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간을 설득할 수 있을까?

AI 시대, 브랜드 기획자가 의미 있게 AI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 -2-

by 비노

앞서 우리는, 마케터 또는 브랜드 기획자로서 AI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다뤄야 할 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요지는 'AI는 확률에 근거해 모범적 평균을 찾는 존재'이며, 때문에 좋은 의문점과 관점,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AI에게 '일을 잘 시켜야 하는'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케터 그리고 기획자가 하던 일들 중, 분명히 "AI가 더 빠르게 잘하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획자의 역할, 그리고 기획자가 가져야 할 스킬셋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관계적인 것들이 살아남는다


AI-Superpowers-Cogintive-Labour-chart.png 출처 : <AI Superpowers>, Kai-fu Lee


AI 시대 직업의 미래에 대해 분석한 한 중국의 학자는, 최적화된 전문성과 문제 해결 능력, 사회적 협력과 개인화를 축으로 AI가 쉽게 할 수 있는 개인 단위에서의 최적화된 전문성은 AI에게 당장 대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텔레마케터나 영상 진단의학, 고객 응대 콜센터나 초벌 번역가 등이 그러한 위험 지대(Danger Zone)에 속하죠. 개인 단위로 일하지만, 전략 또는 창의성에 기반해 일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나 과학자, 예술가 등은 AI의 성능 발달에 따라 서서히 대체(Slow Creep)되고, 고도로 창의적이고 인간적인 영역만이 살아남을 것이라 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AI 시대에 살아남기 쉽다고 제안하는 영역이, 개인보다는 사회적인 역할이 큰 직업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즉, 관계 속에서의 공감, 그리고 전략을 요구하는 부분에서는 AI를 도구로 성장하게 될 직업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죠. 연구자는 선생님을 예로 들며, 교육 자료를 찾아 만드는 일은 AI가 맡고, 선생님은 학생의 교육 방향이나 인성, 상담과 같은 기능을 유지하는 모델을 제시합니다. 즉, 기술적 효율성은 AI가 맡고, 인간적인 역할은 여전히 인간이 맡는, 인간적 강화(Human Veneer)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연구자는 법률가나 CEO, 마케터(PR Director)를 대체되지 않을 직업이라고 보고 있지만,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입니다. 지금도 법률 관련 AI가 개발되어 있고, 변호사들이 AI에 의존하기 시작했으며, AI 판사나 변호사가 더 공정할 것이라는 기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니 말이죠. 그러나 이는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판사나 변호사가 단순히 법률을 해석해 그에 맞는 결론을 내리는 일이라면 이는 이미 수도 없이 반복된 일이고, 따라서 판례를 학습한 AI는 얼마든지 판사나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변호사나 판사는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맥락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를 설득하고, 주장을 이해하며 타협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까지 쉽게 학습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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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예측으로 유명한 컨설팅 기업 가트너의 예측도 비슷한 결을 공유합니다. 가트너는 AI가 업무를 변화시킬 가능성, 그리고 AI가 업무를 대체할 가능성을 토대로 네 가지 협업의 방식을 제안하는데요, 좌 상단은 AI에 의해 업무가 대부분 대체되고 인간은 감정이나 창의 중심의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 우 상단은 AI로 완전히 대체되는 AI 중심 조직, 좌 하단은 AI가 어시스턴트로서 데이터 기반의 인사이트를 주는 방식, 우 하단은 인간과 AI가 결합해 혁신을 만들어내는 조직을 뜻합니다. 가트너의 분석은 이러한 말로 귀결됩니다. "AI는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지는 않지만, 역할론에 혼란을 가져다줄 것이다. AI로 인한 일의 변화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업무 중심의 변화, 즉 적응력 있고 창의적이며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AI First는 결국 Human First가 이루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최근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송길영 작가도 같은 점을 짚고 있습니다. 작가는 AI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는 더 이상 규모를 이루어 사람을 뽑아 성장시키는 기존의 조직이 아니라, 누구나 AI를 이용해 기본적인 업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소규모로 자유롭게 모여서 서로 필요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새로운 일을 해 나가는 조직이 '경량 문명' 속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려지는 업무 방식은 일종의 Agile 방법론과 유사합니다. 고정적인 조직 체계 대신, 필요에 따라 인력이 모이고 해체되는 유연한 업무 방식을 토대로, 전력으로 일할 사람들이 어디서나 모여 협업을 토대로 일을 완성하는 것이죠.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유연한 업무에 적응하고, 이를 새롭게 구조화하며, 또 당장 시작해 전력으로 스스로를 몰입하고, 빠르게 잊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협업 속에서도 개인의 능력과 함께 친절이라는 인간적 가치를 잃지 않을 때 비로소 지속적인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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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미루어 보면, 마케터나 브랜드 기획자의 일은 결국 인간적인 인사이트를 잘 만들고 이를 설득하는 것에 집중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 하는 방식은 끊임없이 상황과 환경, 직관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이 반복된 패턴의 연장이라면 이는 AI에 의해 쉽게 학습되고 또 대체될 수 있습니다. AI는 어쩌면 우리가 하고 있던 '크리에이티브'의 대부분이 사실은 논리적 형식이자 데이터의 반복이고, 패턴의 조합이라는 사실을 폭로했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거나, 크리에이티브를 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 중, 브랜드를 위한 전략의 핵심 인사이트를 구상해 이를 설득해 내는 일이 한 20%쯤 될 겁니다. 실제 업무의 절반 정도는 인사이트를 내놓기보다는, 데이터를 탐색하고 분석하며 설득을 위한 자료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니어로 갈수록 이 50%의 범위가 늘어나고, 디렉터가 될수록 앞의 20%가 늘어나겠죠. 나머지 30%는 전략과 디자인을 실행하는 일이 될 겁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업무를 살펴본다면, 우리 일의 80%는 AI에 의해 대폭 효율화되거나 심지어는 대체될 수도 있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아직 완벽하게 PPT 보고서를 만들거나, 완벽한 디자인 솔루션을 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과정만큼은 현저히 줄여줄 것이고, 언젠가는 대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결국 어떻게 하면 AI를, 나아가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핵심 인사이트를 더 잘 얻어내고, 이를 잘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AI는 인간을 설득시킬 수 있다? 없다?


