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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Jan 03. 2025

눈 온 아침

1월 1일 눈 온 아침

< 눈 온 아침 >   

  


 1월 1일 눈 온 아침.  

   

지난밤, 엄마 같은 눈이 세상을 덮었습니다.


도로가 엉망이라고 걱정들 했지만 베란다 아래 펼쳐진 산책로는 예뻤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지막한 뒷산 산책을 나섰습니다.

등산용 폴까지 챙겨 들고 나섰습니다.


심심한 늦둥이 여섯 살 막내딸이 냉큼 따라붙습니다.

길도 미끄럽고 날씨도 차가워 혼자 가려했지만 “날 좀 데려가 주세요” 하는 애처로운 눈동자를 물리칠 수 없어 장갑을 챙겨 함께 뒷산을 올랐습니다.



 생각보다 눈은 포근했습니다.


눈에도 급수가 있다면 오늘 눈은 최상급입니다.

만져도 차지 않고 밟으면 “뽀드득” 소리를 내는 그런 눈 말입니다.


우리는 금세 산 머리 위에 올라섰습니다.


산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내려가려는데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아빠 우리 눈사람 만들까? “


아이는 누눈가 굴리다만 눈덩이를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굴려 댔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굴렸지만 수박만 한 눈덩이는 좀처럼  쉽게 커지지 않았습니다.


“성은아, 우리 이제 가야 돼”


“아이참, 아빠 잠깐만 기다려”



아이는 신이 나서 굴리고 또 굴렸습니다.

20여분을 기다리다가 그만 가자고 재촉을 했습니다.

내가 먼저 내려가니 아이는 이내 “아빠 같이 가” 하며 뒤따라 뛰어옵니다.


내 곁에 따라붙은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합니다.


“아빠, 눈사람이 외로울까 봐 불쌍해서 내가 발로 부서뜨리고 왔어”


 그랬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뒤돌아본 그 자리에는 깨진 눈덩어리가 덩그러니 누워있었습니다.

굳이 부술 필요까지야...


 갑자기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고 말았습니다.

인생이란 잠시 놀다가는 놀이터 같아서 아무리 소중한 것일지라도 때가 되면 내려놓고 갈 수밖에 없는 거구나.

눈사람을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없는 아이처럼.



 내려가는 길에 막내가 아빠 손을 꼭 잡았습니다.

미끄러우니 놓고 가라 하니 더욱 꼬~옥 몰아쥡니다.


평소 같으면 업어 달라고 하겠지만 저도 상황을 아는 모양인지 보채지는 않습니다.



 나도 나이를 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늙어갈 것이고, 그리고 더는 아이와 함께 갈 수 없을 때도 오겠지요.


“성은아, 이제 아빠는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단다.”


“싫어, 같이 갈래”


“아니야, 아빠는 여기까지만 이야, 이제 혼자 가거라, 아빠 손을 놓아주렴”


“올라온 길 알지? 그리로 곧장 가거라. 누군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무서워도 울지는 말거라. 다 그렇게 사는 거란다. 우리 예쁜 막내, 천국에서 만나자꾸나. 너무 사랑해.”



 막내 손을 잡고 내려오는 내내 나는 왜 자꾸만 이별과 후회만 떠오르고 있었을까요.

너무나 하얀 눈 때문이었을까요.     



성은이가 굴리다 만 깨진 눈사람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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