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철 Jan 03. 2025

겨울 길을 간다

초라한 교회를 꿈꾸며

< 겨울 길을 간다 > 


흔히 사람들은 “선생”이라 하면 좀 더 인격적인 분이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좀 더 인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성품이나 취향이 어떠하든지 교사는 늘 옷매무시를 단정히 해야 한다.

이 “불편한 생각”에 나는 동의한다.

내가 만일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작 이일(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늘 비싼 옷만 입으시네요”


작년 여름 한 학생이 내가 입은 반팔 티셔츠를 보며 이야기했다.

티셔츠 하나가 비싸야 얼마나 비싸겠는가 만은 다시는 그 옷 입고 출근하지 않았다.


“학생은 가난한데 선생은 부자네요”하는 소리처럼 들려 스스로 무척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부자는 남을 가르칠 수도, 영향력을 미칠 수도 없다.

좋은 선생은 학생과 함께 배고프고 학생과 같은 높이에 서있어야 한다.      



얼마 전 한 집사님과 식사자리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몇 해 전 성도가 3천 명가량 모인다는 부산의 한 교회를 탐방할 일이 있었는데 그 교회는 시내 중심부에 있지 않고 허허벌판, 주택가 하나 없는 변두리에 위치했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넘쳐나는 교인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더란다.

예배를 마치고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려고 교회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갔다고 한다.

그런데 안내자는 당회장실이 아니라 교회식당의 한쪽 식탁으로 안내했다고 한다. 

그 교회에는 당회장실이 따로 없었던 것이었다.  

   

사연을 알고 보니 이랬다.

교회를 건축할 때 장로님들이 담임 목사님 서재를 설계했으나 목사님께서는 교회에서 집까지 코앞인데 뭐 대단히 책을 많이 본다고 서재를 만드냐며 “금지”시키신 까닭이라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희한한 광경은 그 교회의 내부 외벽이었다.

방음시설에 건축비가 너무 많이 든다 하여 교회의 벽면에 계란 판 수만 장을 도배하듯 붙여 놓았다 한다.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럽고 볼품없는 교회 아닌가...


계란 판 방음벽, 

이 역시 담임 목사님의 “특명”에 의한 건축이었다 한다.

담임목사님의 유일한 건축 기준은 “건축에 돈 쓰지 마라”였다한다.


한 번은 담임목사님이 외부로 설교를 나가신 사이에 장로님들이 꼭 필요한 곳의 계란판을 뜯고 몰래(?) 방음시설을 하고 비밀로 했으나 이마저도 담임목사님이 아시고는 노발대발했다 하니 그야말로 그 목사님에 그 장로님들 아닌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사람이 어디에 관심을 갖고 사는지는 결혼식 하객이나 장례식 문상객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전 어느 목사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걸인들이 운집을 했고 어느 목사님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나병 환자들로 가득했다 한다.

그분들이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살아왔는지 이 한 장의 사진은 이야기해 준다.     



나는 크리스천이지만 법정 스님의 묵상 집 [무소유]에 감동하고 이해인 수녀의 시 [겨울 길을 간다]에 감명을 받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종교가 아니라 그분들의 가난에 나는 감동한다.       


마리아, 만삭의 몸으로 많은 여관을 두드렸지만 결국 예수님의 자리는 초라한 말구유.


성탄절, 예수님은 화려한 교회에 계실까?

성탄절, 나누어주고 베풀어서 초라하고 가난해지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