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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한 스푼 Jan 03. 2025

건조기 돌리는 시간에 뭐 하세요?

계획된 우연의 성공 법칙

 일주일에 한 번 느긋한 주말에 빨래를 한다. 일주일치 밀린 빨래를 하면서 비장한 마음을 먹어야 하다니 얼핏 생각해도 우습다. 그중에서도 건조기를 돌리는 시간은 정신을 놓지 말아야 한다. 건조기가 돌아가면서 내는 윙윙거리는 특유의 소음도 귀에 거슬리지만 자칫 다 돌아간 줄도 모르고 딴청을 부리면 통 안에서 엉켜진 채 구겨지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어느 날부터 한 시간 이상 돌아가는 시간에 무엇을 할까 궁리하다가 찾은 것이 일단은 잠자지 않고 깨어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는 왜 이렇게 주말에 잠이 쏟아질까? 아마 그것은 3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면서 출퇴근으로 부족한 잠을 주말에 몰아서 자는 습관이 든 탓이리라. 

 아들이 처음 건조기를 사 오던 5년 전에는 아마도 청소를 했던 것 같다. 역시 집안이 깨끗해야 비로소 가정주부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위안을 삼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부터는 그림을 그렸다. 소소하게 장식미술을 배운 덕분에 십자가에 꽃그림도 그리고 핸드폰 거치대에 작은 캐릭터를 그리면서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딩동댕 알람이 세탁물을 꺼낼 시간을 알려준다. 또 어느 날부터는 저녁을 준비하면서 지지고 볶고 주방에서 바쁘다 보면 건조가 다 끝났다. 이렇게 쓰고 보니 가열차게 열심히 사는 여자로 보인다. 

 돌이켜 보니 내가 이렇게 루틴으로 하루를 보내는 건 아마도 오랜 세월 쌓인 일을 하는 방법이다. 아이들 키우고, 집안일도 하고 직장도 다니려면 몸이 너무 힘에 부친다. 쉼이 있는 삶은 도대체 어떤 복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호사일까 딴 세상 얘기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나도 좀 쉬면서 살면 안 되나?’라는 팔자에 없는 투정을 부려보았자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간수해야 할 책임감은 덕지덕지 어깨에 눌어붙어 있는 걸 어쩌랴!

 성공 마인드셋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한다. 요즘에는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커리어를 몇 번씩 전환해야 하는 일이 필연적이다. 자투리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자투리 시간에 내가 몰두하는 일이 계획된 우연적인 성공에 과연 얼만큼 기여할까? 궁금하다. 그래서 적어도 건조기를 돌리는 시간만큼은 나에 몰두해 보기로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오로지 나에게 집중해보기로 한다. 윙윙거리는 건조기 소리도 잊을 만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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