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싸움

내부에 적이 있다

by 한소로



아뿔싸, 걱정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녀가 남자친구와 싸움을 하고 만 것이다.


결혼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똑부러지는 그녀의 성격을 아는지라 다른 건 걱정하지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나보다 훨씬 나을 거다.


다만, 한참 알콩달콩 좋을 때 결혼을 결정했다는 것이 좀 걱정스럽기는 했다. 작은 다툼 한 번 없이 늘상 좋은 시절에 정하다니,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바짓가랑이 붙들고 하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자친구라는 놈팡이 얼굴을 본 적도 없으니. ‘야, 그 남자 성격 좀 있을 거 같아. 싸움도 좀 해보고 그런 다음 생각해 봐.’ 하면서 말리려면 코빼기라도 봤어야 할 것 아닌가 말이다.

또 의외로 천생연분이라 큰 다툼 없이 평생 살아갈 사이라서 이렇게 뚝딱 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 그런 커플도 없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뜯어말리는 건 그야말로 쓸데없는 참견되시겠다.

어느 쪽이 맞는 건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목구멍 안쪽으로 내 생각을 꾹꾹 눌러 담으며 그녀의 결혼 준비를 지켜보았다. 걱정반 축하반의 마음으로.


다행히 그녀의 결혼준비는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부모님께서도 반가운 마음으로 신랑감을 맞아주셨고, 시부모님들도 모두 좋으신 분들이라 상견례가 무사히 잘 끝났다고 했다.

반전은 둘의 관계에 있었다. 항상 좋기만 하던 연인이 처음으로 싸운 것은 결혼준비를 하던 와중이었다.




일처리가 남다른 그녀는 본격적인 시작 전에 직속 상사들에게 결혼 프로젝트 진행 방향이나 참고할만한 사항이 있을지 물었다. 양측 부모님들은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하라며 자유로움을 허하셨다.

페이크였다. 프로젝트는 친정 부모님께 1차, 2차 두 번이나 빠꾸를 먹었다. 그녀는 화가 났다. 이럴 거면 진작에 말씀하셨어야지!

그녀는 원하는 결혼식이 뚜렷하게 있었고, 그것이 가능한 서울의 결혼식장과 웨딩 업체는 많지 않았다. 그걸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건만,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 완벽한 계획안을 만들어 제출했더니 '다시 해 와.' 소리를 두 번이나 들은 것이다. 시부모님도 아니고 친정 부모님께.

속이 상한 그녀는 내부에 적이 있었다며 이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 중인 동료에게 하소연했다. 예비신랑에게 그녀가 바란 것은 위로였다. 그러나 말만 동료지, 실상은 이름만 등재해놓고 하는 일도 없는 파티원이 오히려 그녀에게 짜증을 낸 모양이었다.

그것이 둘의 첫 싸움이었다.


"말하다 보니 제 목소리가 많이 커졌어요. 그랬더니 자기도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막 난리치고 엄청 싸웠어요."


첫 싸움치고 많이 격렬했다.

난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처음부터 이런 식이면 나중에는 어쩌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3중으로 충격을 받은 그녀에게는 내상 치료가 필요했다.


"너무했네. 들어보니까 준비는 네가 다 하는 거 같구만, 얘기라도 잘 들어주지."


"그러니까요~.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워할 텐데, 그게 어렵나 봐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무조건 그녀 편을 들었다. 얼굴도 못 본 예비신랑 따위 알 게 뭔가.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어느 정도 상황이 짐작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녀는 결혼식에 대해 원하는 것이 뚜렷한 반면, 예비신랑은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았다. 그냥 몸뚱이 멀쩡하게 결혼식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그러니 당연히 결혼식 준비는 그녀가 주도, 아니, 독박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두 번이나 계획이 무산되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이때쯤 그녀는 다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지 않았을까. 말투나 행동에 감정이 묻어 나왔을 수도 있겠다. 아마 남자친구도 함께 스트레스를 받았겠지. 그러다 그가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낸 순간, 전쟁이 발발하고 만 게 틀림없었다.


