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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 Dec 30. 2024

(공포영화리뷰4)그릇이 바뀌면 담는 술도 바뀌어야 한다

퍼스트오멘(2024) 리뷰

양심고백 :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고전영화리뉴얼망작5쯤 될 줄 알았음 회개합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바야흐로 고전영화 리뉴얼의 전성시대다. 할리우드에 소재가 고갈된 지 오래라지만 정말 많이 등장한다.


 당장 2000년대 뭇 초중딩들의 마음을 두렵게 한 '오펀 천사의 비밀'부터 공포영화 고전 중의 고전인 '엑소시스트'. 뱀파이어물의 영원한 고전 '노스페라투' 등등... 많은 예전 공포영화들이 리메이크든 속편이든 프리퀄이든 여러 가지 탈을 집어 쓰고 리뉴얼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기세와 달리 대부분의 리뉴얼 공포영화들의 만듦새는 처참하였으니... '오펀 천사의 비밀'의 프리퀄인 '오펀 천사의 탄생'은 물론 '엑소시스트'의 속편인 '엑소시스트 믿는 자' 역시 관객의 믿음을 배신하는 추한 행보를 보였다.


최악의 포스터 짤로 조롱이나 당하는 중... 웃음이라도 줬으니 다행일수도^^

 이런 와중에 고전 공포영화의 한 획을 그었던 '오멘'의 프리퀄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안 되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거기다 이미 리메이크버전 오멘(2006)이 망작의 반열에 들어 있던 터라 기대감은 더욱 낮았다. 2006년 6원 6일 개봉이라는, 10년, 아니 어쩌면 한 1000년에 한 번 올 개봉일 화제성을 등에  업었건만. 가열차게 날려먹었으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웬걸. 뚜껑을 열어 보니 쏘우 저리가라 하는 반전이 있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굉장히 만족스러운 영화가 튀어나온 것이다.


 여타의 영화들이 원작 먹칠이나 할 때 어떻게 이 영화는 차별화될 수 있었을까?


망한 리뉴얼 영화들을 보면 보통 이런 느낌이 든다  하울소피돌려줘


 이야기는 오멘의 데미안이 태어나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톨릭 교회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에 교회 내 일부 세력들은 가톨릭의 권위 향상을 위해 공포의 대상인 적그리스도를 세상에 강림시키고자 한다. 두려운 것이 있으면 사람들이 주님의 존재를 인지하고 의지하리라는 헛된 판단에서.


 한편 주인공은 수녀가 되기 위해 로마에 있는 보육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카를리타라는 괴이한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과거 악마적인 환영에 시달렸던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져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나 이 소녀는 영화 오프닝에서 암시되었던 불길한 존재인 듯하였으니. 바로 6월 6일 6시에 태어난 악마의 아이라는 주장이었다. 교회의 폭주를 막으려다 파문당한 브레넌 신부에게 일련의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그 사실이 진짜인지 확인하고자 보육원의 기록을 몰래 확인하게 되고. 거기서 엄청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까지의 시놉시스를 보아서는 굉장히 무난한 공포영화처럼 느껴진다. 다만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내면과 당시 세속주의로 이행해가는 사회. 카를리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일 등등이 아름다우면서도 불길한 화면 묘사를 통해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편이다.


별다른 대사 없이도 악마적인 불길함을 풍기는 장면. 뻔하지만 멋지지 않나요


 하지만 이 영화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이 이후의 내용이라 생각한다. 카를리타가 666의 아이인 건 맞았지만, 타락한 가톨릭 교회가 표적으로 삼은 666의 아이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주인공이었다.


 그동안 6월 6일 6시생인 여자아이는 수없이 탄생하였으나 대부분 기형으로 인해 죽은 데다, 적그리스도라면 남자여야 한다는(;;)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었다. 가히 사탄이 복상사해도 무리 없을 정도로 쥐어짰음에도 건강한 남자아기를 얻지 못하자, 가톨릭은 기존과 다른 방식을 택한다. 바로 666의 아이 중 건강히 태어난 주인공이 사탄의 아이를 얻도록 하는 유도하는 것.


 어린 시절 끔찍한 환상에 시달렸던 것도. 로마의 보육원에 오게 된 것도. 보육원에 와서 일탈을 했다 기괴한 사고를 겪은 것도... 그의 인생이 모두 의도대로였던 셈이다. 결국 함정에 빠진 주인공은 강제로 끌려가 사탄의 아이를 낳게 된다.


 주인공은 쌍둥이를 낳게 되는데... 그분들 원하던 대로 한 명은 남자아이였다. 이에 가톨릭 교회사람들은 여자애는 대충 불길 속에 엄마랑 같이 버리고 아들만 데려가는, 그야말로 사탄도 울고 갈 남존여비를 보여준다.


 그러나 카를리타가 주인공과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는 데 성공하고, 주인공은 불타는 자리를 뒤로하고 보육원을 떠난다. 한편 남자아이는 순조롭게 명문가의 아기로 들어간다. 우리가 매우 잘 아는 '데미안'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는 가톨릭이 권위를 잃어버린 이유를 지독한 남존여비 사상을 통해 통렬하게 전달한다. 적그리스도가 무조건 남자여야 한다는 사상은 케케묵기 그지없으니. 사회의 흐름에서 왜 도태되었는가를 긴 대사 없이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당장은 교회의 승리로 끝나지만, 말미에 교회에서 버림받은 여자아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비추며 악마의 아이들이 교회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 아이러니함까지 제공한다.


