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브랜드 기획자가 의미 있게 AI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 -3-
그렇다면 우리가 기획자로서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설득하기 위해 내놓아야 할 통찰과 이해, 즉 인사이트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무엇이 정답이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오늘날 그런 인사이트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습니다. 굳이 AI 때문이 아니라도, 오늘날 브랜드나 디자인을 넘어 대부분의 영역에서 요구되는 창의성이나 통찰력은 더 이상 어떠한 한 사람의 천재적 사고나 이전 것과 단절된 혁신, 차별화된 역량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특히 우리가 브랜드라는 결과로써 창의성을 판단하기 쉽고, 시장 경쟁 속에서 생존하는 것이 곧 브랜드의 성공이라고 믿기 때문에, 브랜드를 위한 인사이트를 '혁신과 새로움'이라는 결과의 영역에서 바라보게 되기 쉽습니다. 문화학자 새뮤얼 W. 프랭클린은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라는 책을 통해 창의성의 역사와 의미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는 이러한 방식의 ‘창의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창의성이라는 말이 새로움에 집착하게 만들고, 집단보다는 개인의 역량을 강조하게 만들며, 만병통치약이자 누구나 추구해야 하는 가치처럼 여겨지는 동안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인간적인 동기들은 사장되었고, 오직 시장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지식재산권 체계의 가치'만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 책의 요지는 창의성이 잘못되었다거나, 창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창의성을 개인의 역량으로 보고, 차별화된 경쟁 수단 내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능력으로 보는 시각은 사실상 과장에 가깝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실 어떠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이외에도, 세상 속 복잡한 문제들은 체계적인 분석과 방법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이름 아래 '단지 아무도 시도해 본 적 없다는 이유로' 단편적인 해결로 빠지기 쉽다는 점을 책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세계에는 이미 새롭거나, 경쟁 전략에만 매몰된 결과를 내놓고 실패한 사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브랜드에 일종의 충격 요법이 필요하고, 새로운 타겟을 향해 비주얼을 포함한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은 죽어가는 브랜드인 재규어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릅니다. 재규어의 브랜드 리뉴얼을 실제로 그렇게 분석하며 신선한 시도라고 한 사람들도 있었죠. 그러나 정작 이 리뉴얼은 충격적으로 새로울지언정 사람들이 재규어라는 브랜드에 대해 생각하던 본질을 버리고, 브랜드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왔는가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채, 새롭게 존재할 것이라 기대하는 어떤 가상의 사람들을 위한 이미지만을 어필한 사례로 남았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죠.
미국 유통업의 상징이었던 시어스(SEARS) 사례도 살펴봅시다. 시어스가 아마존과 같은 디지털 서비스의 공격에 대응해, 그에 걸맞은 모습으로 바뀌는 건 전략적으로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차별화를 주는 건 아니었고, 이런 브랜드 리뉴얼이 결국 파산을 막진 못했고, 두 브랜드 모두 가진 의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런 결과를 단순히 브랜드 인사이트의 탓만으로 돌릴 순 없겠지만, 새로움과 경쟁력을 위한 노력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님에 주목해야 합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브랜드와 인간이 갖고 있던 관계가 소외된 채 전략만이 남았다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는 이미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모두가 시장 성공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갈 때 얼마나 진부한 결과가 나오는지를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요즘 브랜드가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게 되었다는, ‘Brand Blandification’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현상을 꼬집습니다. 모두가 디자인 과정에서 창의적인 생각과 프로세스를 거친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내놓는 목표(예를 들어, 시장에서의 성공, 디지털 세계에 부합하는 모습, 차별화된 인식 등)는 동일한 자료와 동일한 사고방식을 거치게 되고, 결론적으로는 거의 유사한 결론을 향해 가는 것이죠.
