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 질문은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심리상담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냥 하소연하러 간 거였다.
상담사는 조용히 들으면서 질문을 몇 가지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상담사가 아무것도 지적하지 않았는데, 대화가 끝날 무렵 나는 스스로 보게 됐다.
'아, 그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반응한 게 패턴이었구나.' 하고.
상담사가 나를 탓한 게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구조를 보게 된 것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상담사의 질문이 답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좋은 질문은 방향을 열어준다.
나쁜 질문은 방어를 닫게 만든다.
ISO 심사를 처음 배울 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이해한다.
'심사원이 현장에 와서 문제를 찾아내는 사람이구나.'
그런데 그건 반만 맞다.
진짜 심사의 목적은 문제를 입증하는 게 아니다.
조직이 스스로 구조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두 질문을 비교해보자.
"왜 그렇게 처리했어요?"
— 방어가 생긴다. 이유를 설명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뭐였나요?"
— 생각이 열린다.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두 질문 모두 같은 상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방어를 만들고, 후자는 대화를 만든다.
이게 심사 질문의 힘이다.
그리고 이 힘은 조직이 아닌 삶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있다.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둘을 자주 섞는다.
"그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거야." — 이것은 해석이다.
"그 사람이 내 말 중에 두 번 끊었다." —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 팀은 항상 소통이 안 돼." — 이것은 해석이다.
"지난 한 달간 팀 회의에서 내 의견이 채택된 적이 없었다." — 이것은 사실이다.
해석에서 시작하면, 확증하고 싶은 것만 보인다.
'저 사람은 나를 무시해'라고 결론지은 순간, 그 증거만 모이기 시작한다.
사실에서 시작하면 다르다.
'말을 두 번 끊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면, 왜 그랬는지를 열린 자세로 볼 수 있다.
심사의 출발점은 항상 사실이다.
해석은 사실 위에서 조심스럽게 덧붙이는 것이다.
— RISA™ 별이온
이 구분을 일상에 적용하면 꽤 많은 것이 달라진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거야'(해석) 대신 '저 사람이 오늘 두 번 말을 잘랐다'(사실)에서 시작해보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볼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역시 의지가 약해'(해석) 대신 '나는 오늘 계획한 세 가지 중 하나를 못 했다'(사실)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에서 출발하면, 자책 대신 원인을 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