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보고서의 함정

'보고'도 커뮤니케이션이다. 당연히 일방적인 대화가 되어선 안된다

by 비노

작년 언저리에, 국내 최고 대기업의 보고 관행을 두고 한 사람이 아주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며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보고서”라는 키워드를 들으면 대략 어떤 이야기였는지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가장 앞선 기술과 첨단을 다투어야 하는 기업에서, 기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임원이 내용을 쉽게 풀어쓰기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문제 제기에서부터,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상식적인 기술 용어조차 풀어서 쓰는 데 시간이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보고의 논지까지 왜곡되어 결과적으로는 의사 결정 과정 자체가 비틀어진다는 구체적인 증언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이러한 일이 그 대기업만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보고서는 누구나 한 번쯤 쓰게 되고, 그때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흔하게 나옵니다. 제안이나 내부 보고를 자주 겪는 사람에게는, 보고서 속 논리를 쉽게 다듬고, 그 자리에 있는 누구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과 방향, 전략과 그 근거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벼려내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제처럼 주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보고서가 전달해야 할 전략이나 리서치 결과, 아이디어와 크리에이티브보다 ‘보고서 자체를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됩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더 쉽고 짧게” 만들기 위해 끝없이 수정하다 보면, 정작 사업의 본질적인 문제를 검토하고 개선할 시간은 줄어듭니다. 그런 요청에 시달리다 보면 일은 전혀 진척되지 않고, 어느 순간 스스로가 도대체 기업의 리더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초등학생을 상대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되는 순간까지 찾아오곤 합니다.



도대체 이 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저 역시 에이전시에서 오래 일하면서 이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특히 상향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한국 기업의 특성상, 보고서의 논지와 근거를 가급적 마찰 없이 이해시키는 일은 원활한 의사결정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처럼 여겨집니다.


어떤 일화 하나가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 경영자가 기술자에게 보고를 받는 중이었는데, 기술자가 화려한 기술 용어를 사용해 가며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가자, 그를 잠시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정말 훌륭한 기술자라면, 기술을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출처는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흔히 알려진 그 격언,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에서 파생된 형태일 것입니다.


이 격언은 흔히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가 한 말로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유명인에게 자주 덧씌워지는 숱한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 말의 원천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 경의 말로 알려진 이 말일 것입니다.


“물리 법칙은 술집의 여성 바텐더에게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 이론이나 학문적 통찰이 전문가끼리만 통하는 난해한 은어가 되어서는 안 되며, 평범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 설명으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 역시 이러한 생각에 동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그 발자취를 따라 “가능한 한 단순한 표현”을 추구하며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이 있고, 복잡한 물리학을 쉽게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평생을 고민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리처드 파인만의 일화도 떠오르는데, 막상 리처드 파인만의 격언 또한 잘못 오해되는 경우가 많고, 그가 다룬 개념들은 결코 '신입생 레벨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은 것을 보면, 사실 이러한 이야기의 핵심은 설명 그 자체가 아닌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파인만은 분명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해 왔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요.


분명,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복잡한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은 분명 전문성의 일부입니다. 어려운 개념을 비유와 예시를 통해 차분히 설명하는 능력은 좋은 선생님, 교수자, 연구자, 실무 전문가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맥락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의 수준에 맞게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의 지식 역량과 지적 수준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설명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상대 입장에서 다듬을 수 있는 배려와 메타인지를 모두 포함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말이 처음부터 경영자나 컨설턴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단순한 설명을 향한 추구는, 인간의 지식을 넓히고 퍼뜨리는 최전선에 서 있는 학자와 교수들, 그리고 어려운 개념을 다루는 코딩·암호화폐 커뮤니티, 스타트업들에서 먼저 강조되었습니다. 영미권 인터넷 문화에서 널리 쓰이는 “Explain Like I’m 5(ELI5)”, “할머니에게 설명하듯 말해 보라(Grandmother’s Explanation)” 같은 표현은, 내가 알고 있는 고도의 지식을 가능한 더 많은 사람들, 즉 대중과 나누고 설득해 함께 참여시키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자세로 자리 잡은 개념입니다.



