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내가 한국어 잘하게 된 이유

by 슈미

'근데 언니는 말을 진짜 한국인처럼 해요. 어떻게 공부했어요?'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다 여기까지 온 것이다. 천국이었다가 지옥이었다가 또 중간인 한국이 이제 집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 되었다. 추운 날에는 수분 그림을 더 많이 발랐고, 여름에는 최대한 에어컨 바람에 내 몸을 맡기고 집에만 있었다. 원래 내 피부가 건조했나? 원래 더위를 탔었나? 그렇게 여러 계절을 한국에서 보냈더니 그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내가 살았던 곳의 날씨가 어땠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만약 그냥 넘기고 싶었으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에이~ 한국에서 사는데 뭘~'


꼭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도 한국어를 잘했지만, 한국에서 살다 보니 발음이 자연스러워졌고, 읽는 것도 많이 빨라졌다. 노래방 가서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굳이 가사를 외우지 않아도 문제없이 자막 따라 부를 수 있다. 근데 물어본 사람이 친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더욱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지 평소와 다른 답을 해버렸다.


'나 혼잣말을 많이 해서 그래...'


혼잣말이라... 내 나라에서 혼잣말하는 사람을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어떤지 모르겠다. 지금 내 옆에 없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때 미리 연습하듯이 혼잣말을 자주 한다. 죽어가는 이어폰을 손에 들어, 가지 말라고 애원하고, 집에서 문과 부딪혀도 사과는 꼭 하고, 켜질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컴퓨터에게 뭐가 문제냐며 따지기도 한다. 억울한 싸움 끝의 위로도, 오늘 해야 되는 일에 대한 확인도 나를 통해서 했던 것 같다. 정확히 언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혼잣말을 한다는 사실을 해리포터가 한참 유행했던 2000년대 초반에 깨달았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언니와 싸운 뒤에 내가 뭐라고 했는지 자기한테 마법을 거는 거냐며 언니한테 맞은 기억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맞기 싫어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고, 그 방법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아... 진짜요? 혼잣말할 때 무슨 말을 해요?'


슬픈 얘기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와 싸우는 내용의 대화들이다. 나한테 왜 그랬어? 왜 그렇게 했어? 누군가에게 따지는 거였다. 이런 질문들을 하고,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에 모국어 사용은 너무 위험했다. 용기를 내서 말해보면 싸움이 날 거고, 일기장에 써 놓으면 결국 누군가가 읽고 일이 커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표현하고자 할 때마다 혼자서 외국어를 했다. 먼저 영어, 나중에 한국어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또 막내였기에, 태어났을 때부터 누리지 못한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 같았다. 아무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렸다. 설거지할 때나 빨래를 널 때, 입도 손만큼이나 바쁘게 움직였다. 손의 할 일이 끝날 때쯤이면 입도 자기만의 싸움을 끝내고 그 안에 숨겨둔 모든 나쁜 말을 뱉은 체 다음 싸움을 준비했다.


'그냥 일기에 쓸 만한 내용을 소리 내어 말한다고 해야 하나?'


어색하게 웃으며 아차 싶었다. 아직은 거기까지 내 속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나기가 많이 무서웠다. 아주 용감하게 시작한 대화가 그렇게 비겁하게 끝나버렸다. 나는 오늘도 집에 가면서 이 대화를 떠올라, 혼잣말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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