제가 속한 브랜드 에이전시뿐만 아니라, 마케팅, 더 나아가 회사라는 조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결국 특정한 방향으로의 움직임을 설득하고, 이를 실행할 것을 촉구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지목한 일의 70%는 사실 그런 설득을 위한 작업에 속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가진 아이디어와 방향을 서로 설득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하고, 또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클라이언트에게 설득해야 하죠. 또, 궁극적으로는 고객을 설득해 우리가 벼려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목표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AI가 이런 설득을 잘할 수 있을까요? 언어적 설득이라는 것만 놓고 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는 AI가 자신의 주장과 관련된 증거 자료를 쉽게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고 설득하는 방법을 이미 학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다면 AI는 아첨이나 답변 유도와 같은 이성적, 감성적 기법들을 모두 동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연구는 음모론 또는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교정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비즈니스 현장에서 100% 통용될 수 있을 것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즈니스 결정 과정은 사람들이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과는 다른 프로세스와 사고방식을 요구하니까요.


또한, 이러한 설득 과정에서 리스크 또한 존재합니다. AI는 설득을 하라는 명령과 학습된 내용에 따른 답변을 내놓을 뿐,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스스로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을 설득할 가능성 또한 존재합니다. 초창기 AI 챗봇이 오히려 음모론이나 욕설 같은 것들을 학습해 버렸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결국에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AI를 작동시키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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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이라는 것을 더 깊이 살펴보면 AI가 어디까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를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그리고 로고스(Logos)로 정의했습니다. 이는 각각 말하는 사람의 신뢰성, 청중의 공감대, 그리고 논리적인 주장을 뜻하죠. 이를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접목한다면 '논리와 전략', '경험과 공감대' 그리고 '합의와 컨센서스'라는 세 요소가 될 것입니다. 브랜드와 고객 보이스를 분석해 논리를 전개하고, 상호 간 크리틱을 통해 전략적 사고를 빌드업하는 것은 로고스, 유저 리서치를 통해 우리가 고객을 경험하고 또 고객에게 공감하며, 그 공감대를 전달하여 함께 공감하도록 만드는 것은 파토스, 그리고 우리에게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합의하고 앞으로 일 할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것은 에토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셋은 어느 하나라도 빠짐없이 중요하며, 어느 하나만 강조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논리로만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도, 현장에만 매달려서 답을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도 없고, 무엇보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프로젝트라는 것은 있기 어렵습니다. 셋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 것이죠.



