


스터디원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유형, 학교친구들끼리 뭉치는 유형, 혼자 담배 피는 유형, 집에 가서 자는 유형, 시험이 끝난 뒤 뿔뿔이 흩어지는 지원자들은 여러 유형으로 나뉠 수 있는데 그 중 나는 다른 스터디그룹의 언니와 마찬가지로 시험 끝나고 과외 가는 유형에 속했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30분 과외를 늦췄던 터라 과외학생의 집 앞에서 점심으로 뼈해장국을 시켜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기 전 스마트폰의 카메라가 잘못 작동되어서 찍힌 한 장의 사진.

 빈 접시가 꼭 내 마음 같았다고나 할까- 깨작깨작 젓가락으로 뼈의 고기를 발리며 먹기 시작한 뼈해장국이 눈물의 뼈해장국이 되고, 훌쩍이며 다음엔 이런 걸 공부해 가야지, 다음엔 시험장에서 저렇게 해야지, 핸드폰 메모장에 메로를 하다 보니........

옆자리의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고 콧물까지 들이켜가며 한 국밥 시원하게 말아드시는 거다. 그걸 보니 아 왠지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겁나 맛있게 뼈해장국을 먹는데 전념했다는 이야기... 먼저 뼈의 고기를 살살 발린 뒤 한 점씩 겨자소스에 찍어 먹기도 하고, 수저에 얹어 뜨거운 국물에 호로록 먹기도 하고, 밥은 처음부터 국물에 다 말지 말고 수저에 한 숟갈씩 퍼서 국물을 밥의 딱 반 정도만 적신 다음 그 뜨신 국물에 비로소 밥알이 사르르 흩어지는 이 맛! 눈물의 뼈해장국은 결국 너무 맛있어서 흘리는 눈물의 뼈해장국이 되었.


이 브러치만 해도 몇명의 구독자가 생겼으니 내 인생의 첫 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처럼 시험지를 작성하는 와중에도 독자를 의식하게 된다. 나의 시험지를 볼 사람은 채점관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너무도 신경써서 튀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스토리텔링이 산으로 가고 강으로 가고 해외로 가고 우주로 가고 결국 3류 소설로 끝나고 말았다. 남들과의 차별성을 시도하는 것은 좋지만, 적어도 진정성 있는 나의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몇번이고 이불킥이다. 우습게도 연출자로서 TV의 미래가 어찌되었든 내적인 진정성에 주목하겠다는 나의 각오를 쓰면서 진정성이 없는 언행불일치를 보였던 것도 같다. 또다시 이불킥킥.

행운인지 불행인지 나는 내 멍청함을 기억하기에는 기억력이 나빴고, 점심의 좌절이 저녁 때까지 이어지진 않는 그럭저럭 내구성 있는 멘탈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이렇게 한 번의 기회가 인어공주의 거품처럼 사라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의 멍청함으로... 내가 배설한 쓰레기로...! ..이불킥!안녕 일요일~ 잘가 SBS~ 내일을 봅니다 SBS~

그래도 어찌되었든 언행일치를 위한 나의 노력은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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