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길에서 묻는다.
40대 중반에 제2의 직장을 선택했고, 7년 후 권고사직을 당했다. 새로운 도전으로 건설업종 회사의 사무보조, 용역비 청구 등 일명 ‘경리’로 취직했다. 7년이란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기 위해 전임자가 알려주는 팁을 메모, 사진 찍기, 동영상 촬영 등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기록했다. 나를 회사에 소개해 준 지인이 원망 듣지 않도록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과 중압감 때문에 집에 가서도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점심 식사 후에도 곧바로 자리에 앉아서 일을 시작했다. 그해 8월 허리와 아랫배가 살살 아파도 일에 열중하다 보니 괜찮아지겠지 하며 참았다. 병원에 갔더니 신장에 '결석’이 생겼다는 것이다.
9시 출근, 12시 점심, 또 업무 시작, 6시가 지나서 퇴근. 하루 일과의 루틴이다. 업무특성상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단체 카톡방에 문의한 내용에도 답글을 달아 주는 것도 수시로 해야 했다. “모든 일에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라”는 말을 좋아한다.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직원들의 서포터 역할도 했다. 출근 후 사무실보다는 외부 현장업무가 많은 직원들을 위해 사무실과 화장실, 분리수거 등도 기쁨으로 감당했다. 회사의 경영상태가 어려워질 때도 사장도 아닌데도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퇴사 후 2년이 되어 다시 생각해 보니 '오지랖 많은 직원이 선을 넘는 고민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경영이 악화되고, 자녀들의 대학졸업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퇴사 2개월 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병원투어를 하다가 병명을 들었다. 또 신장에 '결석'이 생겼다.
대학 전공과는 무관하게 호기롭게 40대 중반에 사무직 경리로 도전했다가 50대 초반에 퇴사당했다. “40대에는 뭐든 할 수 있으니 좋은 나이야”라고 말했던 선배의 말이 실감 났다. 한 때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유행어처럼 퇴사하면서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50대가 지나서 새로운 직장에 이력서를 넣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력서를 보내도 면접 기회조차 오지 않아서 실망하는 것은 오히려 나았다. 홈페이지에 구인 결과를 공지한 내용에 ‘적격자 없음‘이라고 보는 순간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구인 공고에서 요청한 사항에 최소한의 자격이상이 되어 지원했는데, 도대체 ‘적격자’는 누구란 말인가? 나의 쓸모와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넌, 도대체 뭐 하고 싶니?” 소리쳐 물었지만 대답을 못했다. 대답대신에 그 물음을 회피하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고 말았다.
어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서 꼬박 이틀을 미친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일어나고 싶어도 가위에 눌린 듯 깨어나지 못하는 깊은 꿈을 꾸다가 스무 살의 나를 만났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 ‘플랜 A’가 아닌 ‘플랜 B’를 선택했던 그 갈림길에 섰다.
다시 그 길에서 묻는다. “넌, 뭐가 되고 싶니?”
이제 남은 시간에는 ‘플랜 A’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그 길의 끝에서 다시 ‘플랜 C’로 갈 수도 있지만 이젠 나의 시간을, 나만의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 아가고 싶다고
다시 그 길에서 묻는다. “넌, 뭐가 되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