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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인 Jan 30. 2017

누군가와 맞춰간다는 것.

비로소 '가족'이 되는 것


  2016 병신년 한 해는 고작 반 오십을 살아온 나에게 큰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해이다. 말도 안 되는 연애를 해보았고, 배신도 당해보았고 반대로 배신도 해보았으며, 다른 시선과 사고방식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알게 된 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에게 '가족'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생겨지게 된 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내가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20년 이상을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나의 사소한 습관부터 숨기고 싶은 버릇까지 전부 다 알고 있는 가족이 아닌, 나의 극히 일부만을 보고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그런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한 가정의 귀한 딸로만 살아왔기 때문이었을까.

  누군가와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며 함께 음식을 먹고 정리를 한다는 것은 한 줄로 요약하기 힘들 정도의 감정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나의 집이란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다.
-로이스 맥마스터 부욜(미국의 공상과학소설가)


  나에 대한 고찰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하면서도 지독하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 방에서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동안 밀렸던 독서를 하거나, 보고 싶었던 드라마나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거나, 하루 종일 잠을 자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함께가 아닌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러다가도 외로워지면 곧장 밖으로 나가기도 하였다. 순간적인 감정과 스쳐 지나가는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나다.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 주인공이나 조연들에게 감정 이입되어 갑자기 인적이 드문 찻집에 달려가서 연필과 종이를 들고는 옛 생각에 빠져서 글을 쓰다가도 진정이 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다시 돌아와 또다시 방에 틀어박히는 사람이 나였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이상하리만큼 내 감정은 억누르고 타인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상처를 잘 받는 나를 잘 알기에, 타인도 그만큼 나로 인하여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이 항상 컸고 그 사람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며 어떤 말을 하든 이해하기 위한 나 혼자만의 난투극을 벌이곤 했다. 나였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행동과 말에도 그럴 수 있다는 너그러움을 보이며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 내가 가진 신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와 내 성격이었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일들 마저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이 재미있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함께'한다는 소속감을 느꼈다.

  이게 뭘까. 나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었지만, 끄나풀이라도 동여매서 한 마디 해보라고 한다면 '자기가 만든 세상에 갇혀, 지나치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이런 내가 가족을 만들어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뒤늦게 걱정이 밀려왔다.





  기본적인 생활 습관부터가 달랐다. 게다가 임신 3개월 차가 넘어서고 입덧이 심할 때는 참지 못할 사소한 습관들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일하는 날이 아니면 오전 10시쯤 눈을 떴다. 일찍 눈을 떠도 다시 잠들어 꼭 오전 10시는 넘기고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른 아침에는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정반대인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늦어도 오전 8시에는 기상하고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어야 했다.

  나의 경우 오전 10시에 눈을 뜬다 해서 바로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12시는 되어야 빵이 겨우 목 뒤로 넘어가곤 했는데, 남편은 눈을 뜨자마자 쌀이 꿀떡꿀떡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같이 산지 이틀쯤 되었을 때는 나에게 밥을 먹으라며 오전 8시쯤 깨우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날에도 빵 한 조각 혹은 몇 입만 베어 먹고는 바로 나가기 일쑤였는데, 밥을 먹으라고 깨우니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고 쉬는 날에 이른 시각에 날 깨우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서로의 시간이 이렇게 어긋나니 불만은 쌓일 수밖에 없었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자고 있는 나를 보며 아침밥을 혼자 먹는 것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며, 주방 출입을 해본 적 없는 아내를 어디부터 가르쳐야 할지 막막했을 터다. 게다가 입덧이 심해서 음식 할 때마다 고약한 냄새를 맡은 것 마냥 창문을 열어놓고 헛구역질을 하고 있으니 이리 와서 음식 하는 것을 보고 배우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달콤한 신혼을 생각했을 남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을 것이다.

  대화가 필요함을 느끼지만 평소에도 비관적인 내가 아이를 가진 후 극도로 예민해지고 말 한마디도 지지 않는 고집 덩어리가 되어버려 입덧하는 시기만 지나기를 간절히 바라 왔다. 12주쯤 되었을까. 아직도 음식 냄새는 싫지만 습관적으로 토하고 말았던 내가 이제는 음식을 잘 받아넘기게 되었고 우리는 그나마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함께 맞춰가는 공간을 만들어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서로에게 소홀해지고 약속했던 일들을 묵살하며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지낸 시간보다 각자의 삶을 보내온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누리고 싶은 것만을 챙기는 것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글로 써보며 우리만의 규칙을 정하여 습관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행복을 느끼던 연애와는 별개의 문제들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우리는 이제 막 한걸음을 내딛으려는 초보 가족일 뿐이다. 더 이상 부모님 품 안에서 여유롭게 살아왔던 누군가의 자식이 아니다.

  어리광쟁이 딸내미에서 한 가정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겠지만 하나씩 천천히 가족이 되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어른으로써 성장하여 더 넓은 시야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빨래를 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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