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리 하나 두른, 감정과의 산책
글을 쓰기 전, 목젖 밑에서 출렁이는 감정의 물결을 느끼는 순간이 좋다. 그 차고 찬 격렬함을 글로 풀어내면 평소보다 짧은 시간에 하나의 글이 완성되곤 했다. 요즘엔 일부러 이런 마음을 만들기 위해 추운 겨울, 목도리를 두르고 다양한 감정들과의 산책을 하곤 한다. 챠크라같이 감정이 시각화되어 느껴질 때가 있다. 뱃속부터 위로 진하게 솟구친다거나, 햇살처럼 위에서 아래로 잔잔히 내려 온다거나, 바다에서 노는데 뒤에서 크게 덮치는 파도 같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
대부분은 평온한 수평선같은 감정들이 하루를 차지한다. 오늘은 쓰디쓴 맛이 필요했던 시점에 마침 이디야에서 사먹은 아메리카노가 맛있어 감사했다. 반면, 눈 앞에서 20분 배차간격의 6640A 버스를 놓쳤을 때의 허무함도 잠깐. 어젠 크리스마스 이브로, 연말 번개모임에서 친구들과 고단한 하루를 시끌벅적하게 나누며 느꼈던 따스한 소중함이 있었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런 하루하루의 소소한 감정들은 특별히 집중해서 느낄 필요가 없다. 사람은 보통 아무 일이 없을 땐, 멈추지 않는다. 수평은 달리기 편하다.
그러나 감정에 매몰되어 현재에 가장 집중하며 모든게 느려질 때는 대개 상실을 마주할 때다. 갑자기 이별노래 가사가 마음 속 폐허 안에서 묘비명을 만들어 내고, 색이 바래진 미래에 다시 색칠을 하는 것 또한 상상하기가 벅차다. 코르티솔 호르몬을 변명 삼아 하루하루의 붓칠은 내려놓고 잠에 기대보기도 했다. 최근 내게 주어진 이별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나를 방황하게 하고,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퇴행시키기도 한다. 이별을 즐기라는데, 한껏 즐겨보기엔 참 질긴 감정의 회오리다. 여전히 이별에서 파생된 감정은 내 산책을 따라오지 않았으면 하나 그 감정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니 할 수 있으면 조용히 따라오라고만 눈짓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나의 MBTI 뒤의 두 글자는 FP이나, 가끔 사람들에게 TJ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F임이 드러날 때는 상대를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람의 아픈 속내를 알아갔을 때다. 항상 그 시점에서 시작된 사랑이었다.
그래서, " 날 사랑하게 될 것 같아?" 라고 질문해주었던 그 친구가 고마웠다. 입 안에서 돌돌 굴러가는 형태소마저도 어여쁜 사랑이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는 것이 어렵다는 걸 그 친구도 아나보다 짐작이 됐던 시점이었다. 단어 하나조차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다른 것은 어떠하랴. 그 질문을 출근 길 버스 안에서 봤을 때 배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일 년 반 동안 그 친구의 많은 것을 사랑하게 됐다. 어쩌면 독불장군 같은 태도, 명확한 생각,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 책을 사랑하는 습관 등 외형적으로는 '멋있다'라는 감정에서 끝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랑한 것은 대개 그 친구가 감추고 싶어하는 모습들이었다. 나는 그 친구의 바닥을 좋아했다. 잘 흘리진 않았지만, 그 친구의 눈물을 연모했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서, 아무 연결이 없는 땅에서 홀로 성공해내고 증명해내야 했던 삶의 흔적을 보고 '이렇게 잘 커주었네'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잃은 게 많았을 삶이었다. 부모님께 보답을 해야 하는 강박이 컸었던 그 친구를 보며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쉽지 않은 내면의 이야기를 곁에서 들어오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던 순간에 너무나도 여린 마음과 그걸 지키려고 세게 내뱉는 일관되지 않은 말의 크기가 또 부단히 마음이 아팠다. 행복은 줬다 뺏기는 것 같아. 그래서 행복하면 안 되는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그에게 뺏겨도 뺏겨도 계속 생겨나는 무한한 행복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 친구의 목표는 '부'로 성공한 삶이었지만, 술에 취하면 내게 본인의 행복은 "코인 노래방, 좋아하는 사람과의 아침, 주말 넷플릭스와 술 한잔" 이라는 아주 작은 일상을 말하곤 했다. 다시 알코올이 몸에서 증발된 후에는 증명해야 할 삶의 무게를 번번히 마주하면서.
진짜 원하고 있는 것과, 원해야만 하는 것을 동시에 이루고 싶어 했던 그 친구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내가 좀 더 단단했다면 용기와 확신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어느새 애닳은 마음이 그 친구로 하여금 나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답의 연속 속에서
가끔 나는 더 건드려보기도 했다. 제발, 그냥 말을 해. 어떤 게 힘들다고. 머금고 있는 것만이 답이 아님에도 내가 봤을 때 그 친구는 계속 오답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시점을 지나니, 나 또한 그 친구에게 오답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같이 행복하자고 했던 우리의 다짐은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주문으로 일순간 바뀌었다. 그 친구가 원하고 있던 삶과, 배우자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그간의 많은 대화 속에서 너무 알게 되었기 때문에 붙잡는 말을 하면서도, 그 이면의 해결방안이 무색해 끝없이 삼키게 된 말들로 뱃속 허기짐을 대신 채웠다. 당장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기에, 정답도 오답도 낼 수 없었다. 빈 답안지를 제출해 A+을 받았다는 전설적인 철학 수업이 오늘이었다면 어떨까 했다. 한 달 눈물의 무게는 5kg 이었다. 빠진 체중만큼 슬픔도 사라졌다면 좋았을텐데. 질량 보존의 법칙인지, 미해결 감정들은 오히려 내 안에 더 무겁게 자리 잡는다.
상실이 아닌 얻은 것들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화가 마무리지어질 때마다 "제발 너도 행복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너의 한 모습이 불행하게 보인다. 연민이 사랑의 기반 감정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그래서 난 아직도 너를 너무 사랑한다. 이별 후 우리가 얻은 것들만을 떠올리고 싶은데, 계속 잃어버린 상실이 뭉실뭉실 올라온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쌓아온 자양분들로 언젠가 다시 나아가길 바란다. 헤어진 후 한 달 동안, 우리는 여전히 다시 만날 용기와, 헤어질 용기도 없는 줄다리기를 했다. 술에 취해 습관처럼 찾던 전화의 불투명함 속에선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과 보고싶다는 말로 대화를 채우기도 했다. 참 모자르고 모진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