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길

내안에 사계(봄)

by 염상규

나는 참 오랫동안 앞만 보고 걸어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길이 나에게 맞는지 따져볼 여유도 없이 그저 ‘가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세상과 타협하며 누군가 정해놓은 이정표를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그저 묵묵히 앞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중년들은 다 한번씩 공감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조용히 발걸음을 멈춘 날이 있었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며칠을 쉬는 것이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본다.
불어오는 바람이 유난히 부드럽고, 햇살이 내 어깨 위에 따뜻하게 내려앉던 그날은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이 있었다.
비 오는 날 은근히 번지던 흙냄새, 그리고 힘들때 건네받았던 작은 미소와 따뜻한 말들.
나는 그 많은 순간들을 지나치기만 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내겐 앞으로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날이 남아있다.
앞으로 남은 길을 생각하니, 아직 보지 못한 풍경과 만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나조차 몰랐던 나의 모습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비바람이 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걷는 길의 한 부분이고, 길 위의 모든 계절은 저마다의 색과 풍경을 품고 있을테니 그 마저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걷고 싶다.
주변에서 건네주는 호의를 모르고 지나치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구름이 흘러가는 속도도 가늠하고 싶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동반자와 발걸음을 맞추며, 길 위에서 웃고, 대화하고, 잠시 쉬어가도 좋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오로지 바라보며 향해가는 길이 아니라, 걷는 동안의 모든 순간이 소중했던 기억으로 머물게 하는 그런 길로 만들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걷는 즐거움을 알기에 맞춰가기로 한다.
남은 인생의 길 위에서 다짐한다.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벼운 설렘으로 채우리라고.
오늘도 나는 한 걸음을 내딛는다.
내가 가고싶은 나만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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