조직 내에서 왜곡되는 '쉬운 보고서'의 의미


문제는 이 말이 회사 안에서 쓰일 때 전혀 다른 의미와 압박으로 작동한다는 데 있습니다. 회사 안에서 이런 말은 재무에 정통한 CEO, 사업을 오래 한 임원, 혹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 의해 나오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일종의 권력관계가 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보고서"라는 말은 아래의 의미가 됩니다.


“나는 복잡한 기술이나 도메인 지식을 깊이 공부할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또, 어려운 말이나 전문용어, 그래프에 속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당신이 내가 빠르게 이해하고 의사결정할 수 있을 만큼 잘 정리해 보고해 달라.”


사실 이런 요구 속에는 몇 가지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나는 복잡한 기술에 대한 사전 지식을 넓힐 만한 시간이 없다.

나는 어려운 말과 기술 용어와 핵심 주장 및 전략을 구분해 낼 여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권, 의사결정의 책임은 오직 나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단순하고 직관적인 설명만 보고 판단하고 싶다.


이러한 요구는 다소 불합리해 보이지만,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의 것은 아닙니다. 사전 지식이 풍부한 실무형 인재가 의사결정권자가 되면 좋겠지만, 현실 속 조직은 그만큼 단순하지도 않을뿐더러, 기업 관행 상 기술직보다는 전략이나 재무 경력을 지닌 경영진의 파워가 더 강한 경우가 많이 않습니다. 경영진의 역할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뤄야 할 의제는 넓은 데다가, 기술과 전략은 점점 첨단을 달리고 있는데, 그 모든 영역을 전문가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의사결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기술과 전략, 근거의 핵심을 쉽게 짚어주는 일은 어느 정도 필요해집니다.


문제는 이 요구가 일방적인 권력의 언어로 사용될 때입니다. 설명을 듣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이해를 넓히거나, 상대방의 관점과 전문성 그리고 판단력을 인정하며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 대신, “나는 원래 기술을 모른다”, "하지만 결정은 전적으로 내가 한다"는 폐쇄적 위치에 머무르면서 모든 번역과 단순화의 부담을 아래로 떠넘길 때, “쉬운 설명”은 더 이상 지식 공유나 쉬운 의사결정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지시와 통제의 언어가 됩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앞서 언급된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을 묘사한 을 일종의 예시로 살펴보겠습니다. 글의 내용을 전부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해당 글에서 보이는 문제의 핵심은 복잡한 보고 체계와 경직된 권력관계가 보고 과정에서 실체적인 문제의식을 왜곡시킨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보고라는 것은 현장의 실무자가 데이터를 만들고, 기술적·사업적 판단을 정리해서 올리면, 중간 관리자가 이를 정리해 의사결정권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의사결정권자가 이를 보고받는 형식일 것입니다. 즉, 일종의 필터를 거치는 것이죠. 문제는 두 가지 방향에서 발생합니다.


조직 구조가 거대해지고 보고 체계가 복잡해질수록, 메시지 사이의 필터는 늘어납니다.

조직이 수직적이고 권위적일수록 이 필터는 윗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이런 식의 필터링이 반복되는 순간, 보고서의 목적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서 조직에 덜 위험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뀝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되는 '쉽게'는 더 이상 이해와 의사결정을 돕기 위한 단순화가 아닙니다. 수정의 방향 또한 '방향성과 논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아닌, '윗사람이 오해하지 않고 빠르게 넘어갈 수 있는 보고'로 변질됩니다. 그러니, 방향성에 대한 판단을 위해 충분한 설명을 해 주어야 할 기술은 생략하거나 비유해야 할 무언가가 되어버리고,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진단은 눈치를 보는 과정에서 흐려지며 문제의식 자체가 증발해 버리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이런 일을 윗선에서 진심으로 기대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고 문화가 이렇게 되는 데에는 기술과 의견에 대한 이해와 경청, 기술자 등 보고자에 대한 신뢰 그리고 권한과 책임, 기여의 분배 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지위와 결정권, 그리고 그를 통한 성과만을 홀드하고 있는 윗선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수직적인 책임 분산의 구조,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으로 보는 것이 아닌, 문제를 문제로 보는 시선을 만들고, 중간 관리자가 보고를 수정하는 방식 또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적절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서 점차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고서는 쉬워지지도, 진실에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문장 덩어리가 됩니다.



