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기를 기다리며
< 눈이 오기를 기다리며 >
지난 일요일, 아침부터 갑자기 폭설이 내렸다.
다행히도 날씨가 춥지 않아 낮 동안 다 녹았지만 나는 좀 짜증이 났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셀프 세차장에 가서 오랜만에 두어 시간을 들여 내차와 아내차를 세차했기 때문이었다.
내차는 몇 년 안 된 차여서 세차가 쉽고 간단했지만 아내의 차는 17년 된 차다 보니 낡고 찌든 때가 많아 세차에도 시간이 무척 많이 들었다.
아내와 둘이서 땀이 나도록 세차를 하고 나니 그나마 조금 윤기가 났다.
“어머 여보, 이것 좀 봐요. 아직 10년은 더 타겠네~”
우리 아내는 새 차 같다며 너무 좋아하는데 난 좀 미안했다.
17년 된 차,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끌로 다니는 수준이었다.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부식이 일어났다.
내가 좀 더 능력이 된다면 당장 더 좋은 차로 바꿔 줄 텐데 못난 남편 만나 똥차 타고 다니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고생을 해서 세차를 했건만 눈이라니.
“젠장할.”
아침부터 짜증이 나지 뭔가.
오늘 학부모님 한분이 수강료를 납부하러 오셨다.
나도 잠시 시간이 비어 마주 앉아 아이들 이야기, 먹고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어머님은 인근에서 신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원장님, 제가 마진이 10%예요.”
“아, 그렇군요.”
“지난번에는 손님이 와서 65,000원짜리 신발을 하나 샀는데 사이즈가 없어서 본사에 주문을 넣어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어요. 근데 택배비는 손님 부담이라고 했더니 무척 언짢아하더라고요.
제가 택배비 4,000원 빼면 2,500원 남아요. 신발하나 팔아서. 근데도 손님은 막무가내로 택배비를 빼달라고 해서 결국 그렇게 했어요. “
“아이고, 너무 안타깝네요.”
“그런데 요즈음 그마저도 장사가 안 돼요. 위에 계신 그분 때문에.”
위에 계신 그분?
“아, 네...”
정치이야기였다.
“그뿐이 아니에요. 비가 많이 와야 장화가 잘 팔리고 눈이 많이 와야 부츠가 잘 팔리는데 작년과 올해 눈, 비가 너무 적게 와서 더 힘들어요. “
“아, 그렇겠군요. 세상에 어쩌면 좋아요.”
“그래서 요즈음은 이 일을 더 해야 하나 접어야 하나 고민이에요. 아직 나이 50도 안 됐는데.”
나도 모르게 그 어머니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아이 학원비에 교재비까지 참 적지 않은 비용을 결제해야 했다.
형제 할인은 물론이고 자녀가 셋이라기에 더 할인을 했다.
“아이고 어머니, 셋이면 얼마나 힘드세요. 저도 애가 셋이라서 잘 알지요. 뒤꽁무니는 다 빼드릴게요. 만약 누가 저 대통령 시켜주면 자녀 하나당 1억, 둘이면 2억, 셋이면 3억씩 줄 거예요.”
그 어머님은 카드를 내미시며 그마저도 3개월 할부로 부탁을 하셔서 그렇게 해드렸다.
할인 금액이 별로 큰돈은 아니지만 내가 해드릴 것이 별로 없었다.
돌아서 나가며 그 어머니는 문 앞에 서서는 연신 코가 바닥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고는 한참을 서 계셨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하게 그냥 한 달 치 싹 빼드리고 싶지만 나도 직원 월급은 줘야 하고...
남이 굶는다고 나까지 굶을 필요야 없겠지만 내 밥 서너 숟갈은 나누어 줄 수 있지 않겠나.
남이 힘들다고 나까지 힘들 필요야 없겠지만 짐 하나쯤은 받아줄 수는 있지 않겠나.
어차피 인생 뭐 있나,
잘나 봐야 거기서 거기고 못나봐야 거기서 거기 아닌가.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단다.
주머니에 넣고 갈 수 없으니.
내가 모았어도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어차피 마지막에는 다 두고 갈 거면 조금 일찍 미리 흘려버리고 가면 좋지 않겠나.
눈이 펑펑 왔으면 좋겠다.
차가 좀 더러워지고, 길이 좀 미끄러워지고, 길이 좀 막히더라도 올 겨울에는 눈이 펑펑 왔으면 좋겠다.
그분 매장에서 부츠가 잘 팔리게.
그분의 삶이 겨울 날씨보다 더 추워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하나님, 저 돈 좀 많이 주세요.
남한테 돈 좀 실컷 줘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