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의 해
정초에 내리는 눈은 상서로운 눈으로 한 해의 풍년을 알리는 징조라고 한다. 창문 밖으로 바라보이는 공원의 앙상한 고목에도 건물의 지붕들, 주차장의 자동차에 모두 새하얀 눈 이불을 수북하게 덮고 있다. 멀리 바라보이는 광교산도 설산으로 낯선 풍경이다. 년 초에 눈이 내리면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며 만사형통이라고 농사를 짓는 어른들은 좋아하셨다.
정원의 붉게 익은 산수유 열매에도 눈이 내려앉았고, 까치 한 쌍이 차가운 눈 속에 부리를 박은 채 부산스럽게 쪼아 먹고 있다. 2025년, 푸른 뱀의 해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이 특별한 해는 지혜와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많은 이들이 새로운 소망을 품고 있다.
2025년 을사년 우리가 사용해 온 전통 달력은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구성한 60 간지에 기초한다. 하늘의 주기와 땅의 공간을 결합한 것이다. 60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기 때문에, 한 바퀴 순환하면 환갑(還甲) 혹은 회갑(回甲)이라고 하여, 만 60세에 환갑잔치를 한다.
갑자(甲子)년으로 시작하여 계해(癸亥)년으로 마치는 순서 중 올해는 42번째 을사년(乙巳年)이다. 을(乙)은 청색을 상징하며, 사(巳)는 12가지 띠 중 여섯 번째인 뱀이다. 푸른 뱀의 해 ‘청사(靑蛇)의 해'라고도 부른다. 매년 허물을 벗는 뱀은 수호와 재생, 지혜의 상징이며 푸르름을 상징한다.
옛 조상들은 불사(不死)와 영생(永生)의 상징이라 여겼다. 이 때문에 뱀은 죽은 이의 재생을 돕는 무덤의 수호신, 지신(地神)으로도 인식됐다. 종에 따라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은 풍요와 재물을 몰고 오는 가복(家福)의 신으로 여겨져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을 상징한다. 또 지혜와 예언, 끈질긴 생명력 등을 뱀으로 표현한 때도 많다. 불교에서는 뱀이 부처를 보호하는 역할이고, 사찰이나 집을 지키는 뱀은 한 집안의 부를 지켜주는 가신이라고 영물처럼 여겼다고 한다.
사람들은 파충류인 뱀을 무서워하고 싫어한다. 하지만 을사년 푸른 뱀띠해는 단순히 동물의 해를 넘어, 지혜와 풍요를 상징한다. 뱀은 통찰력과 직관력을 상징하며, 푸른색은 생명력과 성장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징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과 함께 지혜로운 선택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을씨년스럽다는 유래는 ‘을사년’
을씨년스럽다는 사전적 의미는 “싸늘하고 스산한 기운이 있다”이다. 여기서 을 씨 년은 1905년 을사년에서 나온 말이다. 요즘처럼 겨울철 추위 탓도 있지만, 대통령 탄핵정국이란 사회적, 심리적 불안정 상태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을씨년스럽다’라는 1905년 ‘을사늑약’ 당시 비통한 분위기를 일컫는 말이다. 날씨나 마음이 쓸쓸하고 스산함을 뜻하는 이 말은 ‘을사년스럽다’였다가, 점점 ‘을씨년스럽다’로 바뀌었다.
새해 벽두부터 찾아온 서설에 온 세상을 깨끗하고 정갈한 수묵화를 그려놓았다. 마음속 묵은 먼지와 권태를 털어내고 새로운 소망을 품어본다. 각자 소망하는 일도 다 잘됐으면 좋겠고 개인의 능력을 공정하게 인정받고 건강하게 올해 한 해 잘 지냈으면 좋겠다.
지난해 말부터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안정한 시국에 제주항공 참사까지 겪으면서 유례없는 답답하고 우울한 연말연시를 보내고 있다. 푸른 뱀의 해 변화와 성장을 이룰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 발전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책을 많이 읽고, 베이비붐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기를 다짐한다. 하루속히 모두가 침울한 마음에서 벗어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평온하고 안전한 사회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