보고의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래서 무엇을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


본질적인 질문을 해 봅시다. 우리는 왜 이렇게 공들여 보고서를 쓰고, 귀찮게 보고를 할까요? 보고 과정에서 오는 다양한 질책과 지시, 사내 정치, 설득에 실패하고 왜곡되는 내용에 대한 좌절감 등으로 가리워지기 쉽지만, 보고에 대해 이야기해 온 많은 사람들이 짚어 온 '설득', '정보 전달', '의사결정', '상대방 입장에서의 전달' 등의 이야기는 사실 일반적인 대화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나 취해야 하는 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보고라는 것이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이 가장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마련한 수단이며, 보고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보고 또한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대화에서조차 어느 일방이 자기 할 말만 한다던가, 어려운 말을 한다던가, 권위에 기대 말을 억누르는 등 일방적인 대화를 한다면 그 대화로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고, 결론도 나오지 않고, 결과적으로는 말도 섞기 싫어지겠죠. 보고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위에서 말했듯, 이러한 기본적인 지점들이 조직 내에서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수준은 기업의 의사결정 품질과 직결됩니다. 의사결정은 관련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공유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소통이 원활한 조직은 문제에 대한 현장의 정보와 다양한 관점이 의사결정자에게 잘 전달되어 더 나은 판단을 내림은 물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구성원의 정렬(alignment)을 돕고, 피드백과 협력을 촉진하여 궁극적으로 더 효과적인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고 보고합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 등은 연구를 통해,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된 소통 환경에서 구성원들이 문제점을 숨기지 않고 제기할 때, 조직이 실패를 예방하거나 신속히 대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반대로 윗선에 아무도 쓴소리를 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수정되지 못하고 결국 조직을 위기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내부 결정을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면 실행 단계에서 혼선과 불신이 생겨 결정 자체의 효과가 반감됩니다.


따라서, 보고의 목적을 우리는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보면, 핵심은 의사 결정 자체가 아닌 이해 당사자 간의 상호 이해일 것입니다. 즉, 단순히 의사 결정을 위해 보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고자와 의사결정권자가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좋은 의사 결정을 내리며 행동하기 위해' 보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보고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실질적으로 보고서를 만들기 시작한 실무자와 그리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전할 말 한 가지씩을 남기고자 합니다.



실무자에게 - Thinking하지 말고, Telling하라


오랫동안 보고서와 제안서를 만들고, 타인이 만든 그런 자료 또한 어느 정도 바라보게 된 입장에서, 보고서를 망치는 가장 쉬운 길은 부정적 피드백을 두려워한 나머지 보고서에 과도하게 많은 생각이나 논지를 투입하는 것 (Overthinking)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설득 논리를 찾느라 과도하게 시간을 잡아먹는다던가, 여러 이야기를 한꺼번에 밀어 넣기 위해 애쓰다 결국 논리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리거나, 혹은 논리를 뒷받침할 배경이나 사례, 관련 자료를 과도하게 많이 투입한다던가 하는 일은 읽기 어려운 보고서를 만들어 냅니다.


대부분의 경우, 보고서를 가장 말단에서 작성하는 실무자가, 여러 겹의 중간관리자는커녕 최상단의 의사결정권자가 어떤 수준의 보고를 원하며, 어떤 포인트를 알고 싶어 하는지, 어떤 업무 스타일과 관심사를 갖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보고서를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처음 보고서를 쓰게 된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면 보고서를 완성도 있게 쓸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보다는, 보고서의 핵심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라는 것을 제안하는 편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 즉 매우 바쁘고 제한된 시간을 지닌 의사결정권자가 "이 보고를 통해 무엇을 결정해야 하고, 무엇을 근거로 판단해야 하는지" 빠르게 파악하고 이해하게 하는 것이니까요.


