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을 좋아하는 두 남자가 있다. 두 남자는 같은 직장에서 만나 같은 날 퇴직을 했다. 몇 해 전 두 남자 중 한 남자는 정년퇴직을 했고, 한 남자는 명예퇴직을 했다. 두 남자는 모시고, 모심을 당하는 관계였다. 경북교육청 연수원에서 운전원과 기관장으로 만난 두 남자는 코드가 잘 맞았다. 흔히 아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가 아닌 동네 형, 동생 같은 관계처럼 격이 없었다.
그들은 퇴직하면서 꾸준히 만나며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었다. 삶은 다르지만 서로 생각하는 바는 같았다. 퇴직 후의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주식시장에 어느 종목이 오를 것이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야기하며 지냈다.
명예퇴직을 한 남자는 퇴직을 하면 안 되는 나이였다. 하지만, 신장이 좋지 않은 그는 신장병의 마지막인 혈액투석 치료를 받고자 퇴직을 선택했다. 충분히 직장을 유지하면서 치료받아도 되지만, 성격상 짐짝 취급 받는 게 싫었다.
왜냐하면 치료받는 동안 근무를 하지 못하면 누군가 ‘땜빵’을 해야 한다. 어떻게든 조직은 굴러가겠지만 따가운 눈초리는 그의 몫이다. 그는 그런 눈초리가 싫어 과감한 선택을 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반면 무엇인가에 도전할 수 있는 나이였다. 20여 년간 나를 보호해 주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겁도 났지만, 용기 내어 퇴직했다.
이렇게 명퇴를 선택한 나는 퇴직한 지 3년이 되어도 동네 형 같은 그와 여행을 다닌다. 그는 교직 생활에서 지리과를 전공하여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지리가 전공인 그는 코드가 잘 맞았다. 그리고 그와 같이 다닐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교사 같지 않은 교사라서 좋다. 살면서 정도만 걸을 수 없듯이, 그는 딱딱한 가르침만 하던 교사가 아니었다.
우리는 주중에 통화를 하면서 겨울이 제철인 음식 중 굴을 이야기했다. 전국 각지에 굴을 판매하는 식당이 있지만, 바람 쐴 겸 겸사겸사 통영을 찾았다. 사실 통영에 가더라도 식사 후 커피 한잔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제철 음식을 산지에서 먹어보고 싶었다. 구미에서 대구로 가서 그를 모시고 다시 통영으로 두 시간을 달렸다.
우리는 식사하고 ‘강구(江口)안’을 찾았다. 강구안은 바다가 육지로 들어온 뜻이다. 통영의 중심지이자 통영에 들르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이곳을 들린다. 왜냐하면 강구안에서 ‘동피랑 벽화마을’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강구안은 거북선과 판옥선을 재현해 놓은 네 척의 배들이 있고, 여러 어선도 정박해 있어 사진도 찍을 겸 한 번쯤 들릴만한 곳이다.
우리는 거북선과 판옥선을 둘러봤다. 노가 있길래 노도 저어보고 여기저기 꼼꼼히 둘러봤다. 당시 사용하던 대포는 아니었지만, 정위치에 놓인 대포를 보니 치열했던 전투가 상상이 됐다. 지금처럼 국민이 성장이 잘 되어 키가 크지 않았던 당시 조선인들이었다. 그들은 배 안의 높이가 적당했는지 모르겠지만, 182cm인 나는 천장이 낮아 배 안에서 고개를 편하게 들 수 없었다. 배안에 있는 보를 지날 때마다 연거푸 목례했다. 그렇게 몇 척을 돌아보니 허리가 아팠다.
우리는 마지막 판옥선을 둘러보고 동피랑 벽화마을로 갔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절벽’이라는 뜻이며, 절벽의 우리말이 ‘피랑’이다. 동피랑과 서피랑이 있는데 적당한 높이의 고지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꼭대기에 오르면 조선시대 군사시설이었던 ‘동포루’가 자리 잡고 있다. 동포루는 동피랑 마을의 핫스폿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동포루 마당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강구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강구안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면, 스케치북에 그린 아크릴화같이 선명한 색색들로 칠해진 지붕들이 펼쳐져 있다. 보는 순간 부산의 ‘감천 마을’이 떠올랐다.
우리가 찾았던 통영은 봄이 오는 것 같았다. 한낮 기온이 영상 10도가 넘는 날이었다. 입고 간 파카를 벗고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어도 땀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날씨에 골목을 걸어 올라 전망대에 도착하면 목이 말라 저절로 시원한 음료가 생각났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면서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강구안을 보며 멍때리고 있으니 더 이상 좋을 수 없었고, 더 좋은 것이 있다고 한들 지금만큼 좋겠나 싶었다.
앉아 있으니 배도 꺼지고 시간도 적절했다. 우리는 통영 남단에 있는 ‘달아 공원’을 찾기로 했다. 목적지로 가던 중 ‘통영대교’를 지나가게 됐다. 이동 중 멀리서 통영대교가 보이자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다. 이번 여행은 사진 촬영의 목적도 있었기에 컬러풀한 통영대교를 빼놓고 갈 수 없었다. 몇 컷만 남기려고 했는데 통영대교를 드나드는 배를 구경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진을 찍고 달아 공원으로 가려는데 석상이 하나 보였다. ‘제주해녀상’이었다. 고향이 제주가 아니지만 제주라는 글을 보니 반가웠다. <내가 다녀온 제주 4·3 여행기>를 쓴 저자로서 제주라는 단어에 마치 고향을 느끼듯 반가웠다. 나는 4·3 여행기를 쓰면서 강한 생활력을 가진 제주해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제주해녀상 비문에 새겨진 대로 그들은 이곳까지 와서 물질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나는 잠시 통영에서 제주를 생각했다.
30분을 달리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달아 공원은 전망대가 있어 전망대에 오르면 굴 양식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좀 전에 먹었던 굴도 이곳에서 공급되었을지 모른다. 전망대에서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으니, 눈은 즐거웠지만 등이 점점 뜨거워졌다. 그늘 하나 없는 전망대는 우리들을 오래 있지 못하게 했다.
나는 오랜만의 통영행이어서 기대만큼 알찬 시간이 됐다. 통영이라고 하면 굴이 생각나고 굴을 생각하면 통영이 떠오른다. 실을 생각하면 바늘이 생각나고, 바늘을 생각하면 실이 떠오르는 그런 관계이듯, 통영과 굴은 떼놓을 수 없다. 달아 공원을 끝으로 두남자의 새해 첫 여행지인 통영은 봄이 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