다행히 나와 만났던 날, 그녀와 남자친구는 이미 화해를 한 상태였다. 내가 겪어온 그녀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바로 나에게 얘기하는 일이 드물다. 대체로 어느 정도 그 일이 정리된 다음에야 얘기를 하는 편이다. 그것이 현실적인 정리이든, 마음 정리이든 간에 말이다. 날 만난 것은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싸워서 속상했던 감정의 잔재를 수다로 날려버리기 위해서였던 것 같았다.

우리는 그날 평소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잔뜩 했다. 그녀는 첫 싸움과 화해 외에 결혼 준비 과정의 어려움 등을 토로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까여버린 기획안을 3차 수정하기 위하여.




그러나 한 번 물꼬를 튼 싸움은 그치질 않았다. 마치 작은 균열로 인해 거대한 댐이 무너진 후 터져 나오는 물살처럼, 싸움은 격렬하고 끊임없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결혼 준비 기간 동안, 그녀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싸움의 기록이 경신되었다. 싸움의 원인은 다양했다. 게다가 수위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물론 매번 싸우기만 한 건 아니었다. 걱정이 되어서 물어보면, 화해했다는 답변이 돌아올 때도 있었고 요즘은 잘 지낸다는 답변이 올 때도 있었다. 나는 안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좋은 날과 화내는 날이 반복됐다. 녹록지 않은 결혼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와 업무 스트레스 등이 겹쳤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결국 이런 얘기까지 나왔다.


"이혼보다는 파혼이 낫겠죠."


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삼겹살 집에서 그런 얘기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젓가락질 이어가기가 면구스럽잖아,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나마 다행인 건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이라 고기가 다 타들어가는데 집어 먹을 수가 없다는 안타까운 상황은 면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안타까운 건 내 식욕이 계속 동하고 있다는 거였다. 치즈 폭탄 계란찜의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게 자꾸 시야 한 켠에 들어왔다. 예민한 사람들은 이럴 때 입맛이 뚝 떨어질 텐데. 갑자기 그들이 부러워졌다.

물론 눈치도 있고 사회성도 박살 나지 않은 나는 쓸데없는 말을 입 밖으로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허투루 듣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수저는 가지런히 내려놓고 손대지 않았다.


그리고 쓸데 있는 말도 입 밖으로 전혀 꺼내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가게 사장님께서 '물에 빠져도 엉덩이는 둥둥 뜰 거야, 붕어랑 얘기하느라.' 라고 평가하셨던 주둥이가 딱 달라붙어서 안 떨어졌다.

다행히 내게 답변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렇게까지 안 맞는데 앞으로 평생 같이 살 수 있겠나 싶고. 요즘 거의 만날 때마다 싸우는 것 같아요."


"그 정도야?"


"네, 이젠 남자친구도 잘못했다고 하지도 않아요. 처음엔 자기가 먼저 연락하고 그러더니 요즘은 안 하더라구요."


이때 내가 그녀에게 잔을 부딪치자 했던가, 안 했던가. 술자리에서 할 말이 없을 때 늘 쓰는 방법이었다. 고전적인 방법이었지만 알면서도 다들 속아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한참 이어졌다. 정말로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 무슨 얘기든 마냥 들어주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던 남자는 어딜 갔는지, 이젠 무슨 말을 하든 싸우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 이미 결혼 준비는 시작한 지 한참 되었다. 이제 와서 식장이니 스튜디오니 예약했던 것들을 취소하면 금전적 손해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그런 것 다 감수하고 지금 헤어지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그녀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결혼 준비 중이 아니라면 이미 헤어지지 않았을까? 나는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많이 좋아하는구나.

부드러워 보이지만 고집 센 그녀다. 진짜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결혼이고 뭐고 중단했을 것이다. 이토록 고민하면서도 아직까지 계속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우짓을 좀 해."



이전 03화꿈꿔온 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