이미 세상에는 그러한 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실로 다양한 기법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보고서 첫머리에 결론을 먼저 기술하는 'BLUF(Bottom Line Up Front)'라든지, 'MECE하게 정리하라'는 기법 같은 것들은 결국 논리의 가지를 치고 핵심을 가장 먼저 보여주겠다는 목표를 가진 행동들입니다. 보고서 전체의 경로를 그려내기 위해 애쓰기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를 먼저 세워놓고 나머지는 뒷받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시작 단계에서 그런 전략적 목표를 잘 세워놓더라도, 보고서를 쓰다 보면 이런저런 고민 끝에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피드백 (혹은 지적)을 두려워하는 본능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논리와 결론이 빈약해 보일까 봐 일종의 위장을 가하는 것이죠.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지점이 보고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해 보겠습니다. 보고서에서 어떤 내용을 덜어내는 것이 더 쉬울까요, 혹은 부족한 내용을 찾아 더하는 것이 더 쉬울까요? 개인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제 경험으로는 부족한 내용을 찾아 더하는 것이 어떤 내용을 덜어내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쉬웠습니다. 이는 글을 쓰는 사람 안에 있는 불안감이 보고서를 쓸 때도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안함에 이런저런 내용들과 비유들, 전문 용어들을 모두 넣어놓고 나면 그것이 마치 핵심인 것처럼 여겨지고, 여기서 일점 일획을 떼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보고서에 대한 피드백에, 이걸 빼면 논리가 큰일 날 것처럼 반응했던 철없던 시절이 있기도 했죠.


보고서를 쉽게 쓴다는 것은 최소한의 보고서를 쓰라거나, 결론만 있는 채로 얕은 보고서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결론까지 가는 최적의 길,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최적의 설명을 붙이는 것에 가깝습니다. 좋은 설명은 탄탄한 논리 구조와 가정, 리스크, 대안을 전달하면서도, 이를 반드시 필요한 만큼의 배경과 기술적 설명으로 단순하게 풀어냅니다. 즉, 다른 것들은 덜어내더라도, 논리 구조와 가정, 리스크, 대안은 제대로 살아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내용을 멋지게 보이려는 추상적 언어, '비유'나 '쉬움'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전문용어를 해석하려 애쓰다 과정이 실종되는 보고서가 아닌, '하고 싶은 말을 구체적으로 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업무 효율성 제고를 위한 프로세스 혁신이 필요하다"라는 말보다는 "보고 절차를 간소화하여 한 건당 결재 소요 시간을 50% 단축해야 한다"처럼 수치와 행동이 드러나는 문장이 이해하기 쉽고 임팩트 있습니다


또한, 보고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에 대한 요약 없이 머릿속에서만 구조를 굴리며 망설이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는 연습을 하세요. 결정권자는 보고서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자고 하는지"를 가장 알고 싶어 한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논리적인 완결성에 집착해 정작 메시지가 흐려지는 실수를 피하고, 결론에 대한 명확성을 최우선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면 상사에게도 "일 잘한다"는 평을 듣게 될 것입니다. 세간에 등장해 있는 One Page Proposal 등의 방식은 이러한 줄기를 트레이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니어에게 - 보고는 결국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들에게 건넬 이야기는 다소 치기어린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보고서를 쓰는 주니어 입장은 이미 제가 여러 차례 겪어온 것이기 때문에 경험에 따른 말을 할 수 있지만, 보고를 받는 일은 그리 많이 해 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거대한 조직 구조 하에서 일어나는 결정이라는 것을 저는 당분간은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 왔던 외부 시각에서 아쉬운 소리를 좀 하자면 이렇습니다.


하루에 여러 차례의 보고를 받는 사람에게, 그리고 결정권이라는 일종의 힘을 가진 사람에게는 잊히기 쉬운 이야기이고, 그러한 영향력이 사람과 직위를 거치면서 거의 물 흐르듯 흐르는 조직적 구조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들이 간과되기 쉽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결국 보고란 것은 어떠한 의사결정을 위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듣는 자와 말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있듯, 보고를 받는 의사결정권자, 즉 상사의 역할 또한 있을 것입니다.


