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이런 모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참 재미있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알게 되었던 인연인데 각자 다른 방향으로 삶이 달라져도 계속 만남이 이어지는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한 명은 저와 같은 ADHD 남편과 결혼을 하였고(수진), 한 명은 본인이 ADHD인 사람(진경)입니다. 모두 저의 남편과 같은 ‘주의력결핍형’ ADHD입니다.
ADHD와 비 ADHD와의 결혼 및 가정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 명 모두 ADHD와 그 배우자 사이에서 소름 끼치는 공통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진경 : 내가 있지, 자면서 ‘아 그래, 나 정말 오늘 일 많이 했다. 진경아 수고했다.’ 하고 자는데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진경아, 네가 대체 뭘 그렇게 많이 했다고 그러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더라니까? 둘에게 묻고 싶은데 남편들도 그럴 때 있어?
라고 진경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수진이가 대답합니다.
수진 : 우리 남편도 그래. 수육하나 하면 오늘 하루 뭔가 엄청 많은 걸 했다고 생각하더라고? 자신이 그거 한 가지 하는 동안에 내가 청소하고 빨래 개고, 정리하고 등등 수십 가지 하는 거는 생각 못하고 그 한 가지 한 거에 의미부여를 많이 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남편도 뭔가 한 가지를 하는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예전에 한 번은 갑자기 ‘나박김치’를 만들어야겠다고 하는 겁니다.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장장 6시간을 그것 한 가지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엄청 거대한 일을 한 가지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저는 그동안 갓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홍동이와 아들 청동이, 두 명을 케어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모든 것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청소기 돌리고 밀대질 한번 하고 나면 탈진한 듯 너무 많은 것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동안 그 외에 많은 것들을 상대가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에 홍동이 돌잔치가 있었습니다. 직계가족만 모여하는 소규모 돌잔치였습니다. 둘째임에도 와주신 분들께 행사가 끝나고 식사를 대접하는데 갑자기 남편이 대규모 행사에서 인사를 하듯 거창하게 앞에 나와 기나긴 감사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돌잔치 행사에서 한번 했는데 왜 이 타이밍에 갑자기 또 저런 거창하고 긴 인사를 하는 것인지.. 모두가 굉장히 의아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매형이 “처남이 아주 큰 행사 하듯이 하네.’라고 반쯤 농담하듯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말의 뉘앙스나 사람들의 반응을 읽지 못하는 남편은 계속 저에게 “그럼 이제 홍동이 엄마의 한 말씀이 있겠습니다.”라고 하며 제가 계속 그만하라고 해도 사인을 읽지 못하고 연거푸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던 두 친구가 말하였습니다.
수진 : 우리 시아버지도 ADHD가 분명한데, 항상 가족 모임마다 그러셔. 계속 시어머니가 안 한다고 해도 또 한 말씀하라고 하는데 근데 이제 가족들이 그러려니 하고 그냥 무시하고 밥 먹더라고.
진경 : 우리 아빠 봤잖아. 우리 아빠도 ADHD가 분명한데 그래.
그런데 진경이 장점도 있다고 합니다.
진경 : 나는 근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부당해서 따져야 하거나 뭐 깎아달라거나 혜택 달라고 하는 말 하는 것을 잘하거든? 그래서 매장 같은데 가면 꼭 그런 건 나 시키고 남편은 쏙 빠져있다가 ‘고맙습니다.’라고 이야기하거나 착한 척만 하려고 한다니까?
상대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잘 살피지 못하다 보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저의 남편도 ‘혜택을 못 받았는데 환불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캠핑이나 펜션을 가도 ‘쌈장, 간장, 소금’ 같은 것좀 주시면 안 되냐는 뻔뻔한 이야기도 참 잘합니다.’ 상대가 불편하거나, 기분이 나쁠까 봐 걱정하면서 안 하게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서슴없습니다.
특히 상대의 입장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저나 진경의 남편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파트너로 인한 수혜를 받는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부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진경이 갑자기 되물었습니다.
진경 : 근데 왜 이런 이야기를 밤늦게 하는 거야? 기억도 안나는 거를 분위기 잡고 왜 그랬냐고 따지지 말고 그때그때 이야기하면 되잖아? 내일 일어나서 또 생활하려면 늦게 자면 피곤하고 컨디션에 영향도 미치는데?
그 말에 갑자기 제가 남편하고 이야기하다가 폭발하게 된 지점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지금 시간도 늦었는데 이 이야기를 꼭 지금 해야 해? 낼 피곤해지는데?’라는 똑같은 말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자 진경이 “아.. 안 그래도 남편도 내 말 듣고 씩씩거리면서 그날 밤에 잠을 못 자더라” 하고 웃습니다.
수진도 한마디 거듭니다.
수진 : 그때그때 말하고 싶지. 근데 참거나 아니면 그 말을 할 상황이 아니거나 그런 거지. 아니면 사사 건건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넘어가자 넘어가자 하다가 그게 쌓이고 쌓여서 이건 이야기해야겠다 싶은 거를 일과가 어느 정도 끝난 다음에 이야기하는 거지.
진경 : 근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그리고 차라리 그때그때 이야기해 주면 좋겠어. 생각보다 “뭐 하지 마’라고 이야기했을 때 왜 저걸 하지 말라고 했는지 정확하게 이해를 못 할 수 있지만, 그냥 그 상황에 하지 말라는 거구나 하고 안 하거든? 그리고 그런 말을 듣는다고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일일이 하나하나 따지고 그때마다 이야기하려고 하면 말하는 사람도 피곤하니 그냥 묻고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그들은 알까요..?
그 외에도 옷을 거꾸로 입는다던지,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 어렵다던지, 듣고 나면 금방 휘발되는 기억으로 핸드폰 캘린더에 무조건 적어두어야 하며 심지어 적어놓고도 적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던지, 오늘 저녁 메뉴를 뭐 먹기로 결정을 해서 이미 재료며 다 준비를 해두었는데 갑자기 ‘오늘 뭐 먹어?’라고 이야기를 한다던가 갑자기 쌩뚱맞은 메뉴를 말하면서 ‘오늘 00 먹을까?’라고 해서 상대를 열받게 한다는 것 등 참 많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어느 온라인 사이트에 “ADHD남편을 가진 아내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댓글에 얼마나 분통이 터지면 그런 모임이 있겠냐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참 이런 자리가 필요하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ADHD 배우자와 살지 않는 사람은 그냥 들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과 또 고통이 있습니다. 육아를 하게 되면 그 배로 일화들이 생깁니다.
남편이 약을 복용하기 전의 일입니다. 홍동이가 신생아일 때, 제 회사 동료들이 기저귀갈이대를 선물해 준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홍동이의 기저귀를 갈고 간이 기저귀통에 두고 잊어버리기가 일쑤였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개, 세 개, 네 개가 쌓이면 ‘아 맞다, 버려야지!’ 하고 그때서는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제가 따라다니면서 처리하지 않으면 하루 온종일 버리지 않아 다 쓴 기저귀가 산처럼 쌓여 냄새가 진동하고 넘칠 때까지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돌아서는 순간 바로 기억에서 삭제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였을 때,
‘맞아. 나도 그런 일 있었잖아.’ 하며 공유하는 그 순간으로 오늘 하루 치유를 받은 것 같습니다.
ⓒ 금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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