AI 시대에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의도 없이 AI를 활용한다면 AI는 우리가 입력해 온 창의성의 평균만을 무한히 생성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됐을 때 모두가 비슷비슷한 결과물을 받아 들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수준으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평균을 높이는 장점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어떠한 차별화도 이루어질 수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만약 의도와 노력이 1% 정도밖에 들어가 있지 않고, 나머지 99%의 작업을 모두 GPT가 한다면 그것은 과연 구별 가능한 일, 혹은 내가 한 일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들이 'AI SLOP'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종의 자가포식으로서 전체적인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둘 모두 이미 AI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창의성은 결과, 내지는 결과를 만들기 위한 무언가처럼 이야기되지만, 결코 '결과'였던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창의성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과정과 열망에 가까웠습니다. AI 시대에도 이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인사이트와 크리에이티브는 좋은 결과를 목표로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평균 바깥의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창의성에 있어 개인의 역량보다는 과정과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김경일 교수님을 포함해 다수의 인지심리학자들이 짚는 지점입니다.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는 아예 이 주제를 다룬 책이죠. 저자는 창의적인 사람이나 창의적인 능력이 아니라, 창의적인 순간과 창의적인 상황이 있다고 말합니다.
와닿기 쉽도록 예를 들어 봅시다. 공부 또는 업무를 하면서 무언가 만들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경우는 누구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일을 하면서 이전에 했던 것 같은 관성을 느끼고, 또 효율을 생각하느라 이전 일들을 반복하는 것 같이 느낄 때, 또 뭔가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 속에서 답을 내놓지 못하고 계속 생각만 빙글빙글하다가 밤을 지새워 본 적, 그리고 아이디어가 섞이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들을 우리는 많이 겪어 왔습니다. 적어도 이런 상황을 창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근데, 그런 사람조차도 어떤 상황에서는 — 예를 들어, 딴짓을 한다거나, 취미 활동을 한다거나, 하다못해 스포츠 경기를 보는 순간에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를 '잔머리'라고 해 왔고, 일머리와 잔머리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심리학자들은 그런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창조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평균 바깥의 디자인을 해내는 것은, 결국 "디자인하는 일을 얼마나 잘 디자인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프로세스는 이제 사람들 속에서 브랜드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이를 어떤 아이디어로 재구성할지를 찾는 데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단순히 일이 이렇게 되어가기 때문이거나 프로세스가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당위를 넘어, 충분히 의도되어야 합니다.
한 작가는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 속 프로세스를 분석하면서, 최고의 디자인은 결코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것처럼 한 사람의 고뇌 끝에 나온 천재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오지 않으며,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낸 팀의 공통점에는 ‘공통의 이해를 형성하는데 초점을 맞춘 프로세스’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의도적으로 구현해야만 디자인 프로세스가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환경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를 잘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첫째는,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조직된 리서치입니다. 흔히 우리는 브랜드의 현재 위치나 위상을 알아내기 위해 리서치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조직된 리서치는 현황을 분석하거나 아이디어를 팔기 위한 프레임으로 작용하죠. 작가는 디자인을 위한 리서치는 이를 뛰어넘어 사용자와 소비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 가능한 것, 추적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최고의 팀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내용에 리서치를 통해 배운 내용을 적용하는 프로세스를 매우 의도적으로 진행하며, 이를 통해 소비자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전략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연구의 수준으로 데이터를 조직하고 해석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AI를 통해 충분히 세이브할 수 있습니다.
다음 제안은 회의를 디자인하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회의를 한다고 하면, 그냥 모여서 아이디어에 대해 논의하고, 그 다음 과정과 안건을 어떻게 정할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팀은 이러한 회의를 활용해 디자인 기술을 연마하고 공통의 이해를 형성하는 장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회의의 내용을 수집해 함께 공유하는 것 또한 멈추지 않죠. '회의' 뿐만 아니라, 이는 디자인을 위한 모든 소통과 협업의 과정은 이런 식으로 발전해야 하며, AI는 이러한 업무 방식의 수집과 공유를 통해 피드백을 더 용이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디자인에서도 가설을 검증하고 추진력을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Lean한 프로세스에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떠돌고 있지만, 사실 조직 앞에서 이러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 존재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고 싶고, 틀리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생리이고, 그렇다 보면 설익었더라도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을 꺼리게 되지요. 그러나 누구나 빠르게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AI 시대에는 뜸을 들이며 완벽을 기다리기보다는 일단 해보고 검증하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일 수 있습니다.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세스 속에서 전략적 가설을 검증하고 좋은 피드백의 고리를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해질 것입니다.