종종 상사들은 부하 직원에게 "좀 쉽게 써봐" 혹은 "한눈에 들어오게 만들어"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시간적 비용을 절약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사람이 전지전능할 수 없는 이상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을 것이며, 자신이 최종 보고자로서 어떠한 상황을 보고하고 결정을 유도해야 하는 데 따르는 책임 또한 막중하다는 점, 정치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원활한 결론을 이끌고 오판의 가능성을 줄인다는 의미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쉬움'의 추구가 피상적 단순화나 문제의식의 약화를 의미하게 되기도 합니다. 즉, 보고서를 더 쉽게 만들라는 요구가 자칫 핵심 메시지를 희석시키거나 중요한 문제를 왜곡하도록 압박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부하 직원에게 이해를 위한 단순화를 요청할 때에는,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나 사실관계는 그대로 유지되도록 해야 합니다. 중요한 수치나 사실, 문제의 심각성이 빠지지 않은 상태로 더 명료한 표현을 찾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에 대한 보고가 너무 기술적으로 느껴진다면 "핵심 원인 A, 결과 B를 간단히 정리해 줘"라고 하되, A와 B 자체를 빼버리라고 지시해서는 안 됩니다. 내용의 핵심은 존중하고 유지하면서 형식과 표현을 다듬는 것이 "쉬운 보고서"의 올바른 접근입니다.


보고자가 가진 전문성을 존중하는 자세 또한 필요합니다. 보고자는 그 주제에 대해 나름의 조사와 분석을 거친 현장 전문가일 수 있습니다. 단지 보고서 작성 경험이 적거나 표현이 서투를 뿐이지, 내용 자체는 의미 있는 통찰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상사라 하더라도 해당 이슈를 모두 속속들이 알지는 못할 수 있으므로, 보고자가 강조하는 부분에 대해 가벼이 여기지 말고 경청해야 합니다. 보고자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보고자는 위축되어 문제의식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게 되고 조직은 중요한 신호를 놓칠 수 있습니다.


보고가 잘 안 이루어지면 흔히 보고자의 잘못으로 치부되지만, 사실 보고를 받는 사람의 책임도 크게 작용합니다. 상사가 정말로 이해하기 쉽게 보고 받고 싶다면,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소통에 참여해야 합니다. 보고를 받을 때 단순히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써와"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지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피드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 말하는 X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줄래?", "이 그래프에서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가 무엇인지 추가해 줘" 같이 세부적인 피드백과 질문을 하면 보고자는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고, 상사도 원하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질문 중심의 피드백 문화는 보고의 품질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은 쌍방의 책임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보고 내용이 어렵다면 상사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 설명을 요청하거나 토론을 통해 함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보고자가 모든 내용을 100% 완벽히 전달하도록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수신자인 본인이 100% 이해하도록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보고의 형식이나 템플릿을 제시하여 가이드라인을 주거나, 사전 브리핑 시간을 가져 궁금증을 해소할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이해가 안 되면 상사가 더 물어보고, 개선을 도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보고자를 성장시키는 코칭이기도 하며, 결과적으로 더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을 이끌어냅니다.


요약하면, 의사결정권자는 "쉬운 보고서"를 원할 때 내용의 깊이와 의미는 그대로 두고 표현의 명확성과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피드백해야 합니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함께 해결하고, 보고자를 단순히 글 솜씨로 평가하기보다 전달하려는 뜻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보고받는 사람의 경청과 질문, 피드백이 동반될 때 보고자는 더욱 핵심에 집중하고 메시지를 다듬게 되며, 보고 커뮤니케이션의 책임이 자연스럽게 양쪽에 균형 있게 분담됩니다.





보고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은 보고자와 수신자 모두가 "같은 문제를, 같은 방향에서, 같은 언어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보고자는 상사의 관점과 조직의 목표를 고려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조율하고, 상사는 보고자의 입장과 전문성을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로 대응할 때 비로소 서로 인식의 교집합이 생깁니다. 결국 조직에서 모두가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뛰고 있을 때, 보고는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으로써 합의된 이해를 이끌어내는 힘을 발휘합니다. 보고를 단순한 업무가 아닌 협력과 합의를 위한 대화로 인식한다면, 보고자와 의사결정권자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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