AI는 인간을 대신해 경험할 수도, 합의할 수도 없다


앞서 AI가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동원하는 것은 일정 부분 논리와 전략(+어느 정도의 전략적 공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브랜드를 기획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그러한 논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브랜드를 ‘경험’으로서 바라본다면 특히 그렇습니다. 브랜드는 더 이상 단순히 로고나 언어적 체계를 세우는 것을 넘어,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경험되는 존재가 되었고, 어떠한 규정에 의한 컨트롤보다 팬덤과의 관계적 공감대로 완성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기업의 활동으로서 도출되는 '브랜드 경험'이 이러한 흐름을 잘 따라잡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화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크리스틴 로젠의 저서 『경험의 멸종』은 인간이 대면하여 얻어왔던 ‘인간다운 경험’이 디지털화되면서 점차 축소되어 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디지털 서비스를 통한 간접 경험이 얼마든지 가능해지고,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쉽고 편안하게 만드는 동안,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의 한계에 대해 간과하고, 공감과 연대, 소통, 기다림과 감정 같은 인간적 요소들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브랜드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브랜드를 ‘경험’으로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경험이 결과적으로 일회적인 희열로만 소모되고 만다면, 그것은 경험이라기보다 잘 설계된 자극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것은 브랜드에 대한 인상보다 피로감이나 무감각뿐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경험의 언어를 쓰지만, 정작 그 안에는 시간과 관계, 맥락이 빠져 있는 셈입니다. 이런 구조 위에 AI가 만들어낸 정교한 시뮬레이션과 카피, 이미지들이 더해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인간적인 경험의 결핍을 메워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매끄럽고 더 빠르게 소비되는, ‘소모 가능한 경험들’의 속도를 높일 위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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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브랜딩, 그리고 마케팅 프로세스의 모든 부분을 AI로 대신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또 우리에게 어떠한 가상 경험에 대해 잘 설명해 주더라도 그것은 학습된 가상일 뿐입니다. 완벽한 방법론이라고 할 순 없지만,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가 가져다준 인간에 대한 관찰과 공감 형성이라는 무기를 AI로 대체하려 할 때, 우리는 현실에서 텍스트가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신호들을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책의 말마따나, "인간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면 시간, 인내, 지루함, 백일몽, 발견에 대한 기대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일상에 머물면서 의외의 장면들을 목격하고, 때로는 가설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다른 가설을 세우며, 때로는 두려움을 안고 결단하는 그 과정 자체가 브랜드 기획의 일부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이해관계자들이 서로의 관점을 조정하며 ‘어떤 해석을 채택할 것인가’를 정해 나갑니다. 이 느리고 번거로운 과정이 빠져버린다면, 남는 것은 그럴듯하지만 공중에 떠 있는 브랜드 담론뿐일 것입니다.


'합의의 프로세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컨센서스가 아닙니다. AI는 수많은 의견과 데이터를 요약하고, 공통분모를 찾아 제안하고, 갈등 지점을 분석하는 데에는 탁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합의’는 아닙니다. 합의란 논리적 중간값을 계산해 내는 일이 아니라, 각자가 포기할 수 없는 지점과 양보할 수 있는 지점을 드러내고, 때로는 상처를 감수하면서 책임을 나누어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브랜드를 둘러싼 의사결정 또한, 서로 다른 조직, 다른 세대, 다른 직무가 각자의 언어로 충돌하고, 회의실 안팎에서 설득하고 설득당하며, “왜 이 브랜드가 지금 여기서 이런 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그것은 합의가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문장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문장에 동의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감정, 책임의 분배이며, 그 프로세스가 평균 바깥의 무언가를 지향하고자 할 때 비로소 우리는 크리에이티브한 팀으로서 일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단순히 텍스트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브랜드와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브랜드의 존재, 우리의 일 그리고 인간적 관계를 설득해야 하는 이들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굳이 AI 때문이 아니라도, 인간으로서 더 좋은 판단을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는 앞서 이야기한 창의적 인사이트를 만들고, 이를 설득해 지속적 관계성을 만드는 일에 20%가 아닌 80% 이상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기술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다는 핑계는 이제 AI가 없애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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