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정중한 글쓰기
< 글이 사람을 쓴다 >
브런치를 하면서부터 나는 내가 쓴 글에게 더욱 정중해졌다.
예전에는 나만을 위하여 글을 썼지만 이제는 누군가 혹시 모를 독자를 생각하며 단어하나, 접속사하나, 마침표하나까지 예의를 지키게 되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무릎이 나온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다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좀 갖춰 입고 나가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가끔 딸아이들이 "아빠, 그건 맞춤법이 틀려"하면
"상관없어" 했지만
이제는 무척 상관이 있어졌다.
글을 쓰다 보면 나의 생각, 경험, 견해들이 다듬어지고 정돈되어 날카로웠던 말들이 둥그런 글이 되곤 한다.
어떤 사람의 글을 묵상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갈지를 예상하는데 그리 어려움이 없다.
정작 작가가 아니라 작가의 글에 매력을 느끼고 영감을 얻게 된다.
위대한 작품은 나이와 시대와 이념을 초월한다.
때로는 한 편의 작은 글이 평생 나를 이끌기도 한다.
말은 공허하다.
그러나 글은 선명하다.
말은 거짓일 때가 있지만
글은 정직하다.
말은 사람이 사라지면 부식되지만
글은 사람이 사라져도 여전히 견고하다.
말은 옮겨갈수록 오염되지만
글은 옮겨갈수록 더욱 신선해진다.
글은 치열한 사람을 좋아하고
여론에 휩쓸리는 사람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갑자기 떠오르는,
윤동주가 그런 사람 아니었을까.
공원묘지에 가보면 각각의 비석마다 각자의 마지막 글이 남아있다.
짧은 비문 하나가 거기에 누운 사람의 오랜 삶을 고스란히 들려줄 때가 있다.
사람은 가도 글은 남는가 보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그 사람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