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에 푹 적신 프렌치토스트는 촉촉하고 따뜻하다. 겨울에 먹으면 추위가 싹 가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2016년 21살이 된 그 해 겨울, 아빠의 사업실패로 나는 빚이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날 엄마는 손을 덜덜 떨며 내 앞에서 모든 보험을 해지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가압류 딱지가 붙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밤마다 부모님은 이혼얘기를 했다. 미성년자인 동생은 영문도 모른 채 부모님이 싸우는 게 싫다며 내 품에서 울었다. 당장 다음 학기 복학을 해야 할 텐데…. 학자금 대출을 알아봐야 하나.
"엄마 나 그냥 공무원 하려고."
그렇게 나는 빠른 취업을 하기 위해 노량진으로 향했다. 겨울 노량진 거리에서는 회색빛으로 가득했고 음식물 짬 내가 났다. 사람들은 피곤한 표정으로 거리를 배회했다. 그 거리를 지나 가장 유명한 공무원 학원으로 향했다. "강의료가 얼마예요?" 하니 카운터에서 내밀던 수강신청서에는 꽤나 높은 비용이 써져 있었다. 등록비가 부족했다. 늘 하던 대로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부모님은 서로에게 등록비의 소재를 미루며 다퉜다. 괜한 짓을 했던가. 돈, 돈이 뭐라고. 돈이 부족해 돈을 벌려면 돈이 또 필요했다.
인근에 사람을 구하는 곳을 찾다가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편의점을 찾게 됐다. 그렇게 번 돈은 학원 단과반 한 달 수강료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독서실을 등록하거나, 커피를 사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매일 선택하는 식사 메뉴들도 점점 저렴한 것들만 찾게 되었다. 김밥 한 줄 혹은 컵밥에 쓰는 단 돈 오천 원도 아까웠다.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데에 들어가는 그 어떤 비용도 아끼는 습관이 생겼다. 성의 없이 종이그릇에 담긴, 포일에 담긴 밥들이 마치 스스로에게 성의 없어진 나 같아서 보기 싫어졌다.
구질구질함이 익숙해질 때쯤, 갑자기 브런치 카페에서 파는 예쁘고 푹신한 프렌치토스트가 먹고 싶어졌다.
'토스트에 커피 한잔이면 대충 만원이 넘겠지? 그럼 오늘 저녁은 굶어야 할 테고 ….' 하다 문득 나는 만 원도 못 쓰는 사람이 된 게 서글퍼져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식빵을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있는 텅 빈 주방에 가서 프라이팬을 잡았다. 버터를 꺼내 녹였다. 고소하게 익어가는 유제품내음이 집 안으로 퍼졌다. 분명 겨울이었고 찬 공기가 가득한 주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배가 따스히 달래지는 것 같았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식빵 두 장이 충분히 잠길만한 넓은 그릇을 꺼내야 한다. 거기에 식빵 반 장이 잠길 만큼 우유를 붓는다. 그리고 부어진 우유에 계란 한 알을 까 넣고 숟가락으로 설탕을 푹푹 퍼 네 번을 넣어 섞는다. 섞이는 병아리빛 액체에 피곤함이 녹아내릴 수 있을 만큼, 휙휙!
그 속에 담가 촉촉이 적신 식빵을 꺼내 버터를 녹인 프라이팬 위에 얹는다. 기분 좋게 타닥거리는 버터소리를 들으며 가스레인지를 약불로 줄인다.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식빵의 밑면을 본다. 갈색이 됐다면 이제 뒤집는다.
바삭하게 익은 식빵을 꺼내 집에 있는 가장 평평하고 예쁘게 생긴 그릇에 플레이팅 한다. 카페에서 파는 것을 최대한 흉내 내며, 나 또한 카페에서 돈을 지불한 손님처럼 당당하게 식탁에 세팅을 한다. 슈가파우더가 없다면 설탕과 밀가루를 믹서기에 갈아서라도 만들어 내 나를 위한 예쁘고 달콤한 한 상을 차려낸다.
병아리빛 노란 배경에 갈색 그림이 그려진 삼각형의 조화를 썰어내 입에 넣었다. 달콤하다. 식용유에 절여진 밥냄새와는 차원이 다른 버터의 풍미가 입 안에 퍼진다. 처음 만들어낸 나를 위한 레시피는 따뜻하고 달았다.
급하게 종이그릇에 담긴 컵밥과는 달리 나를 위해 만들어낸 예쁜 그릇 한 상이 주는 위로가 다정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뿌듯함이 슈가파우더보다 달콤한 데코가 되어줬다.
입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프렌치토스트를 잘라 넣으며 생각했다. 이번 주말에는 네 장을 만들어 봐야겠다. 엄마와 아빠, 동생이 다 같이 모여 먹을 수 있게끔. 그날엔 슈가파우더를 사 와 데코를 해 줘야지. 얼마를 썼는지 생각하지 않게 뜨끈한 빵의 온기에 우리 집이 따뜻해질 수 있게, 구질구질하지만 나에게만큼은 너무 치사하지 않게 굴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