 영화는 이런 일련의 메시지를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능숙하게 풀어낸다. 먼저 리뷰한 바바리안에서 강간범이 얼마나 나쁘며 지하실의 미치광이 남자의 과거가 어땠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데 비하면 훨씬 세련된 전달법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세련된 지점은 따로 있으니. 앞서 제시하였던 '이 영화는 어떤 점이 달랐는가'-다시 말해 고전을 리뉴얼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답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영화가 제시한 비결이란 무엇일까?


 바로 '시대의 변화에 맞춰, 공포의 방향성을 변모시켰다'는 점이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고전은 시간을 이긴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러할까. 적어도 공포영화에서는 아니라 생각한다.


 공포영화의 고전 중의 고전인 히치콕의 '싸이코'를 예시로 들어 보자.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아는 전설적인 씬이 있다. 금발의 백인 여성이 샤워를 하던 도중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는 장면이다. 얼굴을 있는 힘껏 우그러뜨리며 비명을 지르는 여성. 살에 칼을 꽂는 소리. 그리고 배수구를 통해 빠져나가는 피... 당시 관객들 중에서는 졸도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며, 혹자들은 전혀 잔인한 장면이 없음에도 이 영화를 스플래터 영화(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고어영화를 칭하는 단어)로 보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칼이 살에 푹 꽂히는 소리를 과일로 만들던 시절의 이야기이니만큼, 얼마나 두려운 장면이었겠는가. 졸도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똑같이 장면을 상영한다면 어떨까. 관객들이 두려움을 느낄까? 아마 코파면서 볼 듯하다. 그 영화가 등장한 이래 수많은 공포영화가 등장했고 비슷한 장면쯤은 이미 한 트럭은 만들어졌으니.


 비슷한 예로 '엑소시스트'는 어떨까? 녹색 토사물을 뱉으며 온갖 모독적인 말을 뿜어내는 아이의 모습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 아이가 진짜로 사탄에 들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지금 시대에 녹색즙을 뱉어내며 온갖 모독을 저지르는 아이를 상영관에서 보면 감흥이 있을는지. 엑소시스트가 흥한 이래 그런 영화만 수십 트럭은 나오지 않았던가.


 더욱 사실적인 장면, 더 복잡한 플롯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같은 내용을 반복해 보았자 흥미를 느끼기는커녕 지루하기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무작정 진행하는 고전 영화 리뉴얼이 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대는 변했고, 현대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흥미도 변화하였다. 하지만 고전영화를 존중한답시고 흑백영화를 컬러판으로 만든다던지. 배우만 바꾸는 수준으로 만든다던지. 뭐 똑같은 장면 넣어주면 무서워하겠지-하는.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제작하였으니. 관객들이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차라리 리마스터링을 보면 보았지, 왜 굳이 리뉴얼 버전을 봐야 한단 말인가.


 그런 점에서 '퍼스트 오멘'은 영리한 선택을 했다. 무서운 어린아이 정도로는 사람들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데미안의 어머니와 누나들이라는, 기존 시리즈에서 조명받을 일이 없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동시에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임신의 공포'라는 새로운 공포 소재를 가져왔다. 고전의 프리퀄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함과 동시에 전작들과는 차별화되는 공포 요소를 내세운 셈이다.

 

 만약 '퍼스트 오멘'도 데미안이라는 무서운 어린아이를 그대로 내세웠다면. 카를리타라는 무서운 아이가 극을 모조리 휘어잡는 내용으로 전개했다면 '오멘 여자판' 소리나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런 쉽고 안이한 선택지를 고르는 대신 '여성'과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우매하고 웃기는 일인가'라는 주제를 고전영화의 프리퀄에 장렬히 녹여내는 쪽을 택하였다.  유명한 고전영화인 '싸이코'의 리메이크판 영화가 컬러판 소리나 듣고 '캐빈 피버'의 리메이크판이 배우만 바꾼 똑같은 영화라며 혹평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랄지.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못생겼지만 지혜로운 랍비가 있었다. 누군가 그의 외모를 놀림거리로 여기자, 랍비는 그에게 비싼 술을 못생긴 옹기에 넣는 건 아깝지 않으냐. 금과 은으로 된 그릇에 보관하라 하였다. 이에 옳다 여긴 이는 술을 옹기에서 비싼 그릇으로 옮겨 부었으나, 이후 술맛이 변해 못써먹게 되고 만다. 술을 향기룹게 하는 건 못생긴 옹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야기의 교훈은 못생겼다고 차별하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것이겠다만,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금, 은으로 된 그릇이라고 영 못 써먹는 그릇이겠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릇이 바뀌었는데 술은 그대로이니 쉬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시대가 옹기그릇에서 금그릇으로 바뀌었다면, 술을 만드는 사람은 응당 다른 술을 부어야 하는 법이다. 술꾼들의  입맛은 최대한 맞추면서도 쉬거나 변하는 일은 없도록.


 영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총평 : 웰메이드 공포영화. 이거 보고 싶어서 디플 결제했는데 후회 없었다.


P.s.1. :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듯한데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이런 고전 리메이크는 본전치기도 힘들다 생각하는 편인데,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던필 같은 훌륭한 공포영화감독으로 성장하시길 기도해 본다.


P.s.2. : 묘하게 웃긴 부분도 있는 영화. 특히 사탄이 불속에서 울면서 춤추는 장면은 '사탄도 울고 갈 남존여비 ㅋㅋㅋ' 소리가 나오기 충분했다고 본다. 여자애 몇 명이나 낳게 해 줬건만 남자만 찾는 거 보고 징하다고 생각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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