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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by 차주도

주목 朱木 (2005.7.7~2024.10.3)


풀숲에 함초롬히 이슬 머금은
작은 나무를 기억 記憶한다.
너무 당당해서 틘 세상을 보는 듯하여
지나칠 때마다 듬뿍 물을 주어
어느덧 서로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었다.
태백산의 정기 精氣를 가슴에 품고 보란 듯이
영험 靈驗한 기 氣를 받기 위해 오르는 무당 巫堂들에게도 자랑하고
눈길에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게도 연신 자랑하니

사진 찍는 명소 名所가 되어 흐뭇하더라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하여

언제나 영원 永遠할 줄 알았던 너를 두고
세상사 일에 끼어 놀다 보니
기쁨보다 슬픔의 자리가 커져서
잠시, 가을의 쓸쓸함을 달래려고 풀숲을 찾았더니 없어졌더라
너무 놀라 자세히 발로 비비고
손으로 뒤적이다 보니
베어졌더라
베어졌더라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던 네가
풀숲에 함초롬히 이슬 머금은 네가
베어졌더라.


시작 노트

눈이 수북이 쌓인 태백산을 오르다 보면
주목 朱木을 발견한다
고목 枯木이면서도 생명 生命이 깃든
신비 神秘가
영험 靈驗한 분위기에 휩싸이며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세월 歲月 앞에 머리를 숙인다

주목 朱木처럼 붉은 시절 時節
영원 永遠을 약속하며
술잔을 나누던 친구는
힘 떨어지자 변명 辯明 아닌 변명 辯明으로
30년 정 情을 떼고
적잖이 신경 쓴 일본인 동생도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에 불통 不通되고
남은 사람 숫자 세며 안달하는 요즘
허전한 마음 달래러 간 그 자리
풀숲에서 사라진 주목 朱木이 그리워
사진 한 장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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