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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Jan 03. 2025

기 흉

내 폐가 터졌다.

< 기 흉 >   

  


폐가 터졌다.


사람마다 가슴속에 두 개의 공기주머니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터진 것이다.


그 원인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하나의 주머니로 가뿐 호흡을 하며 응급실로 갔다.


대단한 병은 아니지만 즉각적인 치료가 없으면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리 녹록하지 않은 병이다.


허나님께서는 터질 수도 있으니 미리 두 개를 달아주신 것이리라.


처음으로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다.     


2주면 되리라던 입원기간은 폐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까닭에 3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좀 아픈 것은 참겠는데 직장이 걱정이었다.



 하루는 주치의를 불러놓고 내가 말했다.


“사람 몸에는 폐가 두 개지요?”


“예...”


“폐 하나로도 살 수 있나요?”


“살 수는 있습니다. 심한 운동을 못해서 그렇지.”


“그렇다면 내가 좀 바빠서 그러는데 상한 폐가 낳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오늘 잘라내고 꿰맨 후 바로 퇴원 좀 합시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의사가 약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손가락에 상처가 나면 나머지 손가락이 많다고 상한 손가락을 잘라버립니까 아니면 치료해서 다시 씁니까? ”


아마도 그날 의사는 나를 “돌았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잠자코 재활운동만 열심히 했다.     



 얼마 전 큰딸이 내게 물었다.


“아빠는 보수지?”


“아니”


“그럼 진보야?”


“아니”


“그럼 중도?”


“아니”


“그럼 도대체 뭐야? “


“아빠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백수”야^^“



아빠의 이런 대답에 딸아이는 진지한 질문에 말장난한다고 짜증을 냈다.

고3, 이제 정치니 이념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녀석, 다 컸구나 싶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생각은 진보적으로 하되 행동은 보수적으로 하는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이념의 중간이 아니다. 


둘 모두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수만 하자하면 발전이 없고 진보만 하자하면 질서가 없을까 두렵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은 논리와 철학이 아니라 포용과 인정.


퇴원이 아니라 치료가 중요했던 나의 폐처럼.



 어느덧 계절은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간다.


낮에는 덥지만 해 질 무렵이면 산 넘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좋다.


어느 산속 작은 호숫가, 낚싯대나 드리우고 앉아 좋은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나 하면 좋으련만.


고기야 없으면 어떠하리.


맘속에 바람이나 실컷 담아 오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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