만들어진 디자인을 크리틱하는 일 또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는 개개인의 직관에 의존해 왔습니다. 특히 기획자라면 디자인을 크리틱하는 데 있어 상당한 부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크리틱의 핵심은 '평가'가 아닌,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이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기획자, 더 나아가 클라이언트와의 제안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는 디자인 크리틱을 통해 팀 전체의 디자인 언어를 향상하는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만든 컨셉 하에서 어떤 것들이 되고, 어떤 것이 안 되는 디자인인지를, 디자인 단계를 넘어 컨셉화 단계, 무드보드 단계, 심지어는 타사에 대한 스터디 단계에서도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쌓아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형성된 강력한 디자인 언어를 통해 디자인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늘 ‘앞단'과 ‘뒷단'을 나누며, 우리의 기획을 디자이너들과 진행하는 한두 번의 전달 프로세스로 이해하고 잘 해석해 주기를 바란다면, 디자인의 의도는 전달과 해석 프로세스 속에서 더 모호해지고 길을 벗어나기 쉽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컨셉의 언어를 다듬는 것처럼, 디자인의 언어 또한 다듬어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AI는 언어적 개념과 시각적 개념 사이를 중재하는 매개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제안은 모두가,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소비자까지 참여하고 공감하는 민주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자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AI가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 도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크리에이티브한 것은 아니며, 그런 방식으로 만족스러운 디자인, 더 나아가 모두가 크리에이티브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는 브랜드를 포함한 디자인의 본질이 비주얼적으로 완벽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넘어 '의도를 구현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AI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 우리들조차, 크리에이티브한 의도의 구현보다는 유행을 따르는 아트 디렉션을 브랜드의 룩으로 만드는 상황을 많이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디자인은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그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죠.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막고, 컨셉이 온전히 구현된 브랜드와 디자인을 완성하려면 결국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개개인의 리더십을 되찾아야 합니다. '의도'에 대해 '결심'하고, 그 의도가 잘 구현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우리 스스로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기획자와 디자이너 모두에게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기획자는 브랜드에 대한 아이디어와 전략이 시각화할 수 있는 길을 여러 가지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컨셉과 브랜드의 뼈대를 만드는 제안은 개념적이고 추상적이기보다는 전략적이고 직관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브랜드가 어떠한 목표를 향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면 그 브랜드는 바로 설 수 없을 것이고, 시각적 요소로 정제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생성형 AI는 이러한 방향에 있어 훌륭한 검증의 모델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전략을 AI에게 만들어 보라고 시도해 보세요. AI에게 어렵다면, 그 누구에게도 쉬울 수 없습니다.
디자이너들에게도 요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브랜드가 흔히 로고 또는 로고타입으로 이루어지기 쉽지만, 그에 대한 스터디에 앞서 컨셉을 디자인 언어로 정제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컨셉 단계에서 만드는 무드보드가 이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지만, 혹자는 무드보드의 경우 디자이너와 기획자, 심지어는 클라이언트가 이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건축과 달리 실질적인 디자인은 유사한 형태의 무언가일 것임에도 클라이언트에게 예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실제 구현된 초안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제안자는 말합니다. 이를 빠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들 또한 전략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솔루션을 항상 갖추어 놓고 있어야겠죠.
결국, 의미 있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경험과 방향성을 공유하고, 크리에이티브한 프로세스를 통해 브랜드가 지녀야 할 핵심요소를 직관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내부 업무 과정뿐만 아니라 외부 설득 과정에서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직무를 이유로, 혹은 스킬셋을 이유로 입에 올려 왔던 핑계들을 AI가 없애버린 만큼, 우리는 개개인에게서 공전하는 생각을 멈추고 개개인의 상상력과 직관을 한 데 모아 새로운 스파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AI 시대